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이제 없지만
아빠를 생각한다.
새로 바꾼 병원에서, 늘 양성석회화 판정을 받았던 오른쪽 가슴의 무언가를 미세 석회화라고 새롭게 명명했다. 미세 석회화는 양성 석회화랑 비슷한 모양새이지만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30프로 정도이고, 그동안의 검사 히스토리가 없어서 몇 가지 검사를 추가 적으로 해야겠다고 했다.
유방 초음파와 유방 확대촬영을 하러 대형병원에 갔다.아빠랑 엄마가 병원을 다니면서 내가 겪었던 대형병원은, 높은 층고로 우웅 대는 아득한 소리와, 그 안에서 부산히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로 탁한 공기가 가득차있었다. 그래서 멀쩡한 사람도 기가 쪽 빨려졌다.
대형병원에 오면 늘 아빠생각이 난다.
들어서는 순간 어딘지 모르게 아픈 느낌.
‘아 너무 피곤해’
오늘은 그냥 검사다.
무려 3주 전에 잡아놓은 검사.
그리고 1주 후 진료, 의사 선생님을 따로 만나러 또 가야 한다.
속옷을 탈의하고 검사를 시작했다.
낯선 사람 앞에서의 탈의는 수치스러웠다.
거대한 기계에 기대서 가슴이 짓눌러졌다.
“순간이 영원 같았어. ”
그 말이 정말 딱 들어맞는 상황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 아앜!!!!!!”
검사는 쉽지가 않았다.
잘 안 보인다며 4번을 촬영하는데, 아무 잘못이 없는 검사자를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들정도였다. 다 필요 없으니 됐다며 뛰쳐나가고 싶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생각했다.
내가 사람이 아닌 검사해야 할 물건이 된 느낌.
나의 부끄러움, 나의 고통은 검사자에게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그냥 빨리 끝내야 할 그의 업무일 뿐.
‘이것 때문이었나?’
아빠는 병원에서 종종, 아니 자주 화를 냈다.
마음이 여린 아빠는 더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빴겠지.
마음을 말로 상세히 펼쳐 내지 못하는 아빠는 뭉툭한 화로 분출했다. 그래서 그 화는 늘 느닷없었고, 이해받지 못했다.
아빠가 힘들었겠구나.
한 번의 병원에서의 고통으로 아빠의 마음을 생각했다.아빠는 여러 날 여러 달을 반복했을 텐데...
커피숍에 앉아서 티라미수를 먹는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온 이후로 입에 대지도 않았던 밀가루들을 다시 조금씩 먹고 있다.
수치가 조금 오르긴 했지만 정상 범위에 있으니까 괜찮겠지.
간경화 진단을 받은 아빠가 매일 같이 마시던 술을 하루아침에 끊었다. 그리곤 가족 몰래 다시 조금씩 마셨다. 그때 말로 할 수 없는 배신감이 들었었는데, 아빠가 그때 왜 그랬었는지 이제 알겠다.
원래 하던 대로 돌아가는 일은 너무 쉬운 일, 원래 하던 대로에서 벗어나는 일은 너무너무 어려운 일.
“정민아 너는 잘할 거야”
보여준 것도 없는데 밑도 끝도 없이 응원과 지지를 보냈던 아빠처럼 나는 왜 아빠를 응원해 주지 않았던가.
사랑해 주지 않았던가.
아빠는 이제 없지만
아빠의 마음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빠를 보내고
나는 일상에서 더 자주 아빠를 만난다.
아빠는 아직 나를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