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지 Dec 15. 2023

휴가가 남았는데, 엔화가 싸다구?

나도 일본 여행 한번 가볼까


우리 엄마는 멋쟁이다.


지도를 잘 봐서 친구들이랑 여행도 잘 다닌다. 60대 멋쟁이 엄마는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다니는 것도 잘하지만 일본 여행을 좋아한다. 료칸에서의 온천, 나마비루에 입에서 살살 녹는 초밥을 먹는 맛,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켓몬스터의 성지가 있는 다이마루 백화점... 엄마는 수년 전부터 일본여행을 같이 가면 너무 좋다고 내 귀에 오랫동안 속삭여 왔다.


그러나 나에게 일본은 우선 방사능 걱정부터 되던 나라였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2011년 3월에 있었고 2013년에 첫째, 2017년에 둘째를 출산했었기에 어린 아기들에게 해로울까 봐 일본 여행은 거의 나에게 꿈도 못 꾸는 그런 곳이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해산물과 회, 초밥을 워낙 좋아하기에 일본은 가까이 있어도 못 가는 그림의 떡 같은 나라였다.




올해 2023년, 아들들은 초등학교 4학년 그리고 유치원생이 되었고 코로나라는 팬데믹을 한바탕 치러내고 나니 삶에 대한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일은 되도록 줄이고 싶었다. 후쿠시마 오염수도 방류한다고 하고 바다는 어차피 다 하나의 물일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서울에서 회를 사 먹나 오사카 가서 회를 사 먹나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엔저라는 사실이 나의 휴가 욕구를 마구 불타오르게 했다. 100엔이 900원대라서 너무 싸다 생각했는데 무려 800원대 후반까지 마구 내려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일본에 가서 위스키만 사 와도 비행기표 값은 벌겠는데?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예뻐 보이는 플리츠 플리즈나 꼼므데 갸르송 카디건은 한국의 반값이라는 사실에 구미가 확 당겼다. 게다가 올해가 지나면 없어져버릴 나의 아까운 휴가들이 무려 4개나 남아있었다.




가자!


왕복 비행기표도 아시아나 항공으로 30만 원대로 크게 무리 없었고, 회사 급한 일이 없는데 휴가도 있다. 해리포터 덕후인 아들이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면 마법 지팡이를 휘둘러서 지붕에서 불도 나오고, 물건을 공중부양도 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눈빛을 빛내며 엄마 제발을 외치고 있는데 크게 걸림돌이 될만한 것이 없었다. 휴가를 낼 수 없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 한 가지가 마음에 아주 걸렸지만 이럴 때는 또 의외로 (?) 흔쾌히 다녀오라고 등 떠밀어주는 남편 덕에 에라 모르겠다 비행기표를 질렀다.


가장 든든했던 것은 일본어를 잘하는 아빠와, 친구들이랑 이미 오사카 여행을 다녀온 똑똑이 엄마가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먹방 쇼핑 여행코스를 이미 다 짜두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여행인데 어른이 셋이 가니 무서울 것도 없었다.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여행이라니, 얼핏 보면 효녀여행 분위기를 띄고 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가 않다. 효년이라는 것이 전형적으로 나 같은 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엄마가 다 짜둔 계획에 비행기 표만 끊고, 아이 둘까지 데리고 5명이 급히, 그러나 든든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3박 4일 오사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