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3월요일-12/25수요일, 자오시 ; 12/24 화요일
폭우가 쏟아진다.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감사하게도 8시부터 10시까지 1층 라운지에서 아침 식사가 제공된다. 호스텔임에도 불구하고 퀄리티가 꽤나 좋다. 신선한 샐러드와 치즈, 햄, 세 가지의 빵과 세 가지의 잼, 끈적이는 고구마와 삶은 달걀, 우유와 두유, 따뜻한 커피, 그리고 시리얼. 부족함이 전혀 없다.
어질러진 짐도 정리하고, 냄새나는 옷에 페브리즈를 뿌려 방에 걸어두고. 간단하게 정비한 후 라운지에 앉아 영어 공부를 해본다. 여기까지 와서 영어 공부냐겠지만, 비가 내리는데 나가서 무엇하리. 챙겨 온 것들이나 살펴봐야지.
아침보다 비가 잦아들었을 오후 3시,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가본다. 어제 길을 오르다 본 쯔추찬(自助餐)에 가본다. '쯔추찬'은 self-service의 의미로, 뷔페처럼 다양한 찬이 준비되어 있고 손님이 직접 선택해서 먹는 음식점이다. 빕스나 자연별곡 같은 뷔페보다는, 함바집 같은 한식 뷔페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타이베이에서도 봤는데 다음날 길을 찾지 못해 경험해보질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다시 이 길을 찾은 김에 잠깐 고민하다 바로 들어갔다. 위생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망설였는지도. 물론, 깔끔한 곳도 있겠지만 내가 오늘 방문한 곳은 썩-이었다. 해외에 나오면 이런 것에 관대해진다. 왜일까? I don't know why.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곳, 길 모퉁이에 있다. 다양한 채소 절임류와 전, 튀김, 조림류, 국 등이 눈에 보인다. 또 얼마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아휴, 비싸려면 비싸라지 뭐. 키키kiki를 경험하고 나니 상대적으로 모두 저렴하게 느껴진다. 여긴 진짜 저렴했지만. 테이블을 가리키며 먹고 가겠다 말하고선, 반찬을 하나씩 고르면 사장님께서 그릇에 적당히 담아주신다. 신중하게 살펴본 뒤에 채소 절임 세 가지와 돈가스처럼 보이는 걸 선택했다. 정말 다 먹어보고 싶었다. 언제 이렇게 대만 가정식을 경험해 보나? 물론, 가정식일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포크 or 치킨, 포크라는 답. 돈가스를 커팅해 주신 뒤에 이것도 먹을 거냐 하며 저 간장에 조려진 무언가를 가리킨다. 나에게 그걸 추천하냐는 물음에 맛있다, 추천한다며 웃음으로 답해주셨고 나는 조린 두부 하나를 더 선택했다. 그렇게 밥과 한상차림을 받았다. 그리고 먹기 전, 나에게 선물이라며 오렌지같이 생긴 과일을 하나 주셨다. 어디서 왔냐, 맛있게 먹어라는 핑퐁의 대화와 함께.
돈가스는 바삭하지 않았지만, 맛이 정말 엄청났다. 그렇다고 물에 빠진 것마냥 눅눅하지도 않은 그 중간즈음의 습(?)을 머금고 있었다. 간도 세지 않았고 부드러웠다. 그녀가 추천해 준 두부조림은 키키kiki의 것과 같았다. 연두부를 어떻게 이렇게 부서뜨리지 않고 조리했을까, 이 찰랑이는 녀석을 어떻게 이렇게 국자로 잘 떠서 내 그릇에 담아줬을까 싶을 정도로 부드러웠고 탱글탱글했다. 그리고 얘는 밥반찬으로도 어울렸다. 아, 내일 기차편이 늦다면 한 번 더 오겠지만 여기는 11시에 문을 열고, 나는 그보다 이른 시간에 자오시를 떠난다. 돈가스만 먹고 나서도 이렇게 아쉬움이 크다니!
다른 반찬들을 음미해 본다. 하나의 반찬이 맛있다면, 다른 것도 당연히 맛있을 거야. 같아보일지 모르겠지만 초록의 두 나물을 다른 것이다. 향과 식감도 분명 달랐다. 그리고 저 치맛자락같이 생긴, 지금은 여주로 추정되는 가장 왼쪽의 갈색 반찬도 맛이 좋았다. 약간의 물컹이는 식감에 당황하긴 했다. 우엉이나 연근 조림을 생각하고 고른 것이기에. 독특한 향이 났지만 계속 당기는 맛이었다. 여기는 그냥 사장님이 음식을 잘하시는 곳이다. 밥은 한국의 찰진 밥과 안남미의 흩날림 중간 정도.
그리고 선물로 받은 오렌지 같은 것은 내가 생각한 오렌지는 아니었다. 즙이 굉장히 많았고, 시트러스류의 과일은 분명했지만 한국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오렌지는 아니었다. 기름진 입을 씻어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슌쉬엔으로 가본다. 러시아빵에서 만족을 했기에 다른 빵을 먹어볼 요량이 충분했다. 그리고 어제 네임택을 다 찍고 오전에 숙소 라운지에서 이것저것 찾아봤기에 빵을 고르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을 거 같았다. 파가 유명한 지역이니, 파로 된 빵을 우선 고른다. 걔 중, 부드러워 보이고 먹음직스러운 녀석 두 가지와 꽈배기처럼 생겼지만 소보루가 묻어있는 빵, 이렇게 총 3개를 골랐다. 따로 저녁을 먹으로 나올 것 같지 않았기에 저녁 식사 대용으로 빵을 넉넉히 골랐다.
도전도 좋지만, 좋았던 건 또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 길거리파도넛튀김과 스윗블랙티를 하나 사서 숙소로 돌아간다. 재빠르게 따뜻한 온천을 즐긴다. 수영복을 잘 말려야 하니까. 그리고 이슌쉬엔의 빵들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쯔추찬은 사랑이다.
대만 현지 가정식을 저렴한 값으로 끝장나게 즐길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