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캔슬링

아이팟 프로를 경험하며

by 배지


원래 음악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성우가 꿈이었다. 나도 인어공주처럼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성악으로 음대를 가고자 고등학교 초반까지도 레슨을 열심히 받기도 했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내 직업이 뮤지컬 배우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만큼 늘 내 삶에서 음악은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러니 자연스레 노래도 많이 들었다.



예민한 감성을 지녔던 10대에는 특히나 새벽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많이 들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스위트 뮤직 박스를 진행하던 DJ 정지영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꼭 그녀가 내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생생했다.


사연을 듣는 것도 가슴이 간질거릴 때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우주로 내보내는 건 새벽의 적막함 속의 노래였다. 극도로 조용한 밤공기 속에 넬이나 브라운아이즈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 세상에 그저 나와 그 음악 둘 뿐인 기분이 들었다. 물아일체, 혼연일체 뭐 그런 단어들이 뜻할법한 그런 진공관 속에서 음악이 내 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라디오로 감성이 한껏 촉촉해지면 이제 모아두었던 씨디중에 한 장을 꺼내들 차례다.

인트로부터 아웃트로까지 가수가 어떤 마음으로

한 장의 앨범을 만들었을까 나 혼자 그의 생각을 추측하며, 마치 책 한 권을 읽듯이 앨범을 통째로 듣는 것을 좋아했다.


브라운아이즈, 박정현, 박효신, 그리고 이적...


새벽 세시가 넘는 시간에

모두가 잠든 사이 우주 한가운데서

좋아하는 가수들이 만들어낸 그 음악 속에

흠뻑 젖어 있을 때면

꼭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고

그저 너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

나 그리고 음악 그 감동만

진리처럼 남아있는 것 같았다.

이 세상 아무도 모를 너의 진심을

나만은 온전히 느껴버린 그런 기분.

혼자만 아는 비밀.


그럼 이제 막 감성이 터지기 시작해서

시상이 떠오르고 시를 쓰고

감수성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여

방귀를 한번 뀌어도


아 방귀...

근육 사이를 비집고 나온 소리의 울림.

타인과 있을 때는 그 사람에 대한

예의 없음 및 대체 직전에 뭘 먹은 거냐 하는

배신감 및 신랄한 인격적 살인까지도 가능하게 할

그 소리.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그거 아무것도 아닌 공기의 울림.


이런 시를 쓰고야 마는

감성의 끝으로 치닫고야 마는 것이다.




최근 한 10년 동안은 그런 감수성은

단 1초도 가져 본일이 없었다.

소리나 냄새 등 감각의 작은 변화를 잘 알아치지만 동시에 민감하지는 않아서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고된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하고

수다쟁이 아들 둘(혹은 셋..)을 키우다 보니

시끄러운 것을 시끄럽다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아이팟 프로를 낀 순간


갑자기 세상이 너무나 고요해졌다.


회사와 번뇌와 육아와 대출을 모두 던져버리고


다시 음악과 나 둘만 세상에 던져주었다.


새벽에 나 혼자 듣던 그 노래들이 돌아왔다.



그러니 다시 노래들이 절절하게 다가왔고

(그래서 BTS를 더욱 애정 하게 되었고)

감성이라는 것이 내게 남아있는 줄 몰랐는데

다시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심장이 부르르 떨리는

그런 자아를 끄집어내 주었다.


덤으로, 내가 매일 타고 다니던 버스의 소음이

엄청난 것이었는지도 함께 일깨워 주었다.

노이즈 캔슬링이 되던 이어폰을 귀에서 뽑는 순간

정말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육중한 소음들이 다가왔다.

마치 내 귀가 원치 않던 소음 흙탕물을 뒤집어쓴 기분이랄까.


내가 한 십 년 넘는 세월을

마치 굳세어라 금순이가 되어

장칼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씩씩하게 살다 보니

많은 감각들에 굳은살이 배겨 무뎌지고

내 안의 감성 따위 물을 주지 않았나 보다.


감성적이라는 것은 예민할 수밖에 없고

예민하게 살아보면 불편한 게 많아진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시기에

경주마처럼 달려오다 보니 불편이 뭔가요

동시에 감성이 뭔가요 묶어서 포기했었나 보다.


고맙게도 내 안의 감성이

아직 다 죽은 건 아니라는 걸

에어 팟 프로가 귀에 속삭여주었다.


애들도 이제 제법 컸겠다,

내 앞으로의 10년은

다시 말랑거리는 감성으로

촉촉하니 살아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