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송비 Sep 15. 2019

유열의 음악앨범

영화가 끝나자마자 맨 첫번째로 호다닥 뛰쳐나왔다

오랜만에 괜찮은 한국 멜로 영화가 나왔다는 소리를 어디서 주워듣고는 영화를 보러갔다. 영화가 좀 갑갑했다는 S님의 말을 잘 새겨들었어야 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후다닥 뛰어나와 한강을 걸었다. 약간의 빡침을 진정시키며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어렸을 때의 나라면 좋아했을지도 모르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멜로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변한 게 아닐까.


추석 때는 정말 오랜만에 사촌동생(이하 E)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동생인데 명절에 시골에서나 겨우 만나게 되는 사이이긴 하지만 애가 워낙 밝아서 같이 대화를 나누는 게 재미가 있다. 이 명절에 유일하게 믿고 있는 어떤 즐거움이기도 했다. E마저 없다면 정말 도리 뿐인 명절이기 때문에. E는 나의 결혼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결혼을 하는 게 좋은지, 하면 뭐가 좋은지, 연애는 얼마나 하고 결혼을 했는지, 한 사람과 오래 연애 해본 적이 있는지와 같은. E는 만나던 사람과 2년 정도 만나고 올해 초에 헤어졌다고 한다. 별로 아쉬움은 없다고. 그리고 무척이나 새로운 누군가와 새로운 연애를 해보고 싶은 것 같았다. 머리 속에는 고시 준비와 연애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사촌동생 G는 E보다 한 살이 많은 대학생인데, G는 고등학교에서 만난 애인과 아직까지 만나고 있다고 했다. 2천 일이 넘었다는 말을 들으며 나와 E가 동시에 정말 대단하다며 감탄을 했다. 무려 군대를 견뎌내고 아직도 만난다니. E는 그런 게 가능하냐고, 그 정도 되면 다른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지지 않냐고 했다. G는 그냥 웃었다.


이 영화의 개연성을 만들어주는 것은 정해인의 잘생김이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이 없다. 적어도 김고은이 다른 사람과 연애하고 있는 장면을 넣어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정해인과 재회하자마자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3일의 휴가를 내버리는 사람인 걸 보면 김고은은 정해인이 없는 동안에 그의 부재 때문에 워커홀릭이 된 것이 분명한데 연애를 그렇게 잘하는 사람이 정해인만 기다리고 있으면 낭비 아닌가. 회사 대표의 구애는 같은 회사 안의 위계 상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제외하면(사실 제외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딱히 폭력이나 강요가 있지도 않았는데 왜 나쁜 사람처럼 몰아가는 것인지. 부를 가진 자가 가난한 사람들의 연애에 끼면 안 되는 것처럼 표현하다니 2010년대 말에 정말 구시대적인 게 아닌가. 와 같은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영화는 잘못한 게 없다. 멜로 영화는 늘 그래왔다. 어렸을 땐 그런 애절함들을 좋아했다. 그런 애절함이 실제하지만 나에게만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애절한 상황은 단 한 번도 오지 않았고(왔을 수도 있는데 기억나는 건 없다), 지금의 연애 상황이 애절해질 것 같진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나는 그런 애절함이 실제한다는 것을 이제는 믿지 않는다. 19살에 잠깐 본 사람 때문에 계속 연애를 안 하다가 서른이 다 되어서 우연히(!) 만나 끝내 이루어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정해인만큼 잘생긴 사람이 더 없었다면 가능하긴 하다. 대표님은 외모에서 밀린 것으로.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본 영화는 <러브레터>이다. 앞으로도 여러 번 더 보게 될 것이다. (제가 멜로 영화를 좋아한다니깐요.) 러브레터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것은 아니긴 하지만, 적어도 러브레터에서는 과거의 누군가가 그리워서 현재의 연애를 포기하진 않는다. 남자 이츠키도, 히로코도 그렇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그리움을 가지고 살면서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할 수 있다. 연애의 어떤 기능적인 역할 때문이기도 하고, 연애의 감정이라는 게 그리움이 다는 아니니까. 지금은 별로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게 된 <건축학 개론>도 그런 면에서는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에 그 둘이 다시 잘 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영화관을 나왔었다.


러브레터를 앞으로 아무리 봐도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보다 더 많이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벌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