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그 뜨거운 시절의 빗방울이 좋은 이유

by 배지

여름, 그 뜨거운 시절의 빗방울이 좋은 이유


귀청이 떨어질 듯한 매미 울음소리가 저층 아파트 나무 사이로 울려 퍼진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아직 낮인지 여기는 어딘지 낯선 기분으로 시계를 바라본다. 아직 세 시네. 하릴없이 엉덩이를 긁적이며 냉장고 문을 열어 수박이 썰려 있는 통을 꺼낸다. 이빨 시리도록 차가운 수박을 포크로 찍어먹고 밑에 깔린 달달한 수박 국물은 호로록 마신다. 아 비는 언제 오나.

여름 중에서도 한 여름이 되면 맥없이 힘이 빠지고 지친다. 그래서 시원한 장마철을 기다린다.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계절을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장마철이라고 대답 하겠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 오는 것이 왜, 그리고 어떻게 좋은지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번째는 집 안에서 비 오는 소리를 들을 때 좋은 점부터 이야기해보자. 일단 소리가 정말 듣기 좋다. 후두둑 후두둑 정도로 적당한 양의 비가 오는 때라면 창문을 활짝 열어두면 빗방울이 일정한 리듬에 맞추어 창틀과 유리창과 금속 난간 위로 토다닥 토도독 소리를 낸다. 귀에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해주는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 오는 날에는 클리셰하긴 하지만 파전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는 기름을 두르고 후라이팬 위에서 전 부치는 소리가 비 오는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냥 귀가 있다면 비오는 날 파전은 필연적인 것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편안해진 마음 상태에서 부추전까지 한 두어 장 부쳐 간장에 콕 찍어 먹으면 배도 두둑해지기 때문에 마음이 더블로 편안해진다.


두번째는 집 밖에서 비를 만날 때 좋은 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번째 가정은 i) 우산이 있다는 가정이다. 우산을 쓰고 비 오는 길을 걸어가면 비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뜨겁고 건조하게 메말라가던 아스팔트를, 키 큰 나무를, 아파트를, 학교를, 버스를 차가운 비가 파스스 식히고 있다. 한 템포 쉬어 가자. 빗방울이 여름에 지친 것들에게 속삭인다. 우산 속에서 비를 만나면 여름에 지친 것들이 한 숨 돌리는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도 우산 속에서 비를 만날 때 누릴 수 있는 좋은 점이다. 정확하게는 비의 냄새라기 보다는 비가 흙과 만나서 올라오는 그런 흙내음 이겠다. 요샛말로 테이스팅 노트가 얼씨(earthy) 한 향이라고 해야할까. 도시에 살고 있으니 흙을 볼일이 많지 않아 잊고 살지만 비 오는 날에는 공기중 수분이 어디에선가 나에게 토양의 냄새를 가져다 준다. 나는 부모의 몸에서 잉태되어 이 세상에 태어났겠지만 머나먼 나의 단세포 조상은 흙에서 시작했을 수도 있겠지 이런 우주적인 생각을 해본다. 갑자기 공벌레가 친근하다.


자 이제 좀더 깊숙하게 ii) 우산이 없이 비를 만나는 경우로 들어가보자


혼자 비를 맞는 경우도 있고 둘이 비를 맞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두 명이 같이 비를 맞는 경우라면 상당히 복잡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가슴이 터질 것 같고 그런 굉장한 부류의 이야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혼자 비를 맞는 경우부터 짚고 가는 것이 편하겠다.


기뻐서 혼자 비를 맞을 수도 있고 슬퍼서 혼자 비를 맞을 수도 있다. 슬플 때 혼자 비를 맞으면 눈물을 빗물로 위장할 수 있어서 좋다. 내 얼굴에 흘러내리는 이 물이 눈물인지 콧물인지 빗물인지 (침인지) 알 길이 없다. 사실 눈물도 가려지지만 이미 미역처럼 푹 젖은 머리카락이 내 얼굴에 처덕처덕 붙어 버리기 때문에 내 얼굴 자체가 가려져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옷도 가방도 본연의 형체를 잃어버리고 흐물거리는 상태로 한참을 빗방울에 두들겨지면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내가 무엇 때문에 슬펐더라 잠시 헷갈려진다.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렇게까지 대수였던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정신도 좀 차려진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추적추적 조금 돌아다니다 보면 이내 추워지고 어서 이 방황을 마치고 얼른 집에 들어가서 따끈한 물로 샤워하고 라면 끓여먹겠다는 마음이 먹어진다. 이렇게 비는 슬픈 사람의 마음을 달래준다.


기뻐서 맞는 비는 진짜 환상적이다. 필자 고등학교 시절 무엇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그 시절 십대 여고생의 감수성은 엄청난 것이어서 별 것 아닌 것에 난리통을 피우기 일 수) 무지 기쁜 상태로 환호를 하며 비를 온몸으로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 기분은 정말 온 몸이 반짝 반짝한 기분이었다. 자세히 묘사하자면 그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중 슈팅스타를 먹으면 입안에서 탁탁 튀는 그 사탕이 팔다리에서 터지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와하하 웃으면서 비를 맞고 뛰어다니면 미친 사람으로 오해 받기 딱 좋다. 그렇지만 ‘기쁜 날 비 맞기’ 행위는 나를 더 놓아버리고 기쁨을 온몸으로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자 이제 둘이 같이 맞는 비를 생각해볼 차례다. 그렇다. 클라이막스인 것이다. 여름 장마 비 속에서 격정적인 사랑을 하거나 아니면 분노의 헤어짐을 하거나 하는 것은 혼자 비 맞는 효과와 거의 비슷하다. 그저 두 사람이 두배로 그러고 있다는 것뿐이다. 두 사람이 빗속에서 가장 그 촉촉한 아우라를 살릴 수 있는 상황은 바로 둘이 설렘을 주고 받을 때다. 영화 늑대의 유혹에서 우산을 들고 있던 강동원처럼, 클래식에서 빗속을 뛰어가던 조인성 손예진처럼, 설렘과 여름 빗방울이 합쳐지면 영원히 길이 남을 한 장면이 되어버린다. 아직 너무 가까이 가기엔 쑥스러운 두 사람이 한 우산 속에서 서로의 체온이 느껴질 듯 말 듯한 거리에서 걸어간다. 보통 크기의 우산 하나는 둘이 쓰기에 늘 빠듯하다. 마음이 가는 상대의 저쪽 어깨가 빗물에 젖는 것은 아닌지 서로 신경이 쓰여 작은 우산 틈바구니에서 방향을 이리 틀고 저리 틀다 보면 공평하게 둘다 비를 맞아버리게 된다. 쏴아 내리꽂는 여름 비를 배경으로 엇갈리던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하는 그 순간… 이하는 상상에 맡기겠다.


이거 원, 뜨거운 여름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여름비의 매력에 대해서 매우 논리적이고 타당하게 증명해보려고 했는데 영 반대로 되어버린 것 같다. 비논리적이고 뜨겁기만 한 그런 것. 어쩌겠나. 무언가를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도망가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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