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노동과 서비스
독일에 거주 중인 한국인 A 씨는 얼마 전 자동차 정비소를 방문했다. 특별히 고장 난 부분은 없었지만, 한국에서처럼 “이것저것 점검해 주세요”라고 가볍게 요청했다. 다행히 자동차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A 씨는 수리가 필요한 것이 없기에 당연히 아무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정비소를 떠나려 했다. 하지만, 정비공은 A 씨에게 당당히 202.3유로가 적힌 청구서를 내밀었다. A 씨는 예상치 못한 금액의 청구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아무런 수리가 필요 없이 간단한 점검만 부탁했는데 이렇게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인가? 놀라움에 청구서 내역을 확인하니 다음과 같았다.
- 기본 점검 인건비: 120유로
- 차량전자진단기사용료: 50유로
- 부가가치세(19%): 32.3유로
- 총액: 202.3유로
이 일화는 독일에 살고 있는 한 지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사실 독일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럼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는 독일은 노동의 대가를 철저히 지불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관습적으로 이루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엄연히 강제성을 띈 법적 기반 위에서 작동하는 원칙이다. 독일에서는 어디에서든, 어떤 종류의 서비스든 간에, 제공된 노동에 대한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자동차 정비소와 같은 기술 노동은 고도로 숙련된 인력이 투입되며, 이들의 시간과 기술력은 중요한 가치로 평가된다. 게다가 독일의 부가가치세(VAT) 시스템은 부품뿐만 아니라 인건비에도 마찬가지로 19%의 세금을 붙인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한국인 소비자가 독일에서 처음으로 체감하는 서비스 비용은 때때로 경악하리만큼 지독해진다.
독일이 노동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사실 여러 가지 사례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노동권에 대한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노동자의 권리, 고용주와의 협상 방법, 근로시간 및 휴식시간에 대한 법적 기준 등이 학교 교육과 사회적 캠페인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노조의 결성과 활동 역시 독일에서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독일 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필요시에는 파업을 벌이는 등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한다. 실제로 2022년 기준 독일 노동자의 약 17%가 노조에 가입되어 있으며, 이는 유럽 평균을 웃도는 수치다.
심지어 독일에서 어떤 노동조합이 파업을 할 경우, 일반적으로 독일 국민의 상당수는 이를 지지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2023년 3월 대규모 공공교통 파업 당시, 여론조사에서 약 55%의 독일 국민이 파업이 정당하다고 응답했다. 이 파업은 물가 상승과 생활비 증가에 대응하여 노동자들이 10.5%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진행되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파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 혼잡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독일에서는 파업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더 나은 협상을 이끌어내는 데 필수적인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노동환경은 근로자들에게 안정감을 주며, 독일이 ‘워라밸(Work-Life Balance)’의 모범 국가로 불리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미지 출처: KBS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34144)
반면 한국의 서비스는 독일과 달리 소비자 중심이다. 빠르고 친절하다. 심지어 무료 서비스들도 많다. 가게에서 "이건 서비스예요."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건 무료로 드리는 겁니다."라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서비스는 때때로 무료 서비스의 줄임말이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낯설다. 대형마트나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간단한 수리 서비스를 본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의 소비자 중심 서비스 대해 놀라워하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양과 음이 있다. 이러한 편리한 고객 중심의 서비스, 무료 서비스들은 서비스업 종사 노동자들의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위에서 이루어지곤 한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종종 긴 근무시간과 비현실적인 고객 서비스 요구에 시달린다. 한국에서 서비스업 노동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이러한 환경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런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처우를 상기시키는 다양한 캠페인들도 많아지고 있다.
독일과 한국의 노동 및 서비스 문화를 비교하며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독일의 시스템은 노동에 대한 존중과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지만, 때로는 비싸고 느린 서비스로 소비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반면 한국의 무료 서비스 문화는 소비자에게는 편리하지만, 종사자들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중요한 것은 두 나라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노동과 서비스가 공존하며, 모두가 정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독일의 노동 존중 문화를 한국에, 한국의 서비스 정신을 독일에 조금씩 접목할 수 있다면 더욱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