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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기대하던 것이 무너지는 순간, 다른 행복이 온다.

by 배홍정화

꿉꿉했던 타이베이에서 화롄으로 이동하는 날. 기차를 예매해 본다. 앱은 미리 한국에서 깔아왔고, 예매는 수요일에 진행했다. 어렵지 않다. 출발지와 도착지를 선택한 뒤, 원하는 시간대의 차편을 선택하면 끝이다. 단, 열차에 따라 우리나라 KTX나 무궁화호처럼 이동 시간에 대한 차이가 크니 이것만 주의하면 된다.



12/16월요일-12/20금요일 ; 12/20 금요일은 타이베이에서 화롄으로 이동하는 날!

KakaoTalk_20250215_171137692_02.jpg 9:44 혹은 10:17 차편을 이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닌가, 10:00였던가?


오늘은 주먹밥을 3개 구매했다. 이동하면서 기차 안에서 한 개, 그리고 타이루거 협곡에서 두 개 먹을 요량으로. 물론 뜻대로 먹게 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야무지게 잘 먹었다.


여행 루트에 화롄을 넣은 이유는 딱 하나, '타이루거 협곡(太魯閣國家公園)' 때문이다. 트래킹을 하려고 한국에서부터 옷을 챙겨 왔다. 레깅스에 발바닥이 두툼한 양말, 편한 운동화, 상의도 스포츠브라까지 입고선 운동복 위에 바람막이, 경량패딩조끼, 두꺼운 조끼 이렇게 잘 챙겨 입었다. 화롄에 도착한 뒤엔 모두 물거품이 되었지만 말이다.



12/20금요일-12/23월요일, 화롄 ; 12/20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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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蓮火車站, Hualien Train Station. 화롄기차역 도착 직후.


타이베이와 다르게 날이 참 좋았다. 봄날씨같이 따뜻하고 햇살이 가득했다. 두꺼운 조끼를 벗어 가방에 끼웠다. 그리고 바로 숙소로 찾아간다. 한국에서 미리 네이버 라인Line을 설치해 온 덕에, 체크인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했지만 숙소에 짐을 넣어둘 수 있었다. 대만에서는 아고다 메시지보다 라인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운영자와의 소통에 더 용이했다. 어젯밤 보낸 아고다 메시지에는 답이 없더니, 라인으로 보낸 건 10분도 안 돼서 답변이 왔으니까.


숙소는 기차역에서 걸어서 7분 거리. 캐리어가 있고 헤맬 걸 생각해서 넉넉잡아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고 생각했다. 구글 지도를 켜니, 기차역을 한 바퀴 삥 돌고 나가야 한단다. 굳이 그렇게까지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도착지만 보고 걸었다. 그러니 걸어서 채 5분도 안 되었다. 이거 완전 럭키잖아!! 그리고 기차역 바로 옆에 버스터미널도 있었고. 정말 여러모로 이동이 편리한 곳이었다.


아, 숙소 잘 잡았다! 편의점도 근처에 3군데나 있었다. 이번엔 도미토리가 아닌 개인방을 하나 잡았다. 공간이 아까울 정도로 널찍했고, 화장실도 룸 안에 있었다. 좁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에 오픈한 곳이라고 하는데, 몇 년 안 되어서 그런지 깨끗했다. 정말 정말 너무 좋았던 건, 세탁기 이용이 무료라는 것. 건조기는 없었지만 이게 어디야. 세탁기는 통돌이였고, 사용법 또한 간단했다. 여기 머무르는 동안 타이베이에서 밀린 빨래들을 돌렸다. 아, 향기롭고 행복해.


KakaoTalk_20250215_171137692_05.jpg 숙소 가는 길에 찍은 하늘. 행복 한도 초과 상태.


짐을 두고 바로 버스 터미널에 갔다. 대략 1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조금 후에 303번 버스가 떠났으니 정확하다. 투어를 신청하지 않았기에 혼자 버스를 타고 타이루거 협곡을 가서 트래킹을 하고 올 요량이었다. 투어에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이 즐비해있었다. 가고 싶지 않은 공간도 가야 하고, 더 머무르고 싶을 공간인데 시간 내에 후다닥 보고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택시 투어도 고려했다. 많은 돈은 지불하고서라도 협곡 트래킹을 하고 싶었으니까. 내가 알아본 트래킹 구간은 샤캬당 트레일Shakadang Trail. 한국에서부터 기대하고 온 곳이다. 트래킹 구간은 왕복 2시간 정도 걸리는 구간이고, 초보자들에게도 어렵지 않은 코스라 선택했다. 더해서 여기서 보는 절경이 찍힌 그림이 올라온 유튜브 영상에 매료되었다.



버스는 떠났다. 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있었다.

