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말로 제압해서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술자리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쓸모없는, 그러나 치열한 논쟁이 있다.
"축구의 신은 메시냐, 호날두냐?"
이런 논쟁은 밤을 새워도 결판이 나지 않는다. 애초에 각자가 들이미는 평가 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골 숫자를, 누군가는 천재성을 본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가족이나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대화를 토론이나 전쟁으로 착각한다.
부부나 연인 사이의 다툼은 대개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치약을 중간부터 짰다거나, 양말을 뒤집어 벗어놨다거나. 그런데 이 사소한 문제가 5분만 지나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싸움으로 번진다.
"당신은 왜 항상 그 모양이야?" "그러는 너는 뭐 잘한 거 있어?"
논점은 치약에서 인격으로, 현재에서 과거로 번진다. 목표는 하나, 상대의 입을 다물게 하고 내가 승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착각이 치러야 할 대가를 계산해 보아야 한다. 상대를 논리로 꺾어 누르면 그게 진짜 승리일까. 아니다. 그건 공멸이다. 상대가 패배감을 느끼는 순간, 관계의 신뢰도 같이 무너진다.
이 소모전은 집 밖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내 말이 맞다며 논리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사람들은, 말싸움에서 이겼다는 값싼 우월감에 취해 길을 잃는다. 말싸움에서는 이길지 몰라도 그 대가로 계약은 깨지고, 연인과는 헤어지며, 자식은 방문을 걸어 잠근다. 논리에서는 이겼지만 실리에서는 완패한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공도 이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다. 한 농부가 와서 일 년은 세 계절뿐이라고 우기자, 자공은 사계절이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싸웠다. 결국 공자가 나와서 농부의 편을 들어주며 돌려보냈다. 억울해하는 자공에게 공자는 말했다.
"저 사람은 평생을 여름의 시간 속에서만 살아온 사람이라 겨울을 모른다. 겨울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에게 얼음을 설명하려 드는 건, 그가 무지한 게 아니라 네가 어리석은 것이다."
대화의 목적은 상대를 가르쳐서 개조하는 게 아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획득하거나 갈등을 안전하게 종료하는 것이다.
여름만 아는 사람에게 겨울을 강요하는 건 에너지 낭비다. 상대가 틀린 말을 한다고 해서 굳이 바로잡아주려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의 말이 맞다고 운을 떼면 그만이다. 상대의 소모적인 자존심을 세워주고, 나는 원하는 실리를 챙기는 것이다.
주식 시장에는 폭락장에서 거래를 멈추는 서킷 브레이커 제도가 있다. 관계에서도 불필요한 감정의 폭락을 막으려면 이런 물리적인 차단기가 필요하다. 감정이 선을 넘고 논점이 인격 모독으로 번지려 할 때, 즉시 대화의 플러그를 뽑고 거리를 두는 것이다. 거창한 선언도 필요 없다.
잠시 방으로 들어가거나 자리를 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과열된 열기를 식히는 물리적인 시간이다. 신기하게도 30분만 상대가 시야에서 사라져도, '너 때문에 내 인생 망했다'라고 소리치고 싶던 분노가 '양말 좀 제대로 벗어달라'는 원래의 사소한 불만 크기로 쪼그라든다.
상대를 이겨먹으려 드는 건 미련한 자존심이고, 져주는 척하며 실리를 챙기는 건 영리한 계산이다. 집과 회사는 법정이 아니고, 눈앞의 배우자나 고객은 심문해야 할 피고인이 아니다.
말로 상대를 꺾어 얻어낸 짧은 승리감에 취한 자들은, 결국 망가진 관계라는 무거운 대가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며 패배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