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필요한 지식을 판단하는 '안목'을 가르치자

by 독한아빠

그래. 백번 양보하여 자녀의 성공적인 미래 삶을 위한 '직업'을 설정하기 어렵고, 필요한 '지식'을 가늠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무엇인가는 배우고 준비해야 한다고 믿는다.


존 듀이는 전통적으로 기성 교육의 목표가 '미래의 삶에서 책임 있게 행동하고, 성공하도록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분명히 맞는 말 아닌가? 내 자녀가 지 밥그릇 하나 제대로 못 챙겨 먹도록 만들고 싶은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꼬리보단 머리가 되길 바라는 것이 당연한 부모의 마음 아니겠느냔 말이다.


아무런 배움도 없이, 어떠한 지식도 없이 미래에 사회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토플러의 한국 교육에 대한 비판만 하더라도 '현재 교육'의 내용에 관한 비판이지, '지식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지 않은가? 정말 책임감을 가진 부모라면, 정말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라면, 도리어 미래에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최대한 살펴보고 가늠하여 대비시켜주는 것이 옳지 않은가?




누구든 이렇게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렇게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이라 믿는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친다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비교적 간단하다. 미래에 대한 지식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준비하면 되는지 살펴보면 되는 것이다. 부모가 미래학자도 아니도 좋고, 저명한 연구원도 아니더라도 좋다. 자녀의 성공을 끔찍하게 바라는 한 사람이기만 하다면 누구든 자녀의 미래를 사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을 테니까 말이다.


data-978962_960_720.jpg *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de




바야흐로 1인 미디어의 시대
: 지식이 '홍수'처럼 범람한다.



사실 '미래'에 관한 정보를 찾고, 모으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정보를 담고 있는 매체들은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고개를 돌리면 눈에 밟히고, 조금 움직이면 발에 차인다. 신문과 텔레비전과 같은 레거시 미디어도 건재하고, 인터넷과 디지털 기반의 뉴미디어가 담고 있는 정보들도 풍요롭다. 뿐인가? 소위 1인 미디어의 시대이다. 블로그와 유튜브, 팟캐스트 및 각종 개인 방송들로부터 관련된 정보들이 일순간에 쏟아져 나온다. 정보들은 홍수에 범람하는 강물처럼 순식간에 밀려든다.


미래를 예측한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고, 그런 정보는 당연히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과유불급'. 몸을 가누기도 힘든 거대한 정보들은 정보의 옥석을 가리는 것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단순히 양만 많은 것이라면 또 어떻게 인내의 쓴 잔을 마셔보겠지만, 각각의 정보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충돌하고 있으니 옥석은 고사하고 각 정보의 '진실성'마저 의심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인간의 생존을 담보했던 '지식'은 이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인간사를 통틀어 '정보'는 모든 인간들이 갈망하는 것이었다.


'어떤 것을 먹어야 안전한가? 어떤 도구를 개발해야 강해질까?'


일차적인 생존 정보뿐 아니라 고상한 철학이나 찬란한 과학기술도 모두 자연인의 생존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정보'의 소유는 곧 생존이었다. 따라서 정보는 그 자체로 '권위'를 지녔고, '지혜'와 '지식'이라는 아름다운 관을 쓰고 사람들 위에서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나 가치로운 것(price-less)들이 많아지면, 값어치가 사라진다(less than the price)고 하지 않던가? 어떤 정보가 가치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소위 '가짜 뉴스'들이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출처도 정확성도 모호한 쓸데없는 정보들이 오히려 명품으로 둔갑하고, 가치 있는 정보들은 도리어 '떨이'나 '묶음'으로 분류되어 초라하게 진열되기가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생존을 담보해줄 '적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면, 인간의 생존을 담보했던 정보의 범람은 이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순에 이른 듯하다.




내일 자녀들이 통과해야 할 곳은
'정보의 강' 정도가 아니라,
노도가 넘실대는 대양이다.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적적으로 미래사회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획득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순금'과 같은 그 지식과 정보들을 또한 '온전하게' 우리 자녀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보자.


이 경우에도 우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자신할 수 스스로 있는가?

우리가 제공한 정보들은 우리 자녀들의 평생을 담보할 만큼 충분한 것인가?


아니,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제공한 그 지식이 아무리 클지라도 어차피 끝이 있는 '유한한' 지식일 뿐이다. 언젠가는 소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학의 '극한값'이란 개념을 아는가? 분모가 n이라면, 그 끝이 무한히 뻗어간다면, 분자가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결국 그 끝은 '0'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아무리 방대한 지식이라 할지라도 무한히 뻗어가는 우리의 인생 속에선 결국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말이다.


recco-4277787_960_720.jpg 내일 우리 자녀들이 건너야 할 곳은 강이 아니라 노도가 공격하는 정보의 대양일 수밖에 없다. (*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de)


비단 우리의 지식뿐이겠는가?

이런 현실은 오늘 우리 시대에서 끝이 나겠는가?


'한 번 변화가 시작된 이후에는 절대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라는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법칙)을 들어본 적이 있다. 시작된 변화는 멈추는 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 뿜기 시작한 '정보의 샘'은 결코 마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정보의 강을 건넜다면, 내일 우리 자녀들이 건너야 할 곳은 강이 아니라 노도가 공격하는 대양일 수밖에 없다.


오늘을 담보할 수 있는 지식을 주던, 내일을 담보할 수 있는 지식을 주던, 지식의 전달은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찾아 준 지식은 결국에는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고,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정보의 생수'를 찾아내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자녀이다.


우리는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것'보다, 필요한 지식을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을 심어주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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