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가치를 매기지 않았는가?
엄청나게 귀하거나, 존엄하거나, 사회적 관념에 위반되거나 혹은 그냥 팔기 싫거나 등의 이유로 가치 매기기를 거부하는 것들이 있다. 물건에도 가치를 매기지 않는 경우가 있으나 우정, 도덕, 신념, 정의, 자유 등 추상적인 것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값을 매기면 물건의 가치가 떨어진다며 매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가치를 매기지 않았을까?
정말로 가치를 매기지 않았는가?
어떤 물건을 값을 매길 수 없다며 팔지 않았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건 돈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돈을 더 주면 팔아버릴걸?
시대와 상황에 따라 물건의 가치는 변화한다. 지하철역 같은 곳의 화장실 앞에는 조금 비싼 화장지 판매기가 있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에이 저런 걸 누가 사’하고 지나가지만, 화장실이 급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과 다름이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팔 수 없는 가치가 있을 수 있다. 부모님의 유품이나 집안의 가보같은 물건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상황에 따라 물건의 가치는 변화한다. 집안이 폭삭 망해서 대를 잇지 못하게 생겼는데 가보가 대수인가? 당장 그거라도 팔아야 입에 풀칠이라도 한다면 자연스레 값이 매겨지고 급할수록 값이 낮아진다.
우리는 가치를 매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가치를 매기지 않은 것뿐이다. 우리의 앞에 협상테이블이 놓이게 된다면 끊임없이 가치를 저울질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치를 매긴 것들
친구들끼리 농담 삼아 ‘너라면 얼마까지는 빌려줄게’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어찌 보면 신뢰에 가치를 매긴 것이다. 또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이 도망치고 있을 때 내가 정보를 쥐고 있다면 얼마에 팔아넘길 것이냐고. 나는 손가락 4개까지라고 답했다. 친구는 툴툴댔지만 돈으로는 팔지 않고, 일신에 위협이 들어왔을 때 손가락 4개까지는 버티겠다고 말한 것이라는 속 뜻을 알아채고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었다. 이것도 어찌 보면 우정에 가치를 매긴 것이다.
사회적으로 우리는 자유에 이미 가치를 매겼다. 정확히는 개인의 자유에 가치를 매겼다. 그 자유가 얼마인지는 개개인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얼마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월급과 신용카드 내역을 확인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팔아넘긴다. 또한 다시 자유를 사 오기 위해 돈을 쓴다. 놀랍게도 정부에서도 ‘최저시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자유를 시간 단위로 최소한의 가치를 매겨놓았다. 이는 자유민주사회에서 가장 높게 치는 것들 중 하나인 자유조차 제 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의 시간에도 가치를 매긴 상태이고,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돈으로 사고 있다. 직접 사러 가는 시간이 아까워 배달을 시킨다거나,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하이패스를 이용하고, 놀이공원 매직패스를 이용한다거나 하는 이야기이다.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이러한 거래는 서로에게 충분한 이득이 돌아가는 동시에 재화의 분배를 효율적으로 만든다. 다시 말해 놀이기구 탑승 권한에 가장 높은 가치를 매긴 사람에게 먼저 주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미 많은 것에 가치를 매겼다. 단지 개개인이 매긴 가치가 다르기에,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이라는 사회적 관념 때문에, 공식적으로 가치를 매겨버리면 일어날 사회적 파장 때문에 가치를 매기지 않은 척, 매길 수 없는 척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매기는 가치는 우리의 사회적 관념과 도덕을 밀어내고 있다.
‘도덕은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고 싶은 방식을 가리키고, 경제학은 세상이 실제로 작용하는 방식을 가리킨다’고 했던가. 어쩌면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에 가치를 매긴 뒤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