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월요일-12/20금요일, 타이베이 ; 12/19 목요일
오늘은 하루를 좀 늦게 시작했다. 점심때쯤 슬렁슬렁 걸어 나온 것 같다. 유명한 곳에서 차분하게 앉아 식사를 하고 싶어 선택한 곳은 키키kiki 레스토랑.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가서 못 먹으면 다른 거 먹으면 되는 거지의 마음으로 찾아갔다.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줄도 모르고 방문했는데, 마지막 주문 5분 전이란다. 메뉴판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유명하다는(인터넷에서 본) 부드러운 두부조림과 고기조림, 밥을 시켰다.
현지 발음으로 '라오피넌러우'라 불리는 연두부 튀김. 푸딩 같은 식감이 특이했다. 일본에서 먹었던 쟈지푸딩과 흡사한 질감. 그 외의 것은 맛적으로나 향적으로 뛰어나다고 할 순 없었다. 나는 이 메뉴가 키키kiki 레스토랑만의 것인 줄 알았는데,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보니 대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부 음식이었다. 키키 레스토랑에서 유명한 메뉴이기에, 여기의 주력 상품(?)이기에 여기에서만 판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식감 때문인지 밥과도 정말 안 어울렸다. 후식 정도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창잉터우'라 발음하지만 한자 그대로 읽으면 창승두. 두 음식 다 이름이 참 별나다. 창잉터우는 마늘쫑 혹은 파와 잘게 썬 돼지고기, 그리고 간간히 검은콩도 보이는 볶음 요리다. 얘는 꽤 매콤했다. 매운맛을 감지한 뒤로, 빨간 고추는 다 골라내고 먹었다. 밥과 먹기에 정말 맛이 좋았다. 적당히 매콤하면서도 짭조름한 것이 밥반찬으로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제할 때 순간 놀란 나. 이 정도의 맛은 아니었는데 싶을 정도의 값이었다. 거진 NT$600 가까이를 지불했다. 처음으로 서비스 차지도 있는 곳이었다. 메뉴판을 잘 살펴보지 않고 급하게 주문한 값이 이렇게나 비싸다니. 이후로 나는 '한국인의 블로그에서 본 유명한 음식점'은 가지 않았다.
내 지갑의 헛헛함을 위로하듯 혹은 놀리듯 부슬부슬 내리는 비. 우산을 쓰고 걸으며 커피를 마시러 가본다. 커피는 맛있을 거야, 아무렴. 향이 좋을 거야, 아무렴. 챔피언이 하는 카페라니까 기대감도 있고, 아무렴.
목적지는 VWI by CHADWANG. 번화가와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찾아가야 하는 곳이다. VWI는 2017년 월드 브루어스컵 챔피언쉽을 수상한 챠드 왕ChadWang이 운영하는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다. 브랜드 이름은 Vapour수증기, Water물, Ice얼음 ; 물의 세 가지 상태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WBC가 운영하는 곳에 왔으니, 브루잉 커피를 마셔야지! 시향이 가능한 MD존에서 향을 맡아본다. 두 컵의 향이 나를 끌어당겼다. 첫 번째로 에티오피아를 마시고, 두 번째로 게이샤를 마셔야겠다 생각하고선 따뜻한 에티오피아 컵 한 잔을 먼저 주문했다. 왜인지 모르지만, 내 컵을 내려준 사람이 챠드 왕ChadWang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얼마나 더 기대했겠어!
모든 실망은 기대에서부터 시작하는 법이다. 시향에서 느낀 향긋함에 비해 갓 내려진 커피에서 느껴지는 향은 너무 미미했다. 심지어 시향병의 원두는 분쇄한 지 적어도 몇 시간이나 지났을 터인데도 말이다. 뜨거워서 그런 걸까? 시간을 두고 커피를 마셔본다. 하지만 변함없다. 커피 노트에는 재스민, 레몬, 오렌지의 산미, 그린티의 마우스필이 적혀있었고, 에티오피아 워시드였기에 나는 더욱이 기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약간의 떫음은 점차 강해졌고, 신단맛의 밸런스는 아쉬웠다. 그래서 난 게이샤 커피를 추가로 주문하지 않았다. 물론 그 한 잔으로 이곳을 평가할 순 없다. 하지만 나는 소비자로서 방문한 것이기에 그 한 잔만으로 그 시간을 평가할 수 있었다.
유명세는 얻는 순간 말 그대로 '稅'.
'유명세를 치른다'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뭔지 알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