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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의꿈 Aug 27. 2021

택시기사, 마술사, 변호사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

정치인한테 안 바래요, 평범한 일상에서 영웅을 찾는 게 훨씬 빨라요

첫 번째 주제의 주인공은 일본 추리 소설의 대가라고 불리며,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인 일본 작가 중 한 명인 ‘히가시노 게이고’이다. 올해로 그는 ‘데뷔 35주년’의 작가가 되었는데, 일주일 전 데뷔 35년 기념작품인 ‘백조와 박쥐’가 드디어 국내 출간 되었다.


일본어판의 분위기는 음산과 우울 그 자체이다..



물론 나는 ‘백조와 박쥐’가 국내 출간되기 이전에도 원고를 2번 이상 읽어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백조와 박쥐는 그가 스스로 “이 작품을 넘어서는 작품을 쓰는 것이 목표다”라고 할 정도로 명작이었고, 개인적으로 읽은 10년 간 읽은 20권 정도의 히가시노 작품 중 <용의자x의 헌신> 다음으로 가장 짜임새와 구성이 훌륭하다고 느꼈다. (아무튼 강추다, 꼭 읽어야 한다! !) 그러나 오늘은 작년 말에 출간된 새로운 시리즈를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밀리는 이제훈이 읽고, 윌라는 김영선 성우가 읽었다. 밀리는 일부 발췌, 윌라는 완독본이다.


2020년 하반기가 발표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로운 시리즈에는 '블랙 쇼맨'이라는 괴짜스럽고 어이 없는 주인공이 나온다. 미국에서 마술사를 하던 사람이고, 사람들을 눈속임하고 화려한 쇼를 하는 것에 능하다. 이전 시리즈에서 가브리엘이라는 형사가 냉철하고 수학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던 것에 반해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은 사기꾼 기질이 다분하다.


잠시 줄거리 설명을 하자면, ‘블랙 쇼맨’의 조카인 주인공(마요)의 아버지가 죽는다. 그 사람은 블랙 쇼맨의 친형님이기도 하다. 그는 경찰들의 수사와는 독자적으로 범인을 잡기 위해 수사를 펼치는데 중간에서 경찰의 폰을 훔쳐서 문자 기록을 보기도 하고, 경찰의 반응을 통해서 그들의 수사 단서를 추론하기도 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 대해서 거짓으로 아는 척을 하면서 긴장을 풀고 정보를 빼낸다. 사람들은 그를 '특이한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쉽게 마음을 열고는 한다.


그는 자기보다 20살이나 어린 조카에게 정보를 알고 싶으면 밥을 사고 숙박비를 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조카의 친구의 가게에 가서 비싼 술을 공짜로 얻어 먹는 여유로움을 보여준다. 경찰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일부러 미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깽판을 치고, 조카의 친구에게 친한 척하며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한다. 추론을 위해 마지막에는 마술사인 본업을 살려서(?) 자신의 친형님의 모습으로 분장을 해서 독자를 속이고, 등장 인물들을 농락한다.


그는 웃기고 사기꾼 같으나 밉지는 않은 캐릭터다. 작가는 처음에 그의 특이한 면모를 통해 마치 그가 혹시 범인은 아닐까 의심하도록 만든다. 뭐 히가시노 게이고는 항상 모든 사람, 주인공 그 자신까지 의심하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블랙 쇼맨’은 얼마 전 종영한 sbs드라마 <택시기사>의 이제훈, tvn 드라마 <빈센조>의 변호사 역할의 송중기를 닮았다. (밀리 오디오북을 이제훈이 읽은 건 신의 한 수.. 추구하는 이미지가 닮았다.)

전여빈 캐스팅이 송중기를 더 돋보이게 했다


공권력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사람들은 이제 택시기사로 분장한 어떤 정의의 사도나,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의 변호사에게 정의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sbs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열혈사제>에서 김남길이 연기했던 캐릭터도 경찰 대신 조폭 무리를 때려잡는 일이었다. 경찰과 검찰은 이미 조폭과 같은 사권력(?)에 잠식 당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추리 능력이 월등한 마술사나, 싸움을 잘하는 택시기사, 변호사, 사제에게 정의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소위 형사라고 하면 냉철하고 증거 잘 찾고 심문 잘하고 조금은 인간적인, 가슴이 뜨거운 사람을 원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양아치스럽고 사기꾼 같이 웃기고 뭔가 민폐를 끼치는 삼촌이라도 정의를 위하고 진심인 일상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다.


영웅은 이제 우리 일상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우리는 이제 스스로 영웅이 되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 2030세대들은 사회의 공정함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고, 대신 재테크와 주식을 신뢰하게 되었고, 자신 만의 아이돌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간 추리소설을 읽고 괜히 쓸쓸해지는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설정한 새로운 캐릭터를 보고 통쾌함과 동시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인지 모를 일이다.


글을 마치며 요즘 나의 영웅인 릴 나스X 를 소개한다.. 뜬금없는 힙합이지만 악마 같은 사람들이 들끊는 사회에서 그는 스스로 악마(devil) 이 되기로 결정한 분이시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추가하기로 하고 그의 레전드송 뮤비를 공유한다. (나의 고막메이트 기몽초 님의 해석을 덧붙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oUETBsNrL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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