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없는 지식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엘빈 토플러의 질문. 미래를 보장하는 '직업'이 있을까?

by 독한아빠

미래를 보장하는 '직업'이 있을까?

"우리 똑똑한 아들! 넌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아빠, 저는 열심히 공부해서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는 판사가 되고 싶어요!"
"아이코, 아들아. 세상에는 그런 직업은 없단다."


판사가 사라진다고? 농담조로 던진 비유이나, 안타깝게도 마냥 농담만으로 던진 이야기는 아니다.


'인공지능(AI)'이나 '4차 산업혁명'과 같은 단어들은 벌써 식상한 용어가 되어 버렸다. 그만큼 보편화될 이들의 영향으로 20년 뒤 세상은 지금과는 아주 딴판이 될 것이라는 연구가 있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 중 절반 가까이 사라질 것이고, 지금은 알 수도 없는 새로운 직업군이 또한 나타날 것이라 한다. (*옥스퍼드대학 「The Future of Employment, 2013」, 세계경제포럼, 「The Future of Jobs Report 2018」)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 없는 지식과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을 허비하고 있다.


지금은 별세한 저명한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한국의 교육을 위와 같이 평가했다.


물론 실제 미래가 어찌 될지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마는 다양한 '예측'과 '연구'들이 말하는 바는 한 곳으로 향한다. 그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미래사회로 우리가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를 맞이할 사람이 몇 세대 뒤의 우리 자손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라는 사실이다.


3304173_Cux.jpg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 (*이미지 출처: KBS 뉴스, http://d.kbs.co.kr/news)




나는 지금 단순히 미래에 어떤 직업은 사라질 것이라는 와 닿지도 않는 가십거리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혹은 미래가 변화하고 있다는 너무나도 자명한 진실을 말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우리가 너무 사랑하는 우리의 아들과 딸 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함께 고민하고 싶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의 행복을 바란다. 오늘 우리들이 우리 자녀들의 교육에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실은 우리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닌가? 우리 아들과 딸들이 우리와 달리(혹은 우리처럼) 평안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부모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스스로 속물 같고 졸장부 같게 느껴지더라도 삶의 만족과 행복과 사회적, 경제적 조건이 큰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때문에 자녀의 행복을 바라는 부모 중 대부분이 소위 1%의 특정 '직업'군에 초점을 맞추고 자녀를 잡아끄는 것이다. 교육이란 언제나 '이상'을 추구하지만, 현실적 '이해'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자녀에게 '행복한 삶'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부모들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그런 믿음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을 이끌고 묵묵히 걸어가던 부모를 막아선다. 토플러를 비롯한 다수의 미래학자들이다. 그리고 당신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나 당신이 가는 길은 이미 끊어졌다고 말한다. 그 길은 분명 오늘의 행복은 가져다주었지만, 내일의 행복까진 담보하지 못한다고도 말한다. 미래는 당신의 예측을 이미 넘어섰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 말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은 이젠 우리의 선택이다.


"사회는 원래 변하는 거지. 당연한 소리로 협박하기는."


애써 용감하게 소리를 질러보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 세상은 가깝든, 멀든, 정확히 언제가 될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분명히'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아니 '진실'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 중 일부는 이미 오늘의 현실 속에서도 다가오는 사회의 코 끝 정도는 이미 '체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감각은 언제나 인지에 앞서는 법이니까.


pimg_7073211761494503.png 각 단계 사이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몇 '세기'에 걸쳐있던 변화의 폭은 한 '세대'도 되잖는다 (*이미지 출처: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박형근, 2014)


우리는 결국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을 '비슷하게조차' 예측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 이 사회는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변화하던 그때의 그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촉발되었던 1차 산업혁명에서 산업의 자동화를 이끌었던 2차 산업혁명까지 거의 100년이 걸렸다. 소위 '정보화 사회'를 가능하게 했던 IT분야의 성장, 3차 산업혁명이 1970년 대에 시작되었다. 역시 100년, 한 세대 정도가 걸렸다. 2000년대 초, 이미 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한 세기가 지나려면 아직 80년은 족히 남았다. 과연 우리는 미래의 사회를 제대로 그릴 수 있을까? 어쩌면, 인정하긴 싫지만, 토플러의 말이 옳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전달하고 있는 지식은 우리 아이들의 세상에선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이 될 수 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의 행복을 바란다. 그 행복한 삶을 선물해주고 싶어서 지금 자녀의 교육에 나의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내 자녀는 나와 다르게, 나와 같이,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으로 전력을 다하고 있는 지금의 '교육'이, 지금의 '지식'이 나의 자녀들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세상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라면.


이제 우리는 어디에다 우리의 고귀한 깃발을 꽂아야 하는가? 어느 곳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하는가? 어떤 것을 준비시켜야 사랑하는 자녀에게 '그 삶'을 선물해 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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