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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송비 Sep 21. 2019

동물, 원

오랜만에 커피스트에 와 있다. 사람이 많다. 그래도 내가 앉을 자리, 한 자리는 있었다. 날이 흐리지만 돌아다니기는 매우 쾌적한 날씨다. 돌아다닐 맛이 난다. 그래서 오전에 청소를 열심히 하고 집을 호다닥 빠져나왔다. 여름에는 '청소하고 나가야지~~~' 하면서 누워 있다가 청소도 안 하고 누워만 있기만 한 날이 참 많았다. 겨울은 과연 어떨 것인지.


<벌새>를 세 번 보고, 시나리오집을 읽었다. 나는 왜 벌새를 좋아할까. 잘 만든 영화여서, 어느 장면 하나 버릴 게 없어서, 청소년 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여서. 이 정도인 것 같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미련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내 얘기를 잘 하는 사람이고 싶다. 벌새를 또 볼 수는 있지만 더 보지는 않을 것 같다. 나중에 다시 찾아볼 것 같다. 분명 재개봉을 할 것이다.


<동물,원>은 끝나고 토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감독님과 고양이로 유명한 수의사 분이 있었다. 끝까지 듣진 않고 30분 정도 듣다가 나왔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물어보고 싶었던 게 생각났다. 멸종 위기의 종을 강제로 교배시켜 종을 유지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외계인이 쳐들어와 인간이 모두 죽고 남녀 한 쌍만이 남았는데, 외계인이 그제야 미안하다며 종을 유지시켜 준답시고 의술을 총동원해 몸에 이것저것 해댄다면 인간 종 따위 내가 알게 뭐냐며 정말 그냥 죽고 싶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새로 태어난 인간에겐 오만가지 감정이 들 것이고.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앤 해서웨이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에 도달하여 수정란을 배양하기 시작하는데, 이때도 사실 왜 그래야 하는지 별로 이해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인간이 중요하다는 건 (딱히 설명할 순 없지만) 잘 알겠는데, 어떤 식으로든 인간종을 지켜나가야는 것이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다른 동물종의 유지 여부를 인간과 비교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동물 한 개체를 보지 않고 멀리서 생태계 전체를 바라본다면 동물종의 유지는 매우 중요해보인다. 하지만 강제로 정자를 채취해 다른 개체에 주입하는 장면을 보면서, 인간이 망쳐버린 것을 인간의 손으로 복구하려는 것이 잘못을 뉘우치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 동물들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동물원 수의사 분들이 망친 것은 아니니 그분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보는 건 괴롭긴 했지만, 종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도 같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우리집도 동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앤디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현관문을 열 때마다 밖으로 튀어나온다. 볼비는 아직 나오는 걸 보진 못했는데 앤디가 나가는 걸 보면서 따라 나오고 싶어하는 것 같다. 고개를 쭉 뽑아 문 밖의 공간을 바라 본다. 고양이들이 나가고 싶어한다고, 문을 열고 내보내줄 수는 없다. (고양이에 따라, 환경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 중성화를 해야 하며, 병원은 정말정말 가기 싫은데 아프면 인간이 강제로 병원에 데려간다. 나의 엄빠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자연상태'와 매우 거리가 멀다. 동물은 밖에서 본능대로 살아야 한다는 당신들의 주장에 매번 기가 질리지만, 사실 그것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깊은 산속에서 서로 먹고 먹히며 말그대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동물에게 좋다는 것을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하지만 동물원의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 이제와서 서식지로 돌려보낸다고 자연 상태로 살아갈 수 없다. 지금 당장 동물원의 모든 담장을 무너뜨린다면 그 안에 있던 동물들 대부분은 곧 죽을 것이다. 동물원이 시작된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미 시작되어 버린 동물원을 그냥 없애는 것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이미 인간의 품 안에 들어온 동물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어떻게 대할 것인지 고민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 앤디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새들이 지내는 커다란 우리가 있는데, 바깥의 새들이 그 지붕 위에 앉아 있던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는데 모기가 손을 물었다. 카페를 이렇게 멀리까지 왔어야 했나. 집에는 언제가나. 비엔나 커피가 맛있다는데, 다음엔 또 언제 올지 모르겠다. 가끔 생각나는 카페이지만, 오고 나니 왜 안 오게 되는지 잘 알겠다. 참 외진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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