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모르는 사람들의
빈곤한 장부

사소한 거짓말과 적반하장은 왜 세트로 다니는가

by 배성모

조직이나 관계 안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실수 앞에서도 핑계를 찾아내고, 세상의 불합리를 끌어와 자신을 피해자로 둔갑시킨다.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뜯어보면 공통점이 하나 나온다. 사소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습관이다. 보내지도 않은 메일을 보냈다고 우기거나, 거래처와 통화하지도 않았으면서 통화했다고 둘러댄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로 그 순간만 모면하려 든다. 그러다 거짓말과 실수가 팩트로 밝혀지면, 사과하는 대신 분노의 스위치를 켠다.

“아니, 그게 아니라!”로 시작되는 그들의 변명은 한 편의 소설이 된다. 개인적인 집안 문제를 끌고 와 동정심에 호소하거나, 본질을 벗어나 상대방이 과거에 했던 실수를 끄집어내며 억지 논리를 펼친다.

어떻게든 상대의 불합리함을 찾아내어 "나만 잘못한 게 아니다"라는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왜 이들은 사소한 거짓말과 적반하장이라는 두 가지 카드를 세트로 들고 다닐까?

답은 간단하다. 그들의 내면 장부가 파산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른의 세계에서 사과란 감정적인 패배가 아니다. 내 장부에 작은 적자를 내더라도, 전체 판을 다시 굴러가게 만드는 비용 지불이다. 내 잘못을 인정하고 타격을 흡수할 수 있는 맷집이 있는 사람이 사과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 작은 손해조차 감당할 밑천이 없다.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버티고 있던 자존심마저 무너져 내린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뻔한 거짓말로 상황을 덮으려 들고, 그마저 통하지 않으면 화를 내며 대화의 판을 엎어버린다.


사과는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자아의 체급 문제다. 주변에 사소한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고, 들통났을 때 화를 내며 논점을 흐리는 사람이 있다면 기대를 접는 편이 낫다. 그들에게서 사과나 반성을 끌어내려 애쓰는 것은, 잔고가 0원인 파산자에게 빚을 갚으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은 에너지 낭비다.


이런 부류를 대하는 구조는 기록과 건조함이다. 그들이 소설을 쓰며 화를 낼 때, 같이 분노하거나 진흙탕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 그저 건조한 표정으로 날짜와 시간이 적힌 데이터, 통화 내역, 이메일 기록이라는 객관적인 팩트만 눈앞에 밀어 넣는 것이다.

거짓말과 변명으로 지은 모래성은, 감정이 섞이지 않은 팩트 앞에 연약하게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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