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과연 월루인가,아닌가?
내 직업은 업무 시간에 추리 소설을 읽는 것이다.
유명하지 않은 소설을 읽을 때도 있지만 대형 출판사랑 새로 계약을 하게 되면,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업무 시간 내내! 2-3일에 걸쳐 읽게 될 수도 있다.
“아, 책을 만드시는 분이군요?”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지만, 내 업무는 기존 단행본 책들의 원고를 오디오북에 적합한 형태로 바꾸고, 활자를 가장 '듣기 좋은', 최적화된 음성으로 창작하는 일이다.
‘오디오북 에디터’라는, 종이책과 매체의 변화에 따라서 2019-2020년에 정도에 새로 생긴 따끈따끈한 직업이다. 미국의 '오더블'이나, 중국의 '히말라야'처럼 오디오북 시장이 큰 국가들에서 오디오북은 종이책에 버금갈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래서 오디오북 낭독 시스템도 최첨단이고, 오디오북으로 출간되는 형태도 몹시 다양하다. 한국에서는 아직 종이책의 서브처럼 느껴지며 아주 적은 파이를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업무 시간에 소설도 읽고, 유명 단행본들이나 에세이를 읽기 때문에 업무 만족도는 몹시 높은 편이다. 아직 오디오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모든 책들, <해리포터>나 <삼국지> 와 같은 레전드 도서들이 계약되기만 하면, 업무 시간에 당당하게 읽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동료는 한 달째 해리포터와 삼국지만 주구창창 읽고 있다..
종이책 에디터보다는 분야와 관계 없이 다양한 책들을 접할 수 있고, 활자를 오디오 음성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다양한 성우의 캐릭터를 꿰고 있어야 하는 직업이다. 성우 캐스팅도 감독과 출판사와 합의만 된다면 경계 없이 누구나 다 섭외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라디오 프로듀서와 종이책 에디터를 합쳐놓은 직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쯤되면 "와, 업무 시간에 책 읽으면서 월급 루팡하는거 아냐?" 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대신에 <삼국지>나 <토지>와 같은 대작을 만들게 된다면 한 달 내내 1000여 명의 캐릭터를 모두 분석하고, 배역 분배를 해야할 것이다. 배역 분리를 위해 시리즈를 3번 이상 읽을 수도 있고, 여러 명의 성우님들께 주연과 서브를 적절히 분배하고 그에 따른 비용도 수작업으로 산출해야 한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회사원 생활이구나, 생각할 만큼 정량적 업무를 해야할 때가 많고, 그래서 루팡이라고 하기는 좀 어려운 부분들도 많다.
또다른 장점이 있다면 국내에 미출간된 도서의 원고를 먼저 받아볼 수도 있고, 종이책으로는 인기가 없었지만 오디오북으로 어떻게든(!) 수익을 얻어 보려는 출판사들의 숨겨 놓은 보석 같은 책을 발견할 수도 있다. 계산해보면 주에 적게는 2-3권, 많게는 9-10권 정도의 도서의 원고를 작업하거나 책을 스캔(?)한다. 그리고 작업한 책들을 적절한 타겟에 맞게 플랫폼에 큐레이션하고, 홍보하는 것도 오디오북 에디터의 역할이다.
업무 시간에 추리 소설도 읽고, 베스트셀러 도서도 읽고, 각종 출판사 보석함의 야심작들도 읽어서 너무 좋은데, 사실 이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채널이 많지는 않다. 주변에 정말 추천해주고 싶은 책들도 많고, 오디오북이라는 생소한 업계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콘텐츠 트렌드와 인사이트들도 많다. 그리고 어플과 구독 서비스라는 새로운 매체를 다루면서 느낀 점들을 공유하고 싶은 열망이 커졌다. 무엇보다 이 직무를 하면서 수 많은, 보석 같은 성우님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목소리로만 승부를 보는 성우 덕질의 세계는 정말 신세계다..
오디오북 업계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거나, 문학도가 추천하는 트렌디한 콘텐츠를 큐레이션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의 브런치를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