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물값 4천냥, 봉이 김선달은 희대의 사기꾼인가?
술잔이 오가고 봉이 김선달과 한양상인 허풍선과의 대동강 물값에 대한 흥정이 시작됩니다. 선달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것이라 조상님께 면목이 없어 못 팔겠다고 버티고, 한양상인들은 집요하게 흥정을 합니다. 거래금액은 처음에는 1천 냥이었으나 조금씩 올라가 결국 4천 냥에 낙찰되었습니다. 낙찰금액이 정해지고 나서도 선달은 대동강 물 팔기가 못내 서운한 듯 한참을 주저하다가 한양상인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계약서에 도장을 찍습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 얘기입니다.
1냥은 지금 돈의 가치로 따지면 7만원 정도이니 주인없는 대동강 물을 3억 원이나 받고 팔았다는 이유로 봉이 김선달은 사기꾼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봉이 김선달은 이 사건을 계기로 희대의 사기꾼 오명을 썼지만, 현재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듯합니다. 십수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청계천 ‘물값’을 두고 물값을 내야 한다는 주장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법정다툼까지 갔으니 말입니다. 법정다툼 끝에 물값은 내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났지만, 당시 계산서로 청구된 청계천 ‘물값’은 매년 17억 원이었습니다. 청계천보다 수량도 훨씬 많은 대동강을 사용기한도 없이 3억 정도에 팔았으니 청계천 '물값' 사건을 봉이 김선달이 알았더라면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평가에 억울해 할 수도 있었겠네요.
물값 얘기가 나왔으니, 우리가 마시는 물값도 한번 알아볼까요? 우리가 편의점에서 자주 사서 마시는 500ml 생수 한병의 가격은 800~900원 정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수돗물 값은 얼마나 할까요? 수돗물은 생수병에 넣어서 팔지 않고 계량기로 사용량을 검침해 요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대개 1톤 단위로 가격을 매깁니다. 1톤은 500ml 생수병 2,000개에 해당하는 굉장히 많은 양인데요, 이 수돗물 1톤의 가격은 740원 수준입니다. 500ml 생수 2,000개에 해당하는 양의 수돗물을 생수 한 병과 바꾸려면 60원을 더 얹어줘야 하는 실정입니다. 생수에 비해 1/2,000도 채 안 되는 가격인 셈이죠.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거짓말 하지 말라는 말만큼 물을 아껴 쓰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물도 아껴 쓰지 않습니다. 아껴 쓰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물 쓰듯' 펑펑 쓰고 있지요. 우리가 이렇게 물을 아껴 쓰지 않는 이유는 싼 물값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한 달 동안 아낌없이 펑펑 쓰고도 내는 수도요금은 커피 두 잔 값 수준이니 말입니다.
수도요금이 이렇게 싼 이유는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수돗물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수돗물 생산원가가 톤당 944원이니까 1톤을 팔 때마다 200원 정도씩 밑지는 셈이지요. 물장사가 남는 장사라고 했는데 예외가 있었네요.
다른 나라의 물값 사정은 어떤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주요 해외 국가의 평균 수도요금은 1톤당 1,651원으로 우리나라에 비해 2배 이상 높습니다. 가장 비싼 나라는 덴마크로 3,910원이나 되고, 우리나라와 자주 비교하는 나라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은 모두 천원대 중반에서 이천원 대 후반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물을 싸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면만 있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원가 이하로 싼 수도요금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가져 옵니다. 우선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공감을 얻기가 어렵구요, 수돗물이 워낙 싸다 보니 빗물과 중수도를 이용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시장 가격보다 싸게 물건을 판다는 것은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인데요, 결국은 수돗물 공급자에게 적자가 쌓이게 되고 누적된 적자로 인해 노후된 상수도관과 정수시설을 교체하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수도요금만 올리면 모든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만, 수도요금이 공공요금이다 보니 물가상승이나 반대여론을 의식해 인상을 결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싼 물값 얘기를 했으니, 비싼 물값 얘기도 빠질 수 없겠지요.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한 병에 적게는 몇 십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물에 금가루를 첨가하거나 물병에 다이아몬드 장식을 한 것으로 물 자체가 비싼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물 자체가 비싼 물도 있습니다. 바로 암 진단에 쓰이는 컴퓨터단층촬영(PET-CT)용 시약 제조에 들어가는 산소-18 농축수가 그 주인공인데 1g에 5만원이 넘는다고 하네요. 이 물로 500ml 생수 한 병을 가득 채우면 그 가격이 자그마치 2천5백만원을 훌쩍 뛰어 넘습니다.
봉이 김선달은 구전되어 오는 설화 속 주인공이고,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희대의 사기행각도 실재하지 않는 허구입니다. 하지만 김선달을 희대의 사기꾼으로 만들기 위한 소재가 물이었다는 점은 우리가 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물은 팔고 사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받고 물을 판다는 사실이 기가 막힌 희대의 사기로 비춰졌던 것이죠.
만일 봉이 김선달이 환생한다면 물을 팔고 사는 것이 당연해진 지금의 현실을 그는 어떻게 평가할까요? 그리고 그는 수돗물 1톤을 얼마에 팔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