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에 정확하라

쓸데없는 일관성은 무능의 다른 이름이다

by 배성모

누군가 묻는다.


“여자친구와의 약속과 부모님과의 약속이 겹쳤을 때,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정해진 원칙을 찾으려 든다.


“당연히 가족이 먼저지.” “미리 한 약속이 무조건 우선이야.”


이처럼 자신이 얼마나 일관되고 원칙 있는 사람인지를 증명하려 애쓴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같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일관성을 훌륭한 덕목으로 여긴다.


“나는 원래 이런 건 절대 안 해.”

“누가 뭐래도 내 스타일대로 밀고 나갈 거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자신의 태도와 방식을 굽히지 않는 것을 줏대 있고 멋진 일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구조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위험하고 무능한 짓이다.


입력값이 달라졌는데 똑같은 결괏값을 고집하는 기계는 원칙이 있는 게 아니라 고장 난 것이다.

거래의 룰이 바뀐 시장에서 옛날 주판알만 튕기고 앉아 있는 맹목적인 일관성은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상황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어제는 통했던 방식이 오늘은 패착이 될 수 있고, 어제는 싸워야 했던 타이밍이 오늘은 고개를 숙여야 할 타이밍일 수 있다.

상황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변수다. 자기 객관화가 끝난 사람들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스스로의 한계선을 긋지 않는다. 비대해진 자아를 비워두고, 눈앞에 놓인 상황의 좌표를 냉정하게 읽어낸다. 지금 내게 주어진 자원은 얼마인지, 여기서 취해야 할 이득과 감당해야 할 리스크는 무엇인지 계산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 들어맞는 최적의 행동을 건조하게 배치한다.


이것이 바로 ‘상황에 정확하다’는 의미다. 상황에 정확한 사람은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황이 바뀌었으므로 전략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물리 법칙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한결같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 자신의 이익이나 생존을 희생하는 어리석은 타협을 하지 않는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이상한 신념에 갇혀, 진흙탕 같은 전장에서 빳빳하게 다려진 제복의 각만 잡고 있는 맹목적인 일관성은 자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전장에서 살아남는 자는 명분을 쥐고 꼿꼿하게 서 있는 자가 아니라, 날아오는 총알의 궤적(상황)에 맞춰 빠르고 정확하게 몸을 숙이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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