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생은 동덕여대 사태 어떻게 생각해? +동덕여대 근황

수도 없이 많이 받은 질문이다.

by 배지영
배지영, "[현장] 동덕여대 래커 범벅, 잘 지워졌을까?", 매일신문, 2025.09.17, https://naver.me/GJ5O4WC9

동덕여대 현장 르포 기사가 나가고 섭섭하다는 연락을 받는다. '어떻게 여대 나온 네가 그럴 수가 있냐'는 것이다.


하지만 우선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동덕여대 사태에 대한 해석'과 '여대 존립에 대한 생각'은 분리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동덕여대 래커칠 사태가 한창일 당시 나는 감정에 휩쓸려 '집단 비이성 행동'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걱정스러웠다.


내가 사랑하는 학교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그 사랑하는 학교'를 훼손한 게 나라는 사실도 언젠가 직면할 학생들이, 그때 가서 받을 상처를 공감해서였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온전히 자기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집단적으로 행동을 벌인 뒤에는 언제나 상처와 공허함만이 남는다. 자기모순과 자기분열을 겪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이들을 제외하고 나머지(아마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앞으로 마주할 고통스러운 책임과 성찰의 시간에 진심으로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덮어놓고 지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제대로 소화하는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꼭 당부하고 싶다. 자기자신의 존재와 성장을 위해서다.

본래 인간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감정적이게 된다. 훨씬 편하고 자연스러운 쪽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집단 야만, 집단 광기'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이 아니라 인간인 것은 '자연스럽게 살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노력해서 더 나은 방식으로 살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더라도 지적인 노력으로 이겨내는 존재인 것이다.


'광기, 야만'이라는 표현에 학생들이 당장은 기분 나쁘겠지만 결국 스스로 가장 분노해야 할 대상은 자기자신이라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더 나은 존재로서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덮어두고 덜 나은 존재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자기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사람인데도 말이다.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벌인 기물파손은 스스로의 합리적 사고능력을 무시한 자해 행위였다. 이번 사태로 가장 마음을 다친 사람은 누가 뭐래도 본인들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그다음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


선의와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감정적으로 휩쓸리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개인들의 생각은 온전히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분명 한 명, 한 명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위대한 개인들임에도 어느새 집단의 과잉감정만 남겨질 뿐이다.

나는 동덕여대 학생들이 똑똑하고 야무진 친구들인 것을 안다. 한 명씩 마주하면 빛나는 존재들이다. 여자대학교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며 사회에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아가겠다는 멋진 태도를 지녔을 것이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과 학교, 그리고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내면의 가치와 충돌하는 듯한 소식에 분노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엔 사랑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


'사랑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말이 부디 학생들에게 와닿는 표현이길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내 손으로 망치고 나면 겉으로 보이는 상처보다 몇 배로 큰 상처가 내 마음에 남는 법이다.


그 어떤 문제도, 감정이입으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욱이 개인의 이성능력을 무시하고 집단이 감정적으로 뭉치는 것은 필시 문제를 망칠 뿐이다.


합리적인 개인들이 더 자유롭고 편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성적 사고를 집약해 만들어낸 문물 중 하나가 '법'이고 '규칙'이다.

이를 넘어서서 강력한 영향을 발휘하고 싶었다면, 법과 규칙을 만든 것 이상으로 인간답게 합리적 절차를 통해 문제를 대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렇게 의식적으로 노력이 많이 드는 방법을 찾지 않았거나 못했고 안타깝게도 '야만의 방법'을 택했다. 지성을 대변해야 할 대학생으로서 지적이지 못한 방법을 택한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지금 나는 '잘못했다/아니다'를 따지는 중이 아니다. 그리고 잘못한 것이 맞다. 하지만 그보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로 살아가며 세상을 대충 대하는 태도'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그것은 자기자신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앞으로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발전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자기자신을 위해서라도 성찰하고 책임지고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태도를 조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성찰, 책임, 태도조정. 이 중 어떤 것도 시작하지 않은 채 여전히 화살을 바깥에 돌리거나 세상에 무조건적인 용서를 요구하는 행위는 '2차 자해행위'가 될 것이다. 합리적 인간으로 다시 걸음마를 떼 나갈 여대 후배들을 응원한다.

나아가, 나는 동덕여대 래커칠이 '대한민국 정치와 교육의 실패'를 보여주는 뼈아픈 상흔이라고 본다.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 선배들이 집단광기로 우르르 모여 감정적으로 선동하며 그럴듯한 명분으로 국가를 운영한다.

실질적인 알맹이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표현을 내세워 앵무새처럼 '특정 단어'만 반복하며 정치조직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잊은 듯, 끊임없이 비이성의 방식이 해결책인 것처럼 기껏 쌓아 올린 자유와 공정의 질서를 죄책감도 부채감도 없이 다 무너뜨리는 소식이 연일 들린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우리나라의 교육까지 담당하고 있다. 그들의 몰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사고체계의 집약을 위대한 유산이랍시고 후배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세상을 항상 감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교육을 받고 자란 학생들은 합리적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더 충실히 교육제도에 임했을수록 더 충실한 '후진적 교육의 산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동덕여대 캠퍼스에 남은 래커칠은 대한민국 정치와 교육의 실패를 상징하는 뼈아픈 상흔인 것이다.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지 모르는 이가 법을 만들어 집행하고 있고, 무엇을 위해 교육을 하는지 모르는 이가 교육과정을 만들어 학생들을 평가하고 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들이 숨 쉬듯이 '대충 감정적인 태도'로 나라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집단의 광기를 사회 후배들이 그대로 지켜보고 배우고 답습하고 있다.

