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쩌다 독일로, 그런데 코로나를 곁들인

왜 굳이 독일이었을까? 지난 독일 5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독일에서 5년. 돌이켜보면 정말로 무모한 결정이었다. 8년간 일하던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전세금을 빼고, 모아둔 전 재산을 찾아, 당시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이던 어린 세 자녀를 데리고 모든 가족이 함께 독일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은.

물론 언젠가 독일에서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다. 사직서를 내기 전부터 남산 자락에 있는 괴테 문화원란 곳에서 주 2회 독일어 어학과정에 참여했다. 그때가 언제쯤이더라? 아마도 가장 기초단계인 A1.1에서 A.1.2를 넘어가려는 시기였던 것 같다. 독일어 공부를 어느 정도 해봤던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한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기초적인 수준으로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무모했다.

독일에 어떤 도시가 있는지도 채 알지 못할 때였다. 단순히 인터넷에서 웹서핑을 몇 차례 하면서 정보를 얻었다. 당시 내가 청소년 교육단체에서 일했던 터라, 경험교육에 관한 학과가 있는 학교를 찾았는데, 딱 한 곳이 나왔다. 물론 나의 정보력이 부족했던 것 때문이었겠지만, 당시로선 하나라 다행이다 싶었다. 굳이 머리 싸매고 고민할 것 없이 그리로 가자고 결정했다. 그곳이 지금 내가 있는 마부르크라는 도시이다. 단순하고, 무모했다.

집이 구해진 것도 아니었다. 대학교 원서를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입학 허가를 받을 것이라 믿었다. 퇴사를 하고, 집을 정리하고, 비행기표를 샀다.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기 일주일 전, 독일 대학교에서 입학 허가를 줄 수 없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나마 있던 조악한 계획마저 시작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단순하고, 무지하고, 무모했다.

물론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인 이유는 있었다. 이유 없는 무덤이 어디 있을까마는, 요약하면 나를 둘러싸고 있던 한국의 많은 상황들에서 가능한 한 빨리, 가능한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치면 적당할 것이다. 당시 나의 상황을 비유하자면, 스스로 절벽으로 내몰고, 돌아갈 다리마저 끊어버린 채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형국이었다. 아찔하기 그지없었다.

인생은 역설이다. 약점은 이따금 강점이 되기도 한다. 크게 재지 않고 단순하게 고른 도시에서 계획하지 않았던 좋은 사람들을 만나 큰 도움을 얻었다. 덕분에 수월하게 집을 구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가족과 같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학비자를 받지 못했지만, 어학비자를 받을 수 있다. 주 5일 독일어를 배운다는 목적으로 비자발급이 가능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학비자로 모든 가족의 동반비자를 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단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더  당당하게 어학비자로 동반비자를 요청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렇게 해주었다. 무지함은 용기로 치환되어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3개월 뒤, 코로나 팬데믹이 있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으려던 찰나 또 다른 일격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어두움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절망 속에서도 감사는 가능했다. 어학원은 모두 문을 닫았고, 나는 어학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하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고립된 상황에서 아이들은 독일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역설적이게도 한국 커뮤니티와 단절되면서 독일 문화에 더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혼란스런 5년이 시간이 지났다. 심지어 2년의 코로나 팬더믹도 그 가운데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을 이루기 위해 나름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목표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금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 연금술사들이 비록 금을 얻지 못했지만 다른 값진 발견을 했던 것 같이, 우리도 생각지도 못한 다른 결과물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일단 우리는 여전히 독일에 있다.

비록 처음 생각했던 경험교육에 대한 학위는 아니지만, 나는 다른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내는 한국의 사회복지사 자격을 독일에서 상호인증받는 절차를 알아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단계를 통과하는 중이다. 아내는 지금 독일 청소년 관련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이던 아이들은 이제 일곱 살, 아홉 살, 열한 살이 되었다. 아이들 모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또래 친구들을 얻었고 즐거운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독일에서 자신들의 친구들과 계속 함께 하고 싶어 한다. 기쁜 일이다. 이곳의 삶을 충분히 즐기고 기뻐하고 있다. 다만 이것에 대해 이전에는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했었다. 유학생활로 시작한 독일 생활이 이민 생활로 바뀌는 중이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 슬픈 일인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아이들 덕분에 우리의 독일에서의 삶은 그래서 더 길어질 예정이다.

계획 없이 시작한 독일의 삶이기에, 미처 예상치 못했던 많은 것들에 직면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또한 여러 가지들을 배웠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값어치 있는 것들을 또한 얻곤 했다. 이 글은 그런 지난 5년의 실패에 대한 고백의 글이다. 또한 우연한 성취에 대한 감사의 일기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무모해질 필요는 없지만, 혹 우리의 이런 무모한 삶이 누군가에게는 '아, 저렇게도 살 수 있기는 하구나. 내가 그래도 저들보다는 낫구나'와 같은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