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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자씨 Aug 23. 2024

멋진 신세계 - 누군가에겐 '멋져 보이는 지옥'

근자씨의 서재 - 어서 와, 고전 SF소설은 처음이지?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올더스 헉슬리 /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My Prologue


한 달에 한 번 모임이 있는 독서모임의 책이 선정되었다.

"‘멋진 신세계’라… 응? 그런데, SF라니?"

표지가 좀 더 '신세계' 다웠으면 좋았을 것이다.

SF영화를 즐겨보는 터라 관심이 간다.

그런데, 1932년 작품이다. 이 정도면 고전소설이 아닌가.

SF라는 장르(정확히 말하면 SF영화)에 빠지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저녁 어느 날 브라운관 TV에서 거대한 우주선을 보고 나서 충격을 먹었고, 상상이 현실처럼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SF장르라면 책보다는 영화를 더 좋아한다.

제한이 없는 인간의 상상력을 감안해 본다면, 책이 오히려 마음껏 상상력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실제로 눈앞에 구현이 되는 비현실적인 장면을 만끽할 수 있는 SF영화를 더 좋아한다.

그래도 오랜만에 읽어보는 SF소설 ‘멋진 신세계’라는 책은 어떤 재미를 선사할지 궁금해진다.

제목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작품 속의 ‘멋진 신세계’는 그다지 멋진 신세계는 아닐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책 표지 뒷면의 작가사진을 보니 딱 이런 류의 소설을 쓸 것만 같이 생겼다.

작가는 똘똘하게 생겼다.


In the Book


책 속의 미래에서는 기존의 문명이 무너지고 새로이 통합된 문명사회가 나타나 유지되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배아상태부터 길러지고 계급마저 미리 결정되어 각각의 계급에 맞게 교육된다.


"우리의 세계는 <오셀로>의 세계와 같지 않기 때문이야. 강철이 없이는 값싼 플리버 승용차도 만들 수 없어. 사회의 불안정이 없이는 비극을 만들 수 없는 것이야. 세계는 이제 안정된 세계야. 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격정이니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그들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사실상 마땅히 행동해야만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뭔가가 잘못되면 소마가 있지. 자네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창 밖으로 집어던진 것 말일세. 자유라!"

- p. 283


(야만인과 총통과의 대화장면에서 신세계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총통이 묘사하는 세상은 정말 우리 모두가 꿈꾸는 '멋진 신세계'가 아닐까? 겉으로 보기엔 말이다.)


"우리는 변화를 원하지 않고 있거든. 모든 변화는 안정을 위협해. 우리가 새로운 발명을 선뜻 적용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지. 순수과학에서의 모든 발견은 유해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거든. 과학도 때로는 적이 될 수 있는 존재로 다루어야 돼. 그렇지. 과학조차도 그렇지."

- p. 289


(하지만 발전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 변화가 발전을 위한 올바른 변화인지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는 게 쉽지 않다.)


"바로 우리들, 즉 현대 세계야. '앞길이 창창한 젊은 시절에만 신에 의존하지 않는다. 신으로부터의 독립은 최후의 인간을 안전하게 인도하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있었지? 그런데 우리는 지금 죽을 때까지 청춘과 번영을 잃지 않게 되었단 말일세. 그 결과가 무엇이냐고? 분명 우리는 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된 걸세. '종교적 감정이 모든 손실을 보상해 줄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네만 우리에겐 보상할 손실이란 것이 없는 형편인걸. 종교적 감정은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말았어. 젊음의 욕망이 쇠퇴하지 않는 마당에 왜 구태여 그것의 대용품을 찾아 나서겠는가? 최후까지 옛날의 모든 바보스러운 유희를 즐길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기분 전환의 대용품을 찾아 나서겠나? 우리의 심신이 계속적으로 활동의 기쁨을 누리는 마당에 왜 휴식할 필요가 있겠나? 소마가 있는데 위안이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사회의 질서가 있는데 불변부동의 그 무엇이 왜 필요하겠는가?"

- p. 301


(신이 되어버린 인간은 과연 행복의 끝에 서 있는 걸까? 행복의 끝에 파멸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은 모두 망하더라. 책이든 영화에서든 말이다.)


작품해설에서

무엇보다 먼저 이야기해 둘 것은 헉슬리의 사고방식의 근저에는, 모든 진보는 반드시 그 희생의 대가를 동반하는 것이라는 사상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이든 대가 없이 얻을 수 없다'는 말은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인물의 발언에서도 경청할 수 있듯, 희생이 뒤따르지 않는 진보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사고방식은 헉슬리의 소설과 비평에 반복되어 등장하여 그의 역사관 또는 문명관의 중요한 관점을 이루고 있음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가치 있는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믿는다.)



My Epilogue


역시나 나의 예상이 맞았다.

‘멋진 신세계’는 누군가에게는 ‘멋져 보이는 지옥’ 일 수 있다.

뭔가 오랜 전통이 이어져 온다면 그 이유가 있다.

그 전통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면 그것도 이유가 있다.

전통을 무너뜨린 그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고 정의롭지 않다면 그 전통을 지켜내야 한다.

하지만, ‘합리적’이라는 것과 정의롭다는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합리적이고 정의롭지 못한다면 그 판단조차 불합리이며 정의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멋진 신세계’는 야만인이라고 하는 인물에게는 멋져 보이는 ‘지옥’이 된 것이다.

그 지옥에서 벗어나고픈 야만인의 바람은 ‘멋진 신세계’로부터 처참히 무너지고 만다.

술, 담배, 마약, 도박….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 종류의 ‘소마’들.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자유로운 이성관계.

어느 누구는 아프리카, 남미에서 태어나 힘들게 살아가고, 어떤 이는 좋은 곳에서 좋은 부모를 만나 시작부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 세계.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이 ‘멋진 신세계’ 아닌가?

멀리서 보면 멋진 신세계 @Unsplash

‘멋진 신세계’의 일원으로 남아 스스로 행복하다 세뇌시키며 살아갈 것인가?

‘멋진 신세계’를 부정하고 ‘멋져 보이는 지옥’을 탈출할 것인가?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과 파란 약의 선택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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