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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송비 Mar 01. 2020

씨네21

휴가라서 아침을 먹고 나서 다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010으로 시작하면 일단 받아는 본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는 늘 두렵다. (물론 등록된 번호 중에도 두려운 것이 있다.) 씨네21 구독이 끝났다는 전화였다. 봉 감독 특집호가 서점마다 매진이라서 구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트위터에서 봤던 터라, “그럼 이번호는 안 오는 거에요?”라고 물었다. 나는 정기구독자 중이라 집에서 여유롭게 기다리던 중이었기 때문에. 구독 연장을 하면 이번호부터 보내주겠고 했다. 카드번호를 불러 드리고 6개월 무이자 할부로 결제해주신다고 하길래 그렇게 하고 다시 잠을 잤다.


이전에도 씨네21을 구독한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연이어서 구독한 것은 처음이다. 늘 중간에 공백이 있었다. 1년 정도 받아보고 나면,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게 된다. 몇%나 읽었나, 그래서 영화는 많이 보았나 같은. 봉 감독이 오스카상을 받지만 않았어도, 마침 휴가라 낮잠을 자는 중에 전화가 오지만 않았어도, 살짝 쉬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널렸지만 그것은 내가 찾아봐야 하는 것이고, 무엇이 개봉 예정이고 상영 중인지 주목할 만한 것은 무엇인지 같은 것을 불신 속에서 매우 신경쓰면서 찾아봐야 한다. 그 때문에 구독을 쉬는 동안은 자연스럽게 영화도 잘 안 보게 되었다. 다시 영화가 보고 싶어지면 구독을 그때 가서 다시 신청하곤 했다. 이번엔 열심히 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영화관에 가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같은 영화라도 집에서 보는 것과 영화관에서 보는 것은 매우 다르다. 감상도 달라지고, 애정도 다르다. 집에서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게 아쉽다. 영화관에서 봤다면 분명 더 좋았을 것이다. 영화관은 온전히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다. 큰 화면과 어두운 배경,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이곳에 온 사람들이 영화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집에서는 전화가 오면 받아야 하고, 벨이 울리면 나가봐야 하고, 가로 막는 고양이를 치워야 한다. 모든 영화가 몰입을 이끌어내지는 않기 때문에, 맥이 끊기면 영화에 대한 이해도도 낮아진다. 얼마 전에 회사에서 4주에 걸쳐서 화요일 점심시간마다 <아이리시맨>을 봤다. 집에서는 도저히 끝까지 볼 수 없을 것 같으니 회의실에서 모여서 보면 약간 영화관 느낌도 나고, 사람들이 모이면 실행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는 이유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일단 끝까지 봤다는 점에서 반 정도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으나, 한 번에 쭉 봤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TV 시리즈와 달리 한 번에 보라고 만든 영상이기 때문에 그렇게 봐야 한다. 그리고 영화관 밖에서는 영화의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영화 고르다가 시간을 많이 보내기도 한다. (넷플릭스 증후군이라고 하더라) 상영 중인 영화는 한정적이고, 많은 전문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추천을 잘 해주기 때문에 선택을 금방 할 수 있다.


씨네21 이런 순서로 본다.

1) 표지 사진: 표지의 글은  읽지 않는다. 어차피   거라서. 그것은 매대 위에 있을  의미가 있는 글이다.

2) 에디토리얼, 디스토피아로부터: 둘은 순서가 바뀔 때도 있다. 디스토피아로부터가  펼치기 쉽다.

3) 20자평: 주말에  영화를 여기서 고를 경우가 많다. 평점을 많이 신뢰하는 편이다.

4) 영화 비평: 이미  영화가 아니면  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꺼내서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5) 나머지:   수는 없고 제목만 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표지에 사진으로 나온 작품과 연결되는 인터뷰는 거의 보지 않는다.)

* 나머지를 나머지라고 해서 많이 죄송합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어서.


잡지를 매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이 있을까. (있긴 있을 것이다.)  보려고 하면 텍스트가 적지 않다. 읽어야  텍스트는 넘치는데 매주 과제가 주어진다는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절대  읽을 생각으로 보지 않는다. 재미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기껏 종이에 인쇄해서 배송까지 해줬는데  보면 너무 아까워서 최대한 많은 부분을 읽으려고 한다. 그러려면 영화를 봐야 한다. 영화관에 가지 않은 주에는 읽을 거리가 거의 없을 때가 많다. 좋은 동력이다.


전염병 초기에는 그래도 영화를 보러 갔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고 있다. 가능성을 낮추는 일에 동참해야 하니까. 상상마당 시네마는 휴업 중이기도 하다. 회사일도 재택으로 하고 있어서 시간이 많아졌는데, 여전히 집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어렵다. 영화관에 가고 싶다.


기생충 특집은 끝까지 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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