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내 영혼의 망명지 May 12. 2022
십수 년 전 백화점 명품 브래드를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친절한 거절을 경험했다.
제품을 구매하고 계산을 마친 후 정중히 그 브랜드의 쇼핑백 하나를 더 요청했다. 그러자 점장으로 보이는 이는 쇼핑백은 제품당 하나만 제공된다며 정중히 사과를 했다.
이유는 간단한 듯 보였다.
당시 명품 브랜드 대신 그 브랜드의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다.
쇼핑백마저 명품의 코드가 되고, 소유자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던 시절이었다.
명품이 계급인 가면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제 가면은 사라지고 벌거벗은 대중만 남았다.
그는 나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샵에 들어서는 순간 몇 초 만에 신분이 노출된다.
나에 대한 정보는 낯낯이 오픈된다.
내가 무엇을 구매하는지 그는 안다.
취미가 무엇인지, 습관이 무엇인지, 숟가락이 몇 개 인지도 안다.
아마 이상형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명품을 구매할 의향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안다.
그래서 예스 전자 서비스센터의 직원이 내게 무관심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벌거벗은 소비자다.
명품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두 가지가 있다.
명품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의 시선과 명품의 구매빈도를 기억하는 AI의 시선이다.
쇼핑백 만으로, 명품차 만으로 세상의 계급이 되는 시대는 이제 없다.
명품 브랜드는 자진의 가치를 스스로 죽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