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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Nov 20. 2020

밥은 먹었니?

사춘기 아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엄마의 말 한마디

우리에게 밥 한 끼가 주는 의미는 뭘까? 삼시세끼 일상적으로 밥을 먹는 일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 나를 포함한 가족들의 밥 한끼, 더 좋은 밥 한 끼를 먹이기 위해 참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아등바등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내는 일들도 어찌보면 너와 나 우리 모두가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몸부림 그 자체인거다. 그래서 우리에게 밥의 의미는 단지  끼니를 때우는 곡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이 끼니 시간을 넘겨 들어올 때에도 "밥은 먹었니?" 라고 묻고, 오랜만에 마주친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다음 만남을 약속할 때에도 "나중에 우리 밥먹자" 또는 "언제 밥 한번 살게" 라는 말을 건넨다. 잘 차려진 밥상을 보면 같이 먹고 싶은 누군가가 떠오르고, 특정 메뉴를 보면 그 음식을 좋아했던 누군가가 '그리움'을 몰고 떠오른다. 이렇게 '밥'이라는 한 단어에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밥 한 공기의 의미 말고도 상대방에 대한 걱정, 배려하는 마음, 그리운 이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과 같은 수많은 감정과 의미들이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밥은 먹었니?'라는 한 문장에 담긴 의미가 참 좋다. 내가 누군가에게 건넬 때나 아니면 다른이로부터 들을 때 모두...


한동안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듯 보이는 아들녀석의 마음이 또 다시 일렁이는지 지난 한 주 내내 집안 분위기가 썩 안좋았다. 10월달 유난히 나도 기분이 좋더라니... 격동의 시간들을 견디라고 미리 선물을 준 건지... 월요일부터 며칠동안 무거워진 마음들로 서로 베고 베이는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내가 엄마고 어른이니 참기도 해야겠지...그래서 많이 이해하고 다독거리기도 했지만 앞뒤 생각없이 툭툭 내뱉는 아들의 말들... "엄마가 잘 못 키워서 그래!" ... 지난 시간동안 쏟아부은 나의 노력과 애씀이 한 순간에 부정당하는 듯한 그런 말들에 적잖이 상처 입었다. 자기도 뜻대로 안되고 내가 편하니 나한테 화풀이 하는거라고 너그럽게 생각해야 했지만, 거침없는 못난 말들에 나도 더 못 참고 다 내 책임인거냐고, 내 말은 듣지도 않았으면서 어디서 남 탓을 하느냐고 아들을 몰아 붙였다.


월요일부터 쌓인 무거운 감정들은 아들의 학원 이동 문제로 수요일에 폭발을 했고, 나랑 싸운 후 가방을 챙겨 나간 아들은 과외 시간이 다 되어 오는데도 들어오질 않았다. 설마 선생님 오시는 시간까지는 들어오겠지 싶었는데, 선생님의 전화도 내 전화도 받지 않았다.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나니 점점 더 복잡해지는 머리속... 아이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그냥 힘이 빠지는 느낌이랄까... 아들이 내게 했던 말들을 곱씹으며 울기도 많이 울어 그런지 지치기도 했고, 날 추운데 밤에 자러는 들어오겠지 싶은 생각도 들어 우선은 침대에 피곤한 몸을 뉘였다. 일이 있어 저녁 늦게 들어온 신랑은 스터디 카페 같은 곳이라도 찾으러 가야하지 않느냐고 했지만 나는 12시까지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러다 11시 반이 좀 넘으니 들리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 들어왔다는 것에 일단은 안도하며 그 날은 그렇게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내 말에 대꾸도 안하는 녀석... 며칠간 이어진 침묵의 시간들...나 역시 의식주에 관계된 기본적인 의무만 해줬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신랑은 일이 있어 늦는데다, 학원 일정도 없는 아들은 저녁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고, 딸도 학원 후 친구와 잠시 시간 보내고 온다고 해서 혼자 저녁시간을 보냈다. 사실 좀 혼자 있고 싶어서 그 시간이 외롭다거나 싫지 않았다. 밥 차릴 필요도 없고 나도 내 할 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8시쯤 넘어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니?"

"나..."

.

.

.

"밥은 먹었니?"

"간단히 먹긴 했는데 배고파."

"밥은 미리 안해서 없고 닭봉 있는데 그거 구워줄까?"

"응. 그거랑 라면이랑 먹을게."

"좀 기다려..."

"응..."


식구들이 다 늦을거라 그 날 밥을 안했다. 난 이른 저녁을 대강 먹었고 토요일 아침은 보통 빵을 먹으니까... 게다가 이번주 장도 특별히 본 게 없어서 해 놓은 반찬도 없었다. 금방 해 줄 수 있는게 에어프라이어에 굽는 닭봉과 냉동 볶음밥 뿐... 닭봉구이는 좋아하는 아들이라 물었더니 먹겠다고 해서 얼른 준비했다. 한 이틀 '일어나', '밥먹어' 같은 필요한 말만 하고 다른 대화는 하지 않았던 우리... 심지어 내 말엔 대꾸도 안 했던 녀석인데 뭐가 이쁘다고 먹을걸 준비하느라 난리인지...내가 엄마가 맞긴 한가 보구나.

