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 대한 글을 쓴 적이 몇 번 있다. 그 글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 그때 썼던 내용을 오늘도 또 쓸 것이다.
1) 2007년 3월 3일. 김택용과 마흥흥이 MSL 결승전에서 만났다. 김택용이 마흥흥을 상대로 승리할 확률은 2.69%였다. 이것은 김택용의 저그전 승률이 아닌 마흥흥의 프로토스전 승률을 토대로 계산된 확률이었다. MSL 3회 우승자인 마흥흥을 상대로 신인 김택용이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김택용이 3대 0으로 승리한다. 너무 놀라운 결과였다. 경기가 빨리 끝난 덕분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보고 과외를 갈 수 있었다. 과외에 가는 길 내내 경기에 대해 생각했다. 스마트폰이 있던 시절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폭발하고 있을 반응을 살펴볼 수는 없었다. 그저 곱씹는 게 다였다. 그렇게 과외 학생의 집에 도착하여 어머님께 해고통보를 받았다.
2) 2006년 3월 3일. 개강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낮엔 뭘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의 나는 ‘핵인싸’였고, 개강파티에서 나의 생일 케익이 등장하는 건 당연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응당 일어나야 하는 깜짝쇼가 펼쳐졌다. 누군가 밖에서 생일 케익에 불을 붙여 들고 들어왔다. 다같이 노래를 불렀다. 나는 촛불을 껐다. 촛불이 꺼짐과 동시에 나의 생일파티도 끝났다. 그곳은 개강파티였지 나의 생일파티가 아니었다. 케익은 그저 좋은 안주였다. 촛불이 꺼진 후의 차가운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3)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나와 생일이 같은 후배의 이름이 표시되었다.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은 적이 없으니 마지막으로 언제 연락했는 지 가늠할 수가 없다. 뭐하고 사는지 궁금할 때가 있는데, 그 친구도 나에 대해 궁금해 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아닐 것이다. 언젠가 그 친구와 내가 춤추는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생일이 같아서 그런가? 라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잘 지내길 바란다.
4) 언제부턴가 삼겹살데이라면서 삼겹살을 먹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삼색고양이의날 이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했다. 우리집에도 삼색고양이가 산다. 방금 전에는 종이가방 손잡이에 머리를 넣고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5) 생년월일이 똑같은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어색하겠지.
6) 올해는 아이패드용 키보드를 선물로 받았다. 기프티콘도 몇 개 받았다. 오랜만에 연락해온 사람들이 있어서 반가웠다.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는데,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회사에 자리 없냐고 물어봤다.)
7) 생일은 대체로 평이했다. 요란하지 않게 보내는 걸 좋아한다. 생일이 요란하면 모든 생일이 요란해야 할 것 같고, 세상은 매일매일 요란해야 할 것이다. 위의 두 생일이 기억에 남는 건, 그 시절의 나는 어두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8) 새 학년과 함께 생일을 맞는 건 늘 별로였다. 어색한 와중에 생일 파티 같은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딱 한 번, 그 사실이 너무 억울하여 음력 생일에 친구들과 파티를 한 적이 있다. 학년의 끝에 친구들을 부르는 것도 별로였던 것 같다. 자라면서 오래 만나는 친구가 생기고, 그들이 나의 생일을 알아주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생일에 반장 선거를 했고, 반장이 되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해보는 반장이었다. 그게 마지막은 아니었다(?). 재수학원에서의 생일에는 점심에 엄마가 싸준 미역국을 꺼내며 사람들에게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말했다. 재수학원은 3월보다 빨리 시작하기 때문에 조금 덜 어색했다. 군대에서는 생일에 불침번에서 열외시켜줬다.
9) 나보다 생일이 하루 빠른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 어제는 그들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다. 늘 미안하다.
10) 회사에서 생일파티를 해야 하는데, 회사는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