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 앨봄 지음 / 공경희 옮김
소설은 참 오랜만이었다. 책 읽는 건 좋아하지만 소설류는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장면에 대한 묘사가 아주 사실적이고, 시공을 넘나드는 장면 전환 때문에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시공 전환과 암시가 많아 전개 방식으로 보면 최근에 봤던 영화 '테넷'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영화로 봤다면 상당히 몰입해야만 내용을 따라 잡을 수 있을 듯 하다.
번역이 잘된 느낌이다. 대개 외국 서적인 경우 번역서 특유의 냄새 때문에 책에 빠져 들기 어려운데 이 책에서는 그런 느낌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특히, 책의 뒷부분에 실린 옮긴이의 서평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옮긴이인 공경희님이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저자의 숨은 의도에 대해 미리 고민하고 그 추측을 적어 두었는데 독자들이 고민할 수고를 덜어 주었다.
책을 읽고 나서 이해되지 않던 부분이 옮긴이의 후기를 보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이런 걸 꿈보다 해몽이 낫다고 하는 건가? 혹시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조언한다면 책의 뒷부분에 있는 옮긴이의 서평을 먼저 읽고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책은 주인공인 에디의 죽음을 통해 인연과 사후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의 저자는 미국인인데 동양의 뿌리 깊은 철학인 사후세계와 인연, 윤회를 기저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놀이공원 정비사로 일했던 에디는 여든세 번째 생일날 추락하는 놀이기구 밑에 있는 소녀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책은 에디와 함께 우리를 천국이라고 하는 사후세계로 안내한다.
에디는 천국에서 책 제목처럼 다섯 사람을 만난다. 생전에 알던 사람도 있고 전혀 만난 적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천국에서 만난 그들을 통해 세상에 모든 사람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가 상처를 입혔던 사람도 만나고 그가 미워했던 사람도 만난다. 그리고 평생 미워만 했던 아버지도 ‘간접적으로’ 만나 아버지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에디는 그렇게 자신과 인연을 가지고 있던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삶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살았을 때 가졌던 사람들과의 미움, 증오, 오해를 사후에 그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때로는 그들에게 용서를 구함으로써 내 자신과 화해하고 편안해진다.
책에서는 그 곳을 천국이라고 말한다. 천국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다르지만, 우리를 괴롭히던 모든 것과 화해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저자는 천국이라고 표현한 듯하다.
저자는 자신과의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는 곳이 사후세계의 시작인 천국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곳이 이승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신과 함께’에 나오는 저승갈 때 건너는 강인 삼도천을 건너기 직전이라고 할까?
내 생각에는 죽은 다음 천국에 들어가서 이승에서의 미움과 증오를 화해할 것이 아니라, 이승의 삶을 마무리할 때 미워했던 감정과 화해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 과정은 사후세계의 시작이 아니라, 이승의 마지막이 되어야 정확한(?)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어쩌면 이 마무리 과정은 살아 있을 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바쁘게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과의 갈등 속에 만들어진 미운 감정을 화해하고 용서하면서 이승의 삶을 마무리 하는 것은 죽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끝내야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책의 내용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살아 있을 때 가장 갈등이 심했던 아버지와의 화해가 소설의 클라이막스가 될 수 있었을 듯 한데, 아쉽게도 그 장면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버지를 직접 만나지도 않고 창문 너머로 아버지의 모습만 바라보고, 아버지 사연은 제3자를 통해서 전해듣는 방식이다.
저자는 주인공인 에디가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한 것처럼 그리고 있지만, 사실은 저자가 주인공의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천국에서 본인과 인연이 있었던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때론 격한 몸싸움도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다면 다섯 사람 중에 주인공의 아버지가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미웠던 감정도 쏟아내고, 왜 그랬는지 아버지의 이야기도 듣고 그리고, 서로 화해하고… 그것이 이 책이 말하려고 했던 이승에서의 인연에 대한 정리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