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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소지 Jun 05. 2024

싱글맘 임신이 나의 모든 계획을 엎어놓았다.

미국지사 발령과 동시에 예상치 않은 임신, 뒤집어져버린 나의 미국행 계획

작년 말 겨울부터 이야기가 나온 나의 해외지사 이동 가능성 때문에 올해 곧 해외 이동이 있을 거라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미국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어서, 평소 뭔가를 엄청 척척 계획하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지만 아 그렇다면 이 정도의 샐러리로는 이런 정도의 삶을 살아야지, 하는 어느 정도의 두루뭉술한 생각은 있었다.


원 베드룸 아파트: 여유있게 버짓팅을 하려면 스튜디오가 좋겠지만, 김치찌개 한 번 끓이고 집 전체와 침대에 냄새가 배는 그런 상황은 원하지 않아서, 적당히 원베드룸 아파트로 알아봐야지~

골프 다니기: 독일에서도 혼자 심심했는데 미국에서도 혼자 심심하겠지? 주말마다 골프를 다니면서 손 놓고 있던 골프 다시 수련해보자. 미국에서는 라운딩 하면서 술도 즐긴다는데 완전 내 취향이잖아~

미국 내 여행 다니기: LA와 시애틀에 좋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와 친구들 보러 자주 놀러다녀야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와이너리 테이스팅 투어는 두말하면 잔소리지! 시애틀 친구랑은 골프 라운딩 같이 다니기로 이미 천년 전부터 약속을 해 놓은 상태. 마이애미도 가봐야 하고 요세미티도 가봐야 하고 갈 곳이 너무 많아~

미국 와인 탐험: 와인을 좋아하는 나로서 아직 유럽 와인이 좀 더 취향이지만 미국 와인을 알아갈 생각에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버블과 화이트와인에 곁들이는 미국식 오이스터바도 너무너무 기대되잖아~

저축: 저 정도 살고 어느 정도 놀러 다니면 이 정도가 남겠네? 어느 정도는 저축 해서 이제 나도 노후 대비를 해야지~ 


여러가지 놀러다닐 생각이나 새로운 곳을 탐험할 생각 정도로 널럴했던 나의 미래 계획. 하지만 임신 5주차에 테스트기 줄을 보는 순간 (삐빅, 임신입니다), 모든 계획이 뒤집어져버렸다.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인생에서 내가 누군가를 건사해야 하는 인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투 베드룸 아파트: 미국 집구하는 사이트들을 보니 역시 미국은 원베드룸도 사이즈 자체는 매우 커서 여유있는 크기였지만, 내니를 쓰거나 아기 분리 공간을 만들어주거나, 한국에서 가족 친구들이 방문하면 지내야 할 공간 등을 생각했을 때 아무래도 투베드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산후 처음 두 달은 상주 입주 도우미를 고용할 생각이어서 투베드룸이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원베드룸 버짓에서 최소 1000불 추가요~ 

육아 외주 항목들: 내가 직접 아이를 보며 케어하는 것이 아이와의 유대감 형성에도 좋고 내 행복감에도 좋은 것 왜 모르겠나. 하지만 내가 안정적인 정신과 마음, 튼튼한 육체로 직장에 복귀하여 경제활동을 지속하고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나와 아이의 인생에 좋을 것이라는 결정을 하여 육아활동에서 외주를 줄 수 있는 부분은 내 월급을 속된말로 "다 꼴아박아서라도" 외주를 주기로 결심했다. 신생아 관리, 데이케어, 내니 등을 비롯해 태권도/검도 같은 체육 활동이나 피아노 같은 음악활동 (타이거맘 기질 충분...) 등을 최대한 이용하여 내가 주중에 아이를 직접 손수 케어해야 하는 비중을 대폭 줄이고, 나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와 픽드롭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결정. 내가 생각했던 내 골프, 국내여행 비용들이 다 여기로 이동이요~ (데이케어 3000불, 파트타임 내니 1000~2000불, 플러스 알파 등등등...)

국내 출장: 미국팀으로 이동하면 간간히 미국 내 출장이 한 해에 몇 번 정도 있을 것 같은데, 이 때도 나는 최대한 출장은 가고 오버나잇/올데이 내니를 구해서 아이를 맡기려고 한다. 원래 출장을 좋아하기도 했고 아이 때문에 일에서 밀린다면 위기감을 얻을 것 같아서, 나중에 그 핏덩이 같은 아이를 떼놓고 어찌 출장을 가겠나 싶은 마음이 벌써부터 들고 눈앞에 아기가 아른아른 거릴 것 같긴 하지만, 자본주의의 힘으로 최대한 주어진 출장은 소화하도록 노력하기로. 


이렇게 내 위주의 계획에서 아기 위주로 모든 계획들이 뒤집혀버렸다. 억울하냐고? 전혀 억울하지 않다. 오히려 기대되고 설렌다. 저런 삶은 어떤 삶일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삶의 모드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다. 


벌써 예상되는 오버 버짓만 월에 5천불이 넘는다. 내 급여로만 생활한다면 저축은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르며, 오히려 모든 것을 맥시멈으로 플래닝한다면 마이너스 빵꾸가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애기아빠와 나 사이는 뭔가를 같이 플래닝하거나 할만한 사이가 아니지만, 아기에 대한 책임은 나누기로 이야기가 되어있고 애기아빠도 reasonable한 사람으로 본인의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연락을 간간히 이어나가고 있는지라 경제적인 면에서 애기아빠가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라 참 다행이다. 물론 미국은 법정 통해서 친자확인을 하면 양육비가 법정 강제집행이 되기 때문에 애기아빠도 사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는 하다. 그의 선택지는 협력 뿐...


가장 최근 애기아빠와의 통화에서 서로의 우선순위를 얘기하며 의사 조율을 하는데,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나온 말은 


"너랑 싸우고 다툴 생각은 전혀 없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태어날 아기에게 최고와 최선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네가 이것에 협력해주기를 바란다." 


그는 협력하기로 동의했다.


인생은 잔잔하게 흘러가다가도, 이대로 가다가는 내 인생에 변화가 있기는 할까? 싶은 순간 갑자기 뒤집어 엎어져버린다. 이런 일이 몇 번 있었지만 싱글맘 임신사건만큼 대박적인 사건은 인생에 처음이고, 이 일을 슬기롭고 현명하게 대처해나가는 것이 나의 인생 목표가 되었다. 인생에 어떠한 뚜렷한 목표를 갖고 걸어본 적은 딱히 없었다. 이제는 목표가 생겼으니, 목표가 있는 삶을 즐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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