급하게 구워서 평소보다 맛있게 보이진 않았지만 접시를 다 비웠다. 닭봉을 먹는 동안 라면을 끓이며 아들에게 물었다.


"근데 어디 갔다왔니?"

"○○이랑 독서실 갔다왔어. 숙제할 것도 있고..."

"그래...네가 할 일들은 알아서 잘 챙겨서 해. 오늘 동아리도 했니?"

"응..."

이런 대화를 하는데 마침 방송에서 김영광이 나왔다. 김영광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터라 나도 모르게...

"엄만 김영광 참 괜찮더라?"

"그래? 어디 많이 나오나?"

"지난번 나 혼자 산다에도 나오는거 봤는데 느낌이 괜찮더라구..."


어느새 김치 넣은 라면이 다 끓었다. 아들 앞에 갖다 주고 난 다시 내 할 일을 하는데 식사를 마친 아들이 갑자기 발톱 때문에 발이 아프다며 내 앞에 발을 내민다. 그러더니 발톱 좀 깎아 달라는 녀석... 아니 나한테 엄마가 잘못 키웠다는 말을 할 때는 언제고 이젠 그 꼬랑내 나는 퉁퉁한 발을 들이밀며 발톱을 깎아 달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갑자기 코미디로 장르가 바뀌는 너와 나의 이야기...이 흐름을 어찌할꼬...


그래도 그 발톱...다 깎아줬다. 그러는동안 나도 아들도 그 날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도 있었지만 이번엔 이렇게 넘겨야 하는건지...분명 아들도 불편하다는걸 알텐데, 일단 그날 바로 얘기하는건 아닌것 같아서 기회를 보기로 했다. 내가 건넨 "밥은 먹었니?" 라는 말 때문인지 며칠 동안의 냉기는 사라지고 평소처럼 또 나를 찾아대기 시작하는 아들녀석... 엄마 마음속에 오만가지 생각들이 가득하다는걸 아느냐?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일요일 저녁...친구와 잠시 운동하겠다고 나간다더니 나더러 약속장소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알아서 가라고 하려다가 바람도 많이 불고 날도 추워서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그 바람에 차에서 단둘이 이야기 할 기회가 생겼다. 사실 말을 안 해도 다 안다. 나도 미안하고 너도 미안해 한다는 것을... 쑥스러워도 할 말은 해야지... 마침 그 때 아들과 나의 불편한 대화를 터 준 단어는 '불효자'... 만날 친구와 차에서 전화하면서 아들이 엄마가 데려다 주는 중이니 거기서 보자라는 말을 하니 친구가 웃으며 "이 불효자 새끼..." 라고 했나보다. 아마 나와 있었던 일을 아들이 친구에게 말했던건지, 아들 친구 녀석의 반응이 묘한 쾌감을 주었다.


"엄마, 엄마 차 타고 가는 중이라고 했더니 OO이가 나더러 불효자 새끼래."

"ㅎㅎ 불효자 맞지. 친구가 잘 봤네...혹시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 없니?"

"미안해..."

"그래... 엄마도 미안해. 앞으로 서로 말할 때는 신경쓰자. 그리고 과외는 선생님과 너의 약속이니 못하게 되면 미리 단도리를 해야지... 그렇게 연락 없이 안하는건 안되는거야. 엄마가 사정 얘기를 하긴 했지만, 너도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문자 드리고..."

"응..."


그렇게 아들과 나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친구들과 축구를 한 판 하고 온 아들도 기분이 나아 보였고... 앞으로 이런 일들이 수없이 반복 되겠지만 그때마다 무너질 수는 없다. 아들과의 그 일 이후, 몇 년간 안 보던 책을 펼쳤다. 서천석 박사님의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아이가 잘못되거나 문제가 있으면 하나같이 엄마 탓이라고만 하는 듯한 육아서들 속에 유일하게 부모에게 위로를 주는 책... 내게 서천석 박사님의 책들은 그랬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니 괜찮다, 아이도 나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라고 다독이는 말들... 책속의 여러 문장들을 읽으며 내 마음을 다져 본다. 유치하게 아이와 맞서지 않고 좀 더 성숙한 어른으로 나만 믿고 있을 아이를 대해 보자고... 그래서 잘못을 탓하거나 비난을 하는 뾰족한 말들을 내뱉기 보다는, 그 어떤 순간에도 "밥은 먹었니?" 같은 아주 기본적이고 따뜻한 말들을 자연스레, 너그럽게 건낼 수 있는 내가 되어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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