그런데 후배들에게 다시 바로 설 기회를 주지는 못할 망정, 가운데 껴서는 책임지고 성찰할 기회마저 뺏고 성장할 수 없도록 일을 덮어버리고 있다.


더 자유롭고 더 공정하게 살고 싶던 개인들이 수많은 고민과 희생 끝에 세워놓은 '기본'을 다 망가뜨리고 후배들이 다시 세울 수도 없도록 그 질서의 흔적조차 묻고 숨겨버린다.


동덕여대 래커칠 사태는, 말로만 '사랑하는 대한민국/사랑하는 국민 여러분'하면서 실상은 국가와 국민을 상처 내고 괴롭히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 정치의 축소판이다.


젠더갈등, 대학의 소통 부재 등 동덕여대 사태에 따라붙는 여러 부산물들은 이 사태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한민국 정치와 교육의 실패가 이번 사태를 낳았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이 이번에 학교의 소송취하를 이끌어내려 나선 것은 스스로 문제의 원흉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고 해석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제는 정치와 교육에서 물러나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말 뿐인 사랑을 여전히 사랑인 줄 착각하는 이들을 마냥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잘 살아보고 싶다"라고 말하면서도 나를 괴롭히는 이에게 나를 대표할 권리와 힘을 주는 것은 자해행위이다.


인간은 '잘 살고 싶다면서 날 힘들게 하는 원흉을 끊어내지 못할 정도로 나약한 존재'는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의 위대함을 누구보다 믿고 우리의 합리적 선택과 결단을 무한 지지한다.


#첨언. '여대'에 대한 나의 생각.


나는 여대가 존재해서 감사하다. 운이 좋아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대학을 다닐 수 있었던 기회가 내 인생에는 크나큰 혜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대는 여학생들에게 '한번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주는 공간이라고 본다. 사회에 나오면 결국은 남성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게 되지만 그전에 예비단계로 '사회적 허들'을 한 단계 낮춘 채 여성들에게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경험해보게 하는 장인 것이다.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은, 여대는 본무대가 아니라 예비무대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여대가 여성에게 어떤 제약도 없이 한번 해볼 기회를 주는 정신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 여기서 내가 말하는 '허들'은 남성에 대한 가치판단된 용어가 아니다. 남성이 있는 환경과 없는 환경은 여성들이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고려할 조건이 하나 생기고 없어지는 문제다. 물리적 문제가 되었건 정신적 문제가 되었건 말이다. 여성 개인의 입장에서 고민할 거리가 하나 줄어든다는 의미에서 '허들'을 언급한 것임을 밝힌다.


그래서 나는 여대 존재에 감사하다.

과거 여성교육환경이 열악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교육기관이,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대는 언제나 상징적 의미를 지닌 '특별한 공간'이라는 점을, 결코 자연스럽지 않고 '사회의 다양성 중 하나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누군가의 배려를 받아 존재한다는 점을 여대 후배들이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역사 안에서 여대가 존재해도 된다고 사회적 합의가 있던 시기와 지금의 시기는 분명 다르다. 여기서 다시 또 임금격차가 어떻고 임신출산육아가 어떻고의 이야기가 나오면 후진적 대화가 된다.


지금 나는 남성과 여성의 평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개인 차원에서 평등을 자꾸 얘기하는 것이 여성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각자 자기가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평등'이라는 단어를 매 순간 떠올리며 모든 분야에서 저울질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개인 여성의 인권을 더 높이는 방법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당연히 여성이건 남성이건 동등하게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이처럼 '존재 가치의 평등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 대한 평등을 외치는 것은 애초에 차이를 지닌 존재들 사이에서 그 기준조차 세우기 모호할뿐더러 되려 남성 개인, 여성 개인의 존재들 각각의 특수함과 개성을 지우는 일이다. 여성을 위한다면서 여성 개개인은 소외시킨다니 얼마나 모순인가.


다시 여대 논의로 돌아와, 그래서 여대 존립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특히 지금 학교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해가 지날수록 학생 숫자가 줄어들고 경쟁력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대가 존재해 준다면 여학생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다.

급변하는 시기임에도 여전히 여성교육기관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학교는 창립의 정신을 기리려는 의지를 경영전략보다 우선하여 인위적으로 발휘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아닌 일에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 성숙한 인간의 태도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학교가 그만큼이나 여대를 지키려는 의지를 발휘하지 않고 있다면 그때는 학생들이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원하는 바가 있고 상대방이 그것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을 때 말이다.

그때는 '설득'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설득의 방식으로 폭력과 범법행위를 택한 것은 가장 수준 낮은 선택이다.


지성인으로서, 합리적으로 여대 존속 필요의 근거를 제시하고 구성원들의 설득에 나섰다면 사회가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덕여대 래커칠 사태에서 그런 지성인의 태도는 찾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아무도 설득할 수 없게 되었다.

본인들은 감정이입으로 똘똘 뭉친 배타적 집단이 되었고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틈을 완전히 차단했다. 심지어는 같은 학교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났지 않은가.


래커칠 사태는 '정성을 들여 설득하고 논의해야 할 일'을 대충 감정적이고 폭력적으로 해결하려 한 사건이다. 지적으로 행동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소위 '지성인'들의 민낯이다. 특정 정치인들이 보이고 있는 모습과 판박이다.

무너지는, 국가의 정치와 그 정치로 비롯된 교육 질서 안에서 학생들이 이 같은 선택을 했던 것에 대해 모든 정치인들과 국민들은 반성하고 대오각성해야 한다.


범법을 행한 학생들이 성찰하고 책임지는 것과 별개로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것은, 동덕여대 사태 속 학생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우리나라의 정치적•교육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신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