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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머리 소년 Feb 16. 2021

《명심보감 인문학》을 읽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


   저자 한정주는 사학을 전공한 역사평론가다. 1966년 생이면 50대 중반으로 나와 비슷한 연배인데 책에 담긴 저자의 생각은 나보다 많이 보수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고전연구가로서 사고의 기저를 고전에 두고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저자는 인문학 서적으로 명심보감을 선택한 이유는 명심보감이 삶에서 동떨어진 고담준론(高談峻論)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하는 무수한 삶의 문제에 대한 성찰과 지혜를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책의 서문에서 저자의 책이 단지 고전의 도덕적, 교훈적, 계몽적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부딪혀가면서 풀어나가야 하는 삶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는 책으로 다가갔으면 한다는 바램을 적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책에는 시대에 맞지 않고 단지 과거의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내용이 많아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공감하기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예를 들면, 충성과 효도에 대한 개념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고, 여자는 단지 여색의 대상으로만 표현되어 있는 것 등이다.

물론, 명심보감 원저에는 그렇게 표현되어 있었겠지만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구절을 취사 선택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명심보감의 구절이 유래된 일화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도 독자에게 재미를 주지 못하고 단순하게 일화를 소개만 하고 있는 것도 좀 아쉽다. 고전에 얽힌 일화는 고전을 딱딱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재미와 흥미를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이 책에서는 그렇게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몇몇 소단원에서는 간혹 율곡 이이의 가르침이 ‘튀어’ 나오는데 이는 저자의 다른 저서인 ‘율곡 인문학’에 기인한 듯 하다. 책 전반에 걸친 일관된 구성이라기보다는 몇몇 소단원에서만 산발적으로 인용되다보니 오히려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감됐던 부분은 열자가 쓴 『열자』라는 고전에 나오는 ‘운명과 능력 사이의 논쟁’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능력과 운명은 사람의 장수와 요절, 부귀와 빈천은 서로 자신의 힘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자랑을 한다. 승부는 운명의 판정승으로 끝나지만, 저자는 운명의 판정승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을 달고 있다. 


  사람의 장수와 요절, 부귀와 빈천은 모두 운명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스스로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운명은 하늘과 같이 그것을 통제하는 절대적인 그 무엇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운명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둔 것은 하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 언급되는 ‘진인사 대천명’과 연결된다. 

사람이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이 말은 일의 성사 여부는 운에 달려 있으니 그저 운만 바라보고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일에 최선을 다하되 일에는 사람의 노력이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운이란 것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 성패 여부에 지나치게 낙심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로 새겨야 한다. 

사람이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이 말은 거꾸로 풀면 운명이나 운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사람이 먼저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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