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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삼도 일상탐구 Mar 26. 2024

계단과 편의점 - 편리함에 대한 인식

편리함에 대한 인식

 이번에 가족행사로 서울에 방문할 일이 있었다. 내 고향이 서울에서 꽤 멀기 때문에 서울에 올라간 김에 관광명소를 조금 둘러보았다. 그러다 경복궁 동쪽의 건춘문 앞에서 복층 편의점을 발견했다. 평소에 1층 편의점만 보다가 2층까지 사용하는 편의점을 보니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프랜차이즈마다 출점전략이 다르다고 했던가. 설빙은 2층에만 매장을 낸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창업자의 초기 투자비용을 줄이고 매장 평수를 늘려 쾌적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하던데, 확실히 지금까지 방문한 설빙 매장은 넓었고 테이블이 널찍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편안했다.

 반면에 편의점은 출점전략이 있나 싶을 정도로 한 동네에 몇 개씩 있어 장사가 되나 싶을 정도로 많다. 이 많은 편의점은 모두 1층에 입점해 있었는데 편의점은 어째서 설빙처럼 넓고 쾌적한 2층에 들어서지 않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편의점의 특성과 사람들의 편리함에 대한 인식에서 찾았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 편리함에 대한 인식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욱더 편리함을 추구한다. 아니, 불편함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가 대표적 예이다.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 계단은 텅텅 비어있는데도 극히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계단을 이용했다. 사실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이용률이다. 조금 느리더라도 편안하게 올라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사람이 들어차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도 다수 있었다.

 짐을 지고서도 에스컬레이터로 직행한다. 짐이 있다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이 더 편할 거라 생각하지만 이상하게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짐을 지닌 게 아니라면 엘리베이터는 어르신분들이 주로 이용한다.

 아마 즉각적으로 올라가고 있음이 느껴지는 에스컬레이터와 달리 엘리베이터는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교통약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 마음이 걸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계단과 편의점


 당장 먹을 과자 하나 핫바 하나를 사기 위해 차를 타고 대형마트로 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동네 슈퍼에는 내가 원하는 제품이 없거나 늦은 밤엔 문을 닫아버린다. 때문에 다소 비싼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편의점에 방문한다.

 그런데 2층, 3층, 심지어 지하에 편의점이 있다면 어떤가. 편의점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야 한다면? 그 시점부터 편의점이라는 편리함과 계단이라는 불편함이 상충되어 메리트가 없어진다. 굳이 비싼 비용을 낼 이유가 없어지고 방문할 이유가 사라진다. 설빙처럼 넓은 매장으로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여 테이블이 많이 놓여있다고 해도 어지간한 번화가가 아니라면 그 매장을 전부 채울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편의점은 제품 단가가 낮아 카페처럼 운용하기에는 이윤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넓은 매장을 다양한 제품으로 채운다면 마트와 다를 바 없어진다. 그저 2층에 있는 조금 비싼 마트일 뿐이다. 차라리 내일 차를 타고 나가자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편의점에게 2층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게 된다.


편의점의 차별화


 편의점은 판매상품이 다양한 만큼 경쟁대상도 다양하다. 그리고 몇몇 제품을 제외하면 편의점은 경쟁대상에게 질적으로 밀리고 있다. 가격면에서 그 차이를 메꾸고 있었지만 요즘은 편의점도 너무 비싸 조금 더 보태면 식당에서 먹을 수 있을 정도이기에 큰 메리트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선택한 생존전략이 편의점의 차별화이다.

 새로 입점하는 편의점은 기존의 편의점과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1층에 매장을 넓게 사용하여 다양한 제품과 공간을 제공한다던가, 갓 튀긴 치킨을 비교적 싼 가격에 주문할 수 있다던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광지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형태가 관광지 쪽으로 큰 창이 나있는 복층 편의점으로, 그동안 양립할 수 없었던 계단을 내부로 끌어들여 이용했다. 1층은 일반적인 편의점처럼 운영하되 2층에 휴식공간을 조성하여 1층에서 구매한 음식을 2층에서 먹도록 하는 것이다. 관광지이기 때문에 유동인구도 많아 테이블이 빌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편의점은 2층에 안마의자도 놓고, 만화책도 구비해 놨다고 했던가. 단순한 마켓으로 시작한 편의점이 점차 다른 공간을 함께 겸하는 국지적 복합문화공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복합문화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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