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지 Dec 28. 2023

직장인의 비애

자괴감에 빠질 때


열심히 일을 하다가

나의 바보 같은 실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실수는 나 혼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웃어넘길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고, 치명적이기 좀 전에 발견되곤 한다. 그 시점의 나의 실수는 나의 것만이 아니고, 나의 동료이자 후배의 것이 되고, 내가 존경하는 나의 팀장의 것이 되고, 곧 내가 몸 담은 회사의 것이 된다.


물론


핑계를 댈만한 구석은 늘 보인다. 과거에 내가 한 일이 아니었다든지, 상대사에서 잘못 보낸 것이라든지, 나를 대리하는 대리인이 확인 없이 잘못 보내준 것이라든지.


그렇지만 당사자인 '내'가, 마지막 업무처리를 지시하는 내가 잘못 파악하고 있었고, 내가 마지막까지 확인할 기회가 두 번 세 번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맞다며 확인을 두 번 세 번까지 한 것이 나다. 남 핑계를 대서 내 잘못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 애를 써봤자 더 못나 보일뿐더러, 내 잘못은 어디 안 가고 그대로 더 불쌍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서 남 핑계 댈 마음은 애초에 지워본다.


쎄함은 사이언스라고 했던가. 과거 어느 순간에 긴가민가 했던 기억이 어느 순간 그렇다고 내 머릿속에 살짝 패트처럼 뿌리내려버리면 오류가 사실처럼 한 자리를 차지해 버린다. 그럼 이 오류의 씨앗은 무럭무럭 혼자 조용히 자라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봉숭아 씨앗처럼 팍! 사방팔방 팍 하고 터져준다.


속상하다.


열심히 일하다가 내가 잘못한 것을 깨달았을 때가 제일 속상하다. 열심히 안 했으면 별로 안 속상하다. 내가 열심히 안 했으니까 그다지 애착이 없다. 그렇지만 애착을 가지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 일 중에 잘못된 게 있음을 발견한 직장인은 무지 속상하다.


이것이 직장인의 비애 같다.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속상할 확률이 커진다. 물론 일을 슈퍼맨처럼 잘해서 잘못된 게 없이 일을 열심히 헤쳐나가면 최고지만 어디 사람이 늘 슈퍼맨 같을 수 있을까. 인간이니까, 완벽할 수 없다.



잘해보려고 일 열심히 하던 직장인, 본인 실수에 자괴감 느껴... 퇴근 후 분노의 칼질로 파를 가지런히 썰어서 떡볶이에 위스키로 헛헛한 마음을 달래 본다.


내일 출근해서 다시 잘해봐야지.



작가의 이전글 가회동 마을변호사 상담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