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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송비 Oct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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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상상마당 GV로 인해 관람에 실패하고 오늘 다시 갔다. 왜 이렇게 적게 상영하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굿즈 패키지 상영을 하고 있었다. 굿즈 패키지라는 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벌새 테이프는 정말 갖고 싶긴 했는데 게을러서 갖지 못하였고, 오늘은 오랜만에 배지를 받아서 좋았다. 한 때 배지를 열심히 사 모으던 때도 있었다. 


일단 이주영, 구교환 님이 정말 좋다. <꿈의 제인>에서도 정말 좋았는데, 이 영화에서도 역시나 좋다. 두 분이 "사직서"를 외치며 뛰는 장면과 구교환 님의 "오늘은 화분을 먹겠습니다."는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코미디 영화에서 중요한 건 능청스러운 연기가 아닌가 싶다. 때리고 욕하면서 웃기려고 드는 게 아니라.


초등학교 4학년 때 점심시간 직후에 체육시간이 있던 날이었다. 남자 애들끼리 편을 갈라 축구를 하고 있었다. 상대방 골대 근처에서 내가 찬 공이 골대를 훌쩍 넘어 한참 뒤로 날아갔다. 골키퍼를 하던 친구가 공을 주워와서 경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런데 잠시 후에 수비를 보던 친구 한 명이 나를 붙잡더니 운동장 구석을 가리켰다. 운전석 창문이 깨진 차를 살펴보고 있는 선생님이 계셨다. '방금 네가 찬 공 때문에 그런 가봐.' 내가 찬 공이 멀리 날아갔고 방향도 그 쪽이었기 때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친구가 가서 사과드리라고 해서 쭈뼛쭈뼛 가서 사과를 드렸다. 이거 제가 방금 축구공으로 그런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선생님은 따라 오라고 했고 교무실로 데려갔다. 담임 선생님께는 친구가 설명을 했던 것 같다. 교무실에 앉아 있던 다른 선생님이 너가 깼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다.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쨌든 학생이 그랬고 직접 와서 사과도 했으니 이걸 내가 손해봐야지 어쩌겠나 싶은 표정으로 이제 그만 가보라고 했다. 마침 쉬는 시간도 끝나고 다음 시간 수업 종이 울렸기 때문이다.


그 차의 유리를 깬 건 내가 아니다. 그건 점심 시간에 깨진 것이었다.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축구를 못했고 초등학교 4학년의 킥력이 제 아무리 좋아봐야 절대 차유리를 깰 수는 없다. 바로 앞에서 차면 혹시 몰라도. 골대부터 차까지는 거리가 상당했다. 공은 아마도 차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그것이 깨지자마자 선생님이 나타나서 차를 살펴보고 있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유리는 애초에 깨져 있었고, 선생님은 그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저 다시 차를 살펴 보러 온 것이었고 그 순간에 그저 내가 공을 그 쪽 방향으로 찼을 뿐이다. 결정적으로 내가 방금 공을 차서 유리를 깼다면 교무실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알고 있을리가 없다.


그제야 내가 깬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미 사과에서 용서까지 모두 끝난 후였다. 그 유리는 내가 깬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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