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지 Dec 20. 2023

롯데월드 가야 해서 일본 안 갈래

자식에게 휘둘리는 애미


비행기 티켓팅을 모두 마치고 호텔 예약도 마쳤을 때였다. 둘째가 유치원에서 받아온 다음 주 일정 가정통신문을 받아 들었는데 아뿔싸. 여행 일정을 급히 잡느라고 둘째 유치원 졸업여행을 생각을 못하고 그만 일정이 겹쳐버렸다. 비행기표도 모두 사버린 이상 참석 여부를 묻는 유치원에 아이는 여행에 불참으로 회신을 냈다.


- 건둥아 미안, 엄마가 날짜를 잘못 알아서 유치원 졸업여행 롯데월드 못 갈 것 같아. 대신 일본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자!


유치원 졸업여행이 뭐가 대수냐 싶었는데 둘째 친구들과 선생님과 전원 롯데월드로 가는 졸업여행을 일 년 내내 손꼽아 기다릴 만큼 그에게는 의미가 굉장했나 보다. 


"흑흑 건둥이는 일본 안 가고 롯데월드 갈 거야!"


둘째가 일본을 가지 않겠다고 나자빠졌다. 닭똥 같은 눈물을 투두둑 떨어뜨리는 걸로 시작해서 입을 크게 벌려 사이렌처럼 엉엉 운다.


정신이 혼미했다.

몸무게도 20킬로가 넘는 사람을 들처업고 공항을 가고 싶진 않았다. 가기 싫다 엉엉 우는 애를 위해 내 소중한 돈과 시간을 쓰기는 더더욱 싫었다.

일본을 다녀와서 제일 좋아하는 친구랑 롯데월드를 또 가자고 달래 봐도, 선생님이랑 같이 못 가서 싫다며 막무가내였다. 는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비행기티켓 취소 수수료를 알아봤다.

출발 일주일 전부터는 출발 후 환불규정과 거의 같았다. 그래도, 우는 아이를 일본까지 끌고 가서 생 돈 날리는 것보다는 취소수수료를 무는 것이 나 선택 같았다.




같이 여행을 가려했던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엄마, 미안한데 나랑 둘째는 못 갈 것 같아.

- 아니 왜?

- 둘째 유치원 졸업여행이랑 겹치는걸 내가 몰랐네.


엄마는 정말 황당해했다. 유치원생 하나 못 얼러서 비행기표 다 끊은 일본을 안 가겠다고? 애미가 되어서 겨우 7살 의견에 좌지우지되는 상황 자체를 어이없어했다. (나도 어이가 없었다)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나는 못 간다고 상황정리를 하자, 그때부터는 둘째의 눈물보다 더 큰 엄마의 투명한 서운함이 크나큰 비눗방울처럼 느껴져 왔다.


이 또한 예상치 못한 포인트였다.


텍스트에 '서운' 이라든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든지 하는 표현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사이가 긴밀한 엄마와 딸 사이에서라면 <카톡을 읽었지만 오지 않는 대답의 지속시간> 이라든지 <...> 점의 개수라든지 여하튼 평소와는 다른 기류만으로도 엄마가 굉장히 서운함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 일을 어쩌나 죄 없는 회사사람들을 붙잡고 어쩌면 좋냐고 고민과 하소연을 했다. 그러다 결정타를 맞았다.


- 나도! 내 딸이랑 스시 먹고 온천 하고 싶었는데!


오 마이갓. 엄마가 나에게 서운함을 표시하는 것은 거의 내가 결혼하고 13년 중에 두 번 정도 있을 일이다. 이제는 애를 울리거나 엄마 마음을 울리거나 진퇴양난에 빠졌다. 우선 유치원에는 다시 졸업여행을 가겠다고 키즈노트에 선생님께 말씀드리며, 번복해서 죄송하다고 사과드렸다.




별것도 아닌 걸로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 정리가 필요했다. 2-3일 그렇게 어지럽게 보내자 여행이 가고 싶은 마음도 뚝 떨어져서 다 모르겠고 그냥 안 가야지 싶었다. 비행기표 취소 직전에 확인차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 너 진짜 유니버셜 스튜디오 안 가고, 유치원 졸업 여행 가는 거 맞지. 이제 비행기표 취소하면 완전 끝이야.

- 휴 알았어 그냥 일본 갈게

- 뭐라고?

- 그냥 엄마랑 함마 따라서 일본 갈게


...


그렇게 서럽게 울고불고 하루종일 울면서 유치원 졸업여행 롯데월드 가야 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마음을 바꿔먹은 이유를 내가 (따지듯이) 물었다. 황당해서.


4일 동안 함마(할머니)가 일본을 가있으면 너무 보고 싶을 것 같단다. 그리고 엄마가 나중에 연호랑 롯데월드 데려가준다고도 했으니까. 뒷골이 땅겼다. 애한테 놀아난 것 같았다. 원했던 결론이긴 했는데 이미 김이 많이 빠져서 그런지 기분도 그저 그렇다. 자 이제 지금 가기로 결정하면 이제 번복은 없다. 유치원에도 또다시 못 간다고 말하고 확정이다. 아이에게 신신당부했다. 아이도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진상 유치원 학부모는 또또또다시 키즈노트 알림장에 메모를 남긴다.


- 선생님! 정말 너무너무 죄송해요 ㅠㅠ 유치원 졸업여행 아무래도 못 갈 것 같아요. 못 간다 했다 간다고 했다 또 못 간다고 말씀을 제가 드리네요 ㅠㅠ 정말 너무 번거롭게 해 드려서 어쩌죠 너무 죄송합니다 ㅠㅠ


천사 같은 선생님은


- 아닙니다 어머니~ 우리 건둥이 일본여행 너무 두근거릴 것 같아요~ 번거롭지 않습니다 ^^ 건둥이가 여행 다녀와서 들려줄 이야기들이 너무 궁금하네요 ^^ 건둥이와 즐거움 가득한 시간 보내세요 ♡


라고 다정함이 뚝뚝 떨어지는 답변을 보내주셨다.





나와 둘째는 못 간다고 알고 있던 엄마에게도 엄마, 얘 일본 가겠대. 할머니 보고 싶어서 안 되겠대. 하니까 엄마도 반색하며 엄청 기뻐한다. 그래 분명 나도 좋은데, 이미 기운을 약 30% 정도 소모하고 출발하게 되어서 그런지 솔직히 막 엔돌핀이 솟지는 않았다. 그리고 3박 4일 일정 중에서 4학년 첫째 아들이 좋아할 만한 곳인 유니버셜스튜디오에 온전한 2일을 배정한 이상 나를 위한 코스는 아니라 내 취향 여행은 못 되겠구나 떨떠름하게, 이번에는 정말, 공항으로 향했다.



정말 그때만 해도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오사카라는 여행지에 이렇게도 나에게 엄청난 즐거움들이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나는 꿈에도 몰랐다.






이전 01화 휴가가 남았는데, 엔화가 싸다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