이 버스를 급하게 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터미널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빨간색 글씨로 인포메이션에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다. ... 국립공원이 폐쇄되었다고? 터미널에 앉아 핸드폰을 두드린다. 지난 4월 화롄에서 규모 6.7의 지진이 발생했단다. 지진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지금 12월 정도면 어느 정도 복구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멍청한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다. 내가 화롄을 일정에 넣은 건 트래킹 때문인데 이게 없으면 어쩌지? 다른 인포메이션에 가서 구글 번역기를 켜서 지금 타이루거, 타로코Taroko에 갈 수 없냐고 물었다.


그는 영어로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지난 4월의 지진으로 모두 폐쇄되었다. 버스로 그곳을 간다고 해도 입구에서 사진만 찍을 수 있다. 그 어느 트래킹도 갈 수 없고, 입구를 지나 들어갈 수도 없다." 오 마이 갓. 나는 너무 슬펐다. 내가 왜 화롄까지 왔는데... 그는 다양한 버스 노선도를 보여주며 나에게 다른 관광지를 안내해 줬다. 하지만 그곳들은 내가 가고 싶지 않아 버스 투어를 선택하지 않은 곳들이었다. 실망한 나의 표정을 감지한 그는 다양한 스폿들을 설명해줬다. 그리고 오늘 떠나냐고 물었다. 나는 여기에 이틀 동안 더 머무를 예정이라고 답했다. 그는 다른 팸플릿들을 보여주며 무료, 유료 투어들을 보여줬다. 종일 투어와 반나절 투어등 다양한 투어를 소개해주었다. 그는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있었고, 목소리에는 나의 안타까움을 감지한 친절함이 배어있었다. 정말, 너무 감사했다.


그와 약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고민 끝에 정류장 이름에 old street가 들어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 가보자. 어쩔 거야, 움직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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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해준 정류장에 내리니 딱 이 모습이 보였다. ... 길이 오래된 건가, 뭐지? 5분 정도 걷다 보니 차가 다니는 도로가 나왔고 어이없음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 걷자 오늘은. 버스도 한 시간 간격이니 도리가 있겠어? 다행히 트래킹을 대비하여 옷도 신발도 편했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걷다 보니 정류장 두 개를 지나쳤다. 큰 도로를 끼고 다시 돌아가는 방향을 택했다. 그러다 중간에 작은 길이 나오면 들어가 보고, 또 다른 길이 나오면 들어갔다. 배가 고팠다. 주먹밥을 꺼냈다. 이것 또한 트래킹이지 하며 야무지게 길-밥을 했다.


KakaoTalk_20250215_171137692_07.jpg 저 멀리 철조망 안에, 성모마리아 상이 있었다.


불교와 도교의 나라답게 많은 사찰이 보였다. 그러다 끌리는 곳에 들어갔다. 여기는 성당이었다. 성모마리아상이 있으니, 성당이다. 기도를 했는지 그냥 살펴만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성당과는 다른 모습에 신기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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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한 소리를 따라 걸으니 학교가 보였다. 하교 시간이었나 보다. 여느 나라와 다르지 않게,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온 모습이 보였다. 도보로 오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온 부모님들이었다. 엄마의 뒤에 앉아 오토바이 위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소녀를 잊지 못한다. 해맑은 미소로, 낯선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준 순수한 아이. 너는 삶의 찌듦을 경험하지 말길 바란다.


계속 걸었다. 이미 한 시간은 지났다. 막차만 놓치지 않으면 되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계속해서 더 깊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학생인 아이들끼리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에 놀랐다. 저 나이에 운전면허는 없을 텐데. 우리나라 시골에서 트랙터 모는 아이들처럼, 여기도 우야무야인가? 빠른 속도로 달리진 않았지만 새삼 다른 나라 아이를 걱정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물소리가 들렸다. ... 물소리가 들린다고? 가보자!


KakaoTalk_20250215_171137692_10.jpg 보..보인다. 바다야, 바다!!!


지역적 특색을 전혀 알아보지 않고 왔기에, 여기서 바다를 마주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서의 실망감은 기쁨을 배로 안겨주었다. 와, 시원한 바다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맑은 날씨, 고운 하늘, 그림 같은 구름과 탁 트인 바다, 거친 파도! 트래킹에 대한 아쉬움은 여기서 다 사라졌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짜릿하다!


KakaoTalk_20250215_171137692_11.jpg 바다를 보다가
KakaoTalk_20250215_171137692_12.jpg 옆을 보고 뒤를 돌면
KakaoTalk_20250215_171137692_13.jpg 타이루거 산맥이 보인다!


이 그림을 보라고 인포메이션 직원분이 여기를 추천해 준 것만 같았다. 정말 씨에씨에!!!





화롄은 easy card가 있으면 대부분의 버스가 무료이다.

관광지, 야시장 가는 길 모두 무료 버스로 이용이 가능해 버스를 많이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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