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설처럼 알고 있는데 이게 사실일까?
우리나라는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일까요? 이 문제의 답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아니오’입니다. 십수년전 우리나라는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는 것이 정설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일부 시민단체가 이것은 근거가 없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정부의 답변을 요구했는데요, 정부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가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설처럼 되어 있던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출발은 3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3년 미국의 인구행동연구소(PAI, Population Action International)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1인당 연간 가용 수자원 양이 153개 국가 중 129위로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했습니다.
몇 년 뒤 UN 인구국이 발간한 보고서에 이 수치가 인용되었고, 이 내용이 국내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로 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PAI는 인구문제 해결에 관심을 둔 미국의 사설 연구소일 뿐이고, UN의 산하기구이거나 관련이 있는 단체는 아니었습니다. UN이 보고서를 인용했다는 점에서 공신력을 인정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UN이 직접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지정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이죠.
PAI 연구소는 1인당 연간 물 사용 가능량이 1,000m3 미만인 국가는 물 기근 국가, 1,000~1,700m3인 국가는 물 부족 국가, 1,700m3 이상인 국가는 물 풍요 국가로 분류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물 사용 가능량은 1,500m3 가량으로 산정되어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된 것이었습니다.
정부의 해명으로 우리나라는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는 것은 설명이 되었지만, UN이 정했다는 것만 빼면 물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국가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물이 부족하고 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나라는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물 부족을 느끼는 이유가 강수량이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 일 년 동안 내리는 비의 양은 1,300mm 정도로 세계 평균 강수량 807mm의 1.6배 정도로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비가 여름에만 집중되어 쏟아지기 때문에 적절하게 관리하기가 어렵고 인구밀도가 높아 1인당 이용 가능한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1/6 수준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의 강수량에 우리나라 국토 면적인 100,363km2를 곱하면 우리나라에 일년 동안 내리는 비의 양이 되는데, 그 양은 약 1,323억톤 정도입니다. 너무 많은 양이라 상상이 잘 안 될 것 같아 저수량 29억톤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소양댐과 비교해 보면 이 댐을 45개 정도 채울 수 있는 양입니다. 1,323억톤 중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양은 372억톤으로 1/3이 채되지 않습니다. 이용량 372억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농업용수로 40% 가량을 차지하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생활용수가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여름 기간에 장마 등으로 인해 이용하지도 못하고 하천을 통해 바다로 흘려보내는 물의 양이 이용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388억톤입니다. 이용하는 양보다 버려지는 물의 양이 더 많은 셈이죠. 이렇게 많은 양이 한 번도 이용되지 못하고 바다로 버려지는 이유는 강우가 일정 기간에 너무 많이 내리기 때문에 모아 두고 이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같은 강수량을 가지고 있어도 비가 어떻게 내리는지, 인구밀도가 얼마인지에 따라 이용 가능한 물의 양은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강수량을 가지고 있는 영국을 예로 들면 강수량은 비슷하지만, 인구밀도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에 1인당 이용 가능한 수자원량은 2,400m3 정도로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큰 값을 갖습니다.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한 기관이 UN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 수치로 볼 때 우리나라의 물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1인당 물 사용량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편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1인당 280L의 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값은 미국과 일본보다는 작지만 우리보다 물 사정이 넉넉한 유럽과 호주에 비해서는 큰 값으로 우리나라 물 사정에 비해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이 물 스트레스 국가이고 물이 부족한 나라인데도 평상시에 우리가 물 부족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상수도 보급입니다. 우리나라의 상수도 보급률은 99.3%로 우리나라 거의 모든 가정이 상수도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고 웬만한 가뭄에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수돗물을 사용하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합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물 부족으로 인해 단수 등 상수도 급수가 제한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물 부족을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쏟아져 나오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곳에서 물을 끌어다 쓰고 있습니다. 하천과 호수에서 끌어다 쓰고 지하수를 퍼 올려서 쓰고 있는데, 이렇게 물을 끌어 쓰다 보니 하천과 호수는 말라가고, 지하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물 스트레스 국가인 대한민국의 하천과 호수, 그리고 지하수가 스트레스를 받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