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만나자는 얘기를 술 한잔 하자고 표현할 만큼 술을 좋아한다.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언제 밥 한번 먹자,' '언제 술 한 잔 하자'라고 합니다. 설문에 응한 사람들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이렇게 답했다고 하네요. 이 설문결과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공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뜨끔해지기도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말의 의미는 밥 먹고 술 마시는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기보다는 가끔씩 얼굴 좀 보고 살자는 뜻이지요. 우리 민족은 조만간 만나자는 의미를 술 한잔하자고 표현할 정도로 술을 좋아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술은 단연 소주입니다. 그런데 소주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전인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물론 그 때 당시 우리 조상들이 마시던 소주는 단어는 같지만 지금의 소주와는 다른 증류주였지요. 소주(燒酒)에 쓰인 한자 소(燒)는 ‘불태우다, 사르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증류주인 전통 소주는 소주를 내릴 때 쓰는 재래식 증류기인 소줏고리에 불을 때서 그 안에 담긴 밑술을 증류시켜 받아내는 술입니다. 지금도 이 방법으로 만드는 도수 높은 소주도 있지만, 우리가 오늘날 즐겨 마시는 소주는 대부분 증류주가 아닌 희석식 소주입니다. 알코올 원액인 주정에 물을 타서 희석한 소주라는 의미입니다.
과거 희석식 소주가 없었던 조선시대에도 증류주를 의미하는 술은 소주라고 했습니다. 과거 문헌에는 ‘소주는 술덧을 증류하여 이슬처럼 받아내는 술이라 하여 노주(露酒)라고도 하고, 화주(火酒) 또는 한주(汗酒)라고도 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노주(露酒)는 소줏고리를 이용해 이슬처럼 받아낸다는 의미와 탁주라고 불렸던 막걸리에 비해 이슬처럼 맑은 술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소주 브랜드인 '참이슬'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조만간 만나자는 얘기를 술 한잔하자고 표현할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고 자주 마십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연간 소주 소비량은 약 36억병으로 20세 이상 성인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1인당 87병을 마신 꼴이 됩니다. 성인 중 술을 마시는 비율이 절반 정도 된다고 하니, 그 비율을 고려하면 술을 마시는 성인은 1년에 174병을 마시는 것으로 이틀에 한 병씩 마시는 셈이네요.
반가운 지인과의 만남에도, 직장동료와의 회식에도 술이 빠질 수는 없죠.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과의 쌓였던 이야기도, 어색한 사람과의 만남도, 직장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도 술과 함께라면 술술 풀려 나갑니다. 이렇게 어울리는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시다 보니 우리는 같이 마셔야 하고 같이 취해야 합니다. 술자리에서의 절제는 자제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동료애와 동질감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져 오해받기 십상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수작이라는 단어도 바로 술자리의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는 수작이라고 하면 ‘개수작’을 떠올릴 정도로 나쁜 일을 꾸미는 의미로 알고 있지만, 사실 수작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작(酬酌)의 ‘수(酬)’는 잔을 되돌리고 술을 권한다는 뜻이 있고, ‘작(酌)’은 술을 붓는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두 한자를 합쳐보면 잔을 돌려 술을 권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술잔을 권하면서 만들어진 좋은 분위기가 정도를 넘으면 자칫 나쁜 일을 꾸미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한 말입니다.
술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있지만 물을 의미하는 ‘수’와 불을 의미하는 ‘불’을 합친 ‘수불’이라는 단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수불>수울>술로 변화되었다는 가장 유력한 설입니다. 아마도 술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것이 마치 불로 물을 끓이는 것처럼 보여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술은 정확한 기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인류의 역사는 술과 함께 해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세계 거의 모든 민족이 술을 즐기지만 우리 민족의 술에 대한 사랑과 음주문화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유별납니다.
개인의 주량과 무관하게 술을 강권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두가 ‘원샷’을 외치며 같이 마셔야 하고 같이 취해야 합니다. 배려가 부족하고 폭음을 조장하는 이런 음주문화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일으켜 개선의 목소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질적인 음주문화로 지목된 것은 차수 변경, 강권하기, 잔 돌리기의 3종 세트인데,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술 마시는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간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음주문화 3종 세트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방에 해결되었습니다. 음주문화가 개선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사람과 어울리고 부대끼며 왁자지껄한 술자리를 갖지 못하는 것은 못내 아쉽습니다. 코로나 덕분에(?)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은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그것이 없어지고 나서야 그 빈자리를 알 수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