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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머리 소년 Jul 12. 2023

《곽재구의 포구기행》을 읽고

나도 저자처럼 매인 데 없이 훌쩍 떠나고 싶다.

저자는 시를 쓰기 위해 8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약간의 모아둔 돈과 퇴직금을 들고 포구를 돈다. 이 책은 그렇게 쓰여진 기행산문이다. 언제 어떻게 내가 이 책을 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책장에 제법 오래 꽂혀 있었다. 출판 년도를 보니 2002년이다. 20년이나 되었구나. 책에서 퀘퀘한 헌 책방 냄새가 난다. 좋다. 

저자가 방문했던 곳 중 여러 곳은 나 또한 들렀던 기억이 있다. 선유도, 장자도, 지심도, 거제도가 그렇다. 하지만 저자만큼 바다와, 포구와, 사람들과 진정으로 만나지 못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여는 만큼 다가오나 보다. 


책은 저자가 찾은 여러 포구의 풍경과 그 곳에서 만난 이들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중에서 내게 강한 울림으로 남는 곳은 진도이다. 저자는 진도에서 타고 난 소리꾼 조공례 할머니와 우연히 조우한다. 그 우연의 조우 덕분에 나도 조공례 할머니의 사연과 소리를 듣게 되었다. 조공례 할머니는 소리신이 붙었다 할 정도의 타고 난 명창이었다고 한다. 소리꾼으로 섬을 돌아다니며 남편 수발 서운케한다고 남편이 돌로 할머니의 입술을 짓이겨 버렸단다. 소리 못하게 하려고. 참말로 거시기허요. 진도에 배어있는 조공례 명창의 소리와 한이 아마도 송가인이라는 최고의 트롯트 가수를 낳았나 보다. 


아쉬운 부분은 지명의 유래에 대해 충분한 고증없이 주민의 구전에만 의존해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새만금에 있는 야미도의 경우 밤나무가 많아 밤섬으로 불리다가 일제시대 때 밤(夜)이 맛(味)나다는 의미로 엉뚱하게 야미도로 불리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고증하면 《대동여지도》 등 이미 여러 역사자료에 이 섬을 夜味라고 적고 있어 야미의 어원은 고유 지명인 ‘배미’의 차자(借字)로 보여진다는 주장이 많다. 


노화도에 대한 지명 유래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보길도의 세연정(洗然亭)을 짓는데 동원된 아낙들을 늙은 꽃으로 지칭해 노화도가 되었다고 하였으나, 노화도(蘆花島)는 섬에 지천으로 피는 갈대꽃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나도 저자처럼 매인 데 없이 훌쩍 떠나고 싶다. 그리고 마음 가는 곳, 발 닿는 곳에 들러 글을 쓰고 싶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연을 같이 담으면 더욱 좋을 듯하다. 


책장을 덮을 때쯤 책에 실린 ‘섬집아기’ 가사를 읊조리다 문득 울컥해진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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