12/16월-12/20금, 타이베이 ; 12/17 화요일
여행 초반에 많은 에너지를 쓰는 나답게, 둘째 날 저녁엔 야시장을 방문했다. 하루종일 걸어서 힘들 법도 할 텐데, 이때까진 괜찮았나 보다. 정처 없이 걷다 구글 지도에 표시된 가까운 야시장을 찾았는데, 다시 무지개 횡단보도와 마주했으니 시먼딩 야시장일 것이 분명하다. 인터넷님께서 말씀하시길(?), 야시장에서 많은 것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계획적이지 않은 혼자여행의 슬픔은 다음과 같다.
① 열흘 하고도 며칠이나 남은 일정인데, 왠지 이 야시장에서만 팔 것 같아서 이것저것 사본다. 나름 추리고 추리지만 말이다. 쬐-끔만 더 찾아봤다면 모든 야시장에서 같은 음식들을 팔 것을 알았을 텐데. 여행 일정은 많이 남았고, 그만큼 야시장의 기회도 많은데... ② 식탐은 많지만 입이 짧은 나. 진짜 다양하게 많이 먹고 싶은데 분명 다 남겨버릴 테고, 억지로 다 먹으면 배가 명치끝까지 부풀어 오를 것이고. 혼자 여행할 때마다 느끼지만, 몸의 크기에 비해 작은 소화 능력이 좀 많이 아쉽다.
야시장을 먼저 한 바퀴 쓰윽 둘러본다. 이 시간의 행복당 버블티 가게는 줄이 엄청 길다. 도로를 횡단하고 건너편 도로까지 점령했다. 누가 봐도 대부분이 한국사람. 이렇게까지 줄을 서서 먹을 일인가? 커플에 치이고, 가족 단위의 단체에 치이고. 다들 뒤는 왜 안 보고 + 백스텝을 하며 사진을 찍는 건지. 위험하다구! 가뜩이나 야시장 음식은 뾰족한 꼬치가 많은 편인데 말이다.
원하는 꼬치를 이것저것 고르면 튀겨주는 곳. 신발 빼고 정말 다 있는 것 같은 곳이었다. 마치 시험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OMR 카드 선택지. 여기는 현지인이 많았다. 여기도 역시나 줄이 꽤 있었다. 줄이 긴 곳에서 하나하나 번역하기도 눈치 보였고, 물어보기엔 더 그러했다. 아쉽지만, 여기는 pass.
그리고 과일이 가득 담긴 수레.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과일들이 한가득이다. 이건 먹어야만 해! 옆에서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주문하는지 살펴본다. 꽤 많은 양의 과일을 잘라 봉지에 담아준다. 근데 나는 그만큼의 한 봉지는 다 못 먹을 거 같고, 또 여러 과일을 먹어보고 싶었다. 되는 영어 안 되는 영어로 '나는 이 과일과 저 과일을 먹고 싶어. 조금씩 담아줄래?' 하고 두근두근. 분홍색 가루도 촵촵 뿌려주었다. 아차차, 가격을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즉흥적으로 구매하고 계획 없이 소비한 값, 정말 비싸게 값을 치렀다 ㅋㅋㅋㅋㅋ 거진 한국돈 15,000원 이상을 여기에 써버렸다.
이름이 끌리는 음료도 하나 선택한다. 영어로는 Honey Bitter Melion Juice. 하지만 허니라곤 입 닦고 눈 씻고도 전혀 찾아볼 수 없던 오직 비터한 맛. 그리고 야시장을 빠져나오는 마지막 가게에선 유명하다는 고구마볼튀김도 겟 get.
아주 비싸게 값을 치렀지만 과일은 정말 훌륭했다. 맛있다고만 표현하기엔 아쉬울 정도다. 커피 회사에 다닐 적, 구아바 노트를 본 적이 있었고 그래서 초록 구아바 주스와 분홍 구아바 주스를 구매해서 먹어봤다. 하지만, 과일은 정말 차원이 다르다. 어디 감히 구아바를 커피 노트에 썼는가 싶을 정도로!
초록 구아바와 핑크 구아바는 향과 맛, 식감이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분홍 가루를 뿌린 부분들에서 오는 감칠맛이 정말 대단했다. 뭘까, 이 마법의 가루는... 이 날 이후로, 나는 시장과 마트 가리지 않고 구아바가 보이면 거침없이 집어 들었다. 한국에서는 먹기 쉽지 않은 과일이니까 여기서 많이 먹고 가야지. 대만 여행을 다니며 어디에 돈을 가장 많이 썼냐 물으면 구아바라고 대답할 정도다. 아, 구아바에 묻힌 또 다른 과일, 왁스 애플이라고 말하던데. 정말 왁스를 바른 것처럼 겉이 반질반질하다. 즙이 가득한데 또 건조한 느낌이 들고 밀도가 굉장히 가벼우면서 달달하다. 시먼딩 야시장에서 숙소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되었는데, 길-먹을 하면서 정말 행복했다.
드디어 12월 17일 저녁까지 끝.
아, 여기 과일 정말 자꾸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