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문제집을 가져오던
태윤이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태윤이는 문제집을 천원짜리와 함께 가져왔는데
"이거 답안지 배껴써줄사람? 한페이지에 천원 준다!" 하고 책상위에 올라서서 문제집과 천원짜리를 흔들며 목청껏 소리쳤다.
볼살도 통통하고 안경쓴 똘똘이상에 앞니는 토끼같고 배도 조금 귀엽게 볼록 튀어나왔던 태윤이는 웃을때 살짝 볼에 들어가는 보조개가 매력포인트였다.
그 당시 용돈을 딱히 쓸 일도 없었지만 또 그렇다고 용돈을 주기적으로 받던 것도 아니어서 그 천원짜리 내가 갖겠다는 일념하에 나나!! 하고 손을 휘둘렀고 결국 그 문제집과 천원짜리는 나의 차지가 되어서 기쁜 낙찰자의 마음으로 문제집을 펼쳤었는데
새 문제집에 그냥 읽어보지도 않고 답안을 배끼기에는 그 문제집이 너무 아까워서.. 또 천원도 받고 내 실력도 향상하면 이건 나에게 개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린 나는 천원도 받고 또 그 문제집을 열심히 풀어서 태윤이에게 주곤 했다.
아마도 태윤이 어머니가 태윤이 공부시키고자 문제집 풀면 용돈을 준다 하셨을거 같은데 엄마보다 더 똑똑한 태윤이는 초등학생들의 싸디싼 인건비 시장의 적정 가격을 간파하고(천원이면 다됨) 학교에 와서 중간에서 적정한 이윤을 남기고 나머지 부분은 친구들에게 문제집을 푸는 외주를 주었던게 아닌가 싶다.
어떤날은
선생님이 쪽지를 모두에게 나눠주며 같이 짝으로 앉고 싶은사람 있다면 종이를 반으로 접어 한쪽에는 자신의 이름 나머지 한쪽에는 다른사람이름을 써서 내라고 하셨었다.
나는 내눈에 너무나 귀엽고 멋지던 태윤이 이름을 내 이름 옆에 나란히 써서 냈고 그 다음주 짝궁으로 선생님이 나와 태윤이를 짝으로 자리를 배정해 주셨다.
아니 그런데 이놈이 내 옆에 앉자마자 하는말
"아오~ 나 너 안썼는데?!!"
그래서 나도 바로 맞받아쳐주었다.
"야 나도 아니거든????"
솔직히 나는 태윤이랑 짝이라서 기뻤는데 자기는 나를 안썼는데 왜 되었냐며 큰 목소리로 볼멘소리 하며 한숨을 푹푹 쉬는 그 아이 얼굴을 보며 나도 더 큰 목소리로 부정했다. 나도 완전 너 안썼는데 대체 무슨일~~?!!!
저멀리서 담임선생님 입꼬리가 슬면시 올라가며
빙긋이 웃으셨던거 같다.
시간이 흘러 흘러 가을 운동회 때
학급 연극을 준비할 시간이 되었고
내가 심청전의 각본 쓰는것을 맡았다.
물론 배역으로는 심청이도 내가 꿰찼다.
근데 반 친구들이 많아서 심청, 뺑덕어멈, 아버지, 용왕 등으로는 턱없이 인물이 모자랐다.
그래서 심복이를 만들었다.
심복이는 심청이 동생인데
계속 심청이를 따라다니면서
누나~ 여기 어디야~ 바닷속이야?
누나~ 아빠는 어디있어~ 등이 주요 대사이며
희노애락 기승전결 없이 그냥
누나만 졸졸 따라다니는 동생이었다.
그리고 클라이막스인
커다란 박스로 만든 연꽃안에서 심청이가
튀어나올때도
심청이랑 심복이가 같이 짜잔! 하고 튀어나왔다.
하하핫
당시 전세계를 유행하던 마카리나 노래를 틀고
모두가 일렬로 서서 마카리나 춤을 추었던 엔딩을 했던것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사진이 한장정도 남아있는 것 같은데
다들 한복을 입고 신이나서 브이를 그리고
우드락으로 만든 대왕 연꽃이 붙은 박스를 뒤로하고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다글다글 피어있다.
아, 내 옆에서 영문도 모르고 웃고 있는 심복이는
물론 태윤이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