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국물이 물을 오염시킨다고 하는데, 내가 오염물질을 먹은건가?
라면 국물을 비롯해서 우리가 먹는 음식물을 하천에 버리면 수질을 오염시킵니다. 라면 국물을 한강 정도의 수질로 만들기 위해서는 맑은 물로 1000배 쯤 희석해야 가능해집니다.
라면 국물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맛나게 먹던 음식인데 버리는 순간 왜 갑자기 오염물질이 되어 물을 썩게 하는 것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물이 썩는 것은 하천에 유입된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라면 국물을 비롯해 우리가 하천에 버리는 음식물은 대부분 유기물입니다. 유기물은 생명체가 생산하는 화합 물질을 말하는데, 자연 속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일어납니다. 분해과정을 통해 동물의 사체와 같은 유기물은 이산화탄소, 물, 질소, 인 등의 무기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버린 라면 국물도 예외없이 미생물에 의한 분해가 시작됩니다.
물 속에 있는 유기물은 미생물에 의한 분해작용으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분해되어 사라지고 지저분했던 물은 다시 깨끗해집니다. 물이 이렇게 오염물질을 분해하여 정화하는 과정은 스스로 정화한다는 의미로 자정작용(自淨作用)이라고 합니다. 유기물이 물에 유입되고 나서 5일 정도가 지나면 유기물 양의 70~80%가 분해되고, 20일 정도가 지나면 거의 대부분 분해됩니다. 미생물이 물 속에 있는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는 산소를 필요로 하는데, 이 때 필요한 산소의 양을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 또는 BOD라고 합니다. 유기물 양이 많으면 분해하는데 많은 양의 산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필요로 하는 산소의 양은 유기물의 양과 비례합니다. 따라서 이 산소 요구량으로 물 속에 있는 유기물의 양을 나타내기도 하는데요, 이것이 바로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 또는 영어 표현인 Biochemical Oxygen Demand의 첫 글자를 따서 BOD라고도 합니다. 단위는 시료 1L 당 소비되는 산소의 양(mg)으로 mg/L 또는 ppm으로 표시합니다.
예전의 환경기준에 의해 ‘1급수’로 표현되던 물은 BOD가 1mg/L 이하인 물을 의미했습니다. 지금도 언론을 통해 1급수라는 표현을 접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표현은 관련 규정이 개정되기 이전의 표현입니다. 2007년에 법이 개정되면서 기존에 숫자로 구분했던 등급을 ‘매우 좋음’, ‘좋음’, ‘약간 좋음’, ‘보통’, ‘약간 나쁨’, ‘나쁨’, ‘매우 나쁨’의 서술형으로 개정했기 때문입니다.
미생물이 물 속에 있는 유기물을 분해하기 위해 필요한 산소는 물 속에 녹아 있는 산소 즉, 용존산소(DO: Dissolved Oxygen)를 이용합니다. 그런데, 물 속에 녹아 있는 용존산소의 양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유기물 양이 많은 경우에는 물 속에 있는 산소가 부족한 경우가 생깁니다.
20도의 물을 기준으로 할 때 물 속에 최대로 녹아들 수 있는 산소의 양은 10mg/L이 채 되지 않기 때문에 물의 BOD 농도가 10mg/L을 넘으면 물은 검게 썩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물의 BOD 농도가 10mg/L을 넘게 되면 물은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자정작용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은 썩게 되어 물의 색깔이 검게 변하고 황화수소, 메탄과 같은 악취를 발생시키는 가스가 발생시킵니다. 하수가 버려지는 시궁창이 물 색깔이 검게 변하고 악취를 풍기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예전에 비해 무척 다양해지고 풍성해졌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좋은 일이지만, 먹지 않고 남겨진 음식물이 버려질 경우에는 물을 오염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음식의 경우 탕, 찌개와 같이 국물이 있는 음식이 많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주 먹은 음식물의 BOD를 한번 알아볼까요? 환경부가 발표한 자료에 제시된 BOD 값을 보면 라면국물,된장국, 육개장 등의 국물을 가진 음식의 BOD는 200,000mg/L를 훌쩍 넘습니다. 우유, 콜라 등의 음료를 비롯해 소주, 막걸리 등의 술도 100,000mg/L의 높은 값을 나타냅니다. 음료, 술에 비해 음식물이 수질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훨씬 더 큰데요, 그 이유는 음식물은 음료와 술에 비해 BOD 수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섭취 횟수도 잦고 버리는 양도 많기 때문입니다.
가정집에서 나오는 지저분한 하수와 라면 국물의 BOD를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 클까요? 하수? 라면 국물? 언뜻 생각하면 라면 국물보다 하수가 훨씬 오염도가 클 것 같지만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하수처리장으로 흘러가는 하수의 BOD는 200mg/L 정도인데 비해 라면 국물의 BOD는 300,000mg/L을 넘습니다. 라면 국물이 하수에 비해 자그마치 1,500배가 오염도가 큰 셈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하수는 지저분하고 라면 국물은 먹는 음식물이라고 비교적 오염도가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물 속에 들어가면 하수에 비해 1,500배가 넘는 오염물질로 작용하게 됩니다. 라면 국물을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깨끗한 하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150,000배의 맑은 물로 희석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음식은 먹을 만큼만 만들고 남기지 않아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