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게. 꾸준하게.
나를 지탱하는 힘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활자의 힘이라 말한다. 이것은 타고난 재능도 아니고, 고상한 취미도 아니다. 그저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실용적인 도구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보던 미군 방송(AFKN)의 한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화면 속에는 백발이 성성한 미국인 노인이 앉아 있었다. 초등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지만 5선 의원까지 지내며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는 그의 인생사를, 아버지는 내게 찬찬히 통역해 주셨다. 아버지는 그분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저분을 봐라. 공부만 잘한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사회자가 비결을 묻자, 노인이 남긴 대답은 내 인생을 관통하는 화살이 되었다.
“가난하여 학교는 못 다녔지만,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찢어진 신문 한 귀퉁이라도 주워서 하루 두 시간씩은 꼭 읽었습니다.”
거리의 간판, 버려진 설명서, 남이 읽다 버린 잡지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는 그 소박한 고백은 어린 내 마음에 깊은 닻을 내렸다. 나는 에디슨처럼 엄청난 노력을 할 자신도, 파브르처럼 곤충과 함께 잠들 행동력도 없었다. 많은 위인들처럼 타고난 영민함은 없었지만, 이 단순한 반복은 가능할 거 같았다.
‘그저 무식하게 읽어내는 행위 하나만큼은 나도 할 수 있겠다.’
그런 묵직한 확신이 들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내게 첫 번째 시련이 닥쳤다.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기운 집안 형편과 아버지의 심근경색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유니폼을 벗던 날, 나는 세상이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부모님의 근심 어린 눈빛을 보며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엇이라도 해서 텅 빈 불안을 메워야 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화면 속 그 노인의 말이었다.
‘그래, 읽자. 교과서가 아니어도 좋다. 하루 두 시간은 활자 속에 파묻히자.’
그날부터 동네 서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좁은 책장 사이는 나의 도피처이자,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비상구였다. 추리소설의 긴박함, 에세이의 위로, 철학책의 난해함, 무협지의 호쾌함까지 가리지 않고 삼켰다. 남들은 시간 낭비라 했지만, 나는 그 잡식의 시간을 통해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을 배웠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그 시간의 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시험을 위해 억지로 읽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나도향의 ‘물레방아’, 신채호의 역사관을 나는 이미 재미로 만나고 있었다.
어느 날 시험지에 정비석의 단편소설 ‘성황당’ 지문이 출제되었다. 이전에 그가 쓴 ‘삼국지’에 푹 빠져 같은 작가의 작품을 신나게 찾아 읽어두었던 터라, 억지로 지문을 분석하는 대신 반가운 옛 친구를 만난 듯 미소 지었던 기억이 난다.
목적 없이 쌓아 올린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닥치는 대로 읽어낸 문장들이 내 삶의 단단한 밑바탕이 되어주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독서는 내게 단순한 지식만을 준 것이 아니었다. 운동을 그만두고 비어버린 마음의 근육을 활자가 대신 채워주었다. 다양한 관점을 오가며 본질을 바라보는 사고력, 타인의 고통을 내 것처럼 상상하는 공감 능력이 그 자리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서로 다른 사실들을 엮어 새로운 길을 만드는 창의성을 얻었고, 무엇보다 수많은 주인공들이 절망 끝에서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무너지지 않는 회복탄성을 배웠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완성형이 아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여전히 배운다. 하지만 두렵진 않다. 지난 30년간 찢어진 신문 조각이라도 읽어내며 축적해 온 그 무식한 활자의 시간이 내 안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부족하다는 핑계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찢어진 신문 조각조차 줍지 않으려는 자들의 게으른 변명이다.
삶을 구원하는 것은 거창한 계획이나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눈앞의 활자라도 닥치는 대로 씹어 삼키는 지독한 축적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