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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Nov 21. 2020

너와 나, 우리 사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꼭 필요한 솔직함

사십 대 중반의 나이... 그 세월을 살면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어릴 때야 그렇다 치고, 관계의 기쁨과 슬픔을 아는 나이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나를 스치고 간, 또 내가 스쳐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다 나열할 수 없지만 쌓인 세월만큼 우리들 관계에도 기쁨과 슬픔이 공존했다. 누군가로 인해 너무 기뻤다가, 또 누군가로 인해 괴로웠던 순간들... 비단 남녀 관계에서 뿐 아니라 내가 속한 모든 공간에서 인연을 맺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렇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싫으면 말고...라고 지금은 편하게 말하는 정도가 되었지만, 아니 예전에 비해 덜 신경 쓰고 얽매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 사실 인간관계는 늘 스트레스다.   


오죽하면 인간관계에 대한 에세이가 넘쳐날까... 나 역시 사람으로 마음이 힘들 땐 그런 에세이들을 찾게 된다. 내가 책 속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들이 이상한 게 아니구나'라는 묘한 동질감... 내 심정을 그대로 박아놓은 듯한 글을 읽고, 그들의 대처를 보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성격상 거짓말도 못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거짓말하고, 떠 보고, 간 보는 그런 일들이다. 그렇게 할 거면 들키지나 말지, 어쭙잖은 행동들로 기분이 나빠지면 그 상대에 대한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그렇다고 대놓고 따지지도 못한다. 왜 솔직하지 못할까... 정말 숨겨야 될 일들도 아닌데 툭 터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답답하고 짜증 나고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우습나라는 못난 생각까지...


물론 나의 모든 일을 상대에게 다 말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친밀함을 유지하고 있는 관계에서 '진실된 마음'은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있어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은 나만 했구나라는 뒤늦은 깨달음을 알게 해 준 몇몇 사람들과의 관계를 겪으며, 나도 사람 사이의 관계, '너와 나, 우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 조금은 단호해질 수 있었다. 질질 끌려가는 관계, 상대방만 너무 배려해서 내가 손해 보는 관계, 나만 일방적으로 상처 받는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나의 감정을 우선하고, 싫은 말이나 불편한 마음도 내비칠 수 있는 그런 나로 말이다. 여전히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건 성격상 힘들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아무 말 않고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소식 모르고 산 지 십 년도 훨씬 넘은 친구... 이십 대 후반,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만났던 친구가 있었다. 같은 길을 가려는 친구였고, 나름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며 열심히 살아온 친구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쉽게 마음을 열었었다. 나보다 한 기수 아래의 그 친구... 먼저 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나는 그 친구가 입학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참 많이 애썼다. 언어 전공인지라 실질적으로 공부하는데 그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거다. 결국 그 친구는 합격했고, 학년은 달라도 학교에서 자주 만났으며, 졸업 전 마지막 방학에는 같이 현지로 어학공부를 하러 가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원 졸업 전 그 마지막 방학에 나는 혼자서 연수를 가는 게 맞았다. 아니, 같이 갔더라도 수업을 따로 들었어야 했다. 대학 내내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없었던 나는 늘 현지의 언어 감각을 익히는데 목말랐고,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졸업 전 마지막 외국에서의 개월간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내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한 선생님께 같은 수업을 듣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친구 눈치를 살펴야 했다.


어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언어 습득 방법이 따로 있고, 언어에 대한 감 또한 공부에 영향을 미치다 보니, 알고 있는 단어도 전문 용어들도 각자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주제로 수업 준비를 하는 건 각자의 역량... 신문을 보든, 전문 잡지에서 소스를 얻든, 다음 날 필요한 수업 준비는 각자가 하는 거였다. 필요한 단어 서칭은 기본이었고... 그런데 수업에서 그 친구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내가 눈치가 보이고, 마치 내가 안 알려주기라도 한 것처럼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지금 같았으면 단호한 결정을 했을 나다. 수업을 분리하든, 내가 학원을 옮기든... 하지만 그땐 그 친구 기분 생각해주느라 내 걸 제대로 못 챙겼다. 바보같이...


대학에서 전공으로 선택하면서  처음 접했던 언어... 한국에서 공부한 나는 문법에 강했고, 외국에서 지냈던 그 친구는 구어체, 즉 일상 언어에 강했다. 만약에 그때 쓸데없는 감정 소모 대신 서로가 가진 언어적 강점과 약점을 잘 활용했다면, 우리 둘은 아마도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최고의 파트너가 되었을지 모른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당시 내가 어학 공부에 가장 많이 활용했던 건 현지어로 된 신문과 잡지... 그 친

구와 몇 개월 현지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부 방법을 공유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노력의 결과까지 같아질 순 없는 건데 그걸 인정하고 채우려 하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바람과 불만만이 커져갔다.


내가 잘하고 그 친구가 못했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다만 섬숙하지 못했던 감정에 대한 아쉬움, 그래서 소중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나에 대한 불만인거다. 불편했던 몇 번의 수업 시간을 거치며  나도... 내가 잠 안 자고 준비한 것들을 그 친구에게 그냥 내어주기 싫은 못된 심보가 생겨났고 그 친구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계속 볼 사이라는 생각에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마음이 불편해지자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렇게 불편한 두어 달이 지나갔고, 처음 생각과는 달리 만족스럽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내고 한국으로 들어온 나를 기다리는 건 코 앞에 닥친 졸업...


호기롭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던 건데, 2년의 시간은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나의 목표, 주변 상황, 여러 현실적인 요건들이 모두 다... 오히려 언어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고, 나를 지탱해주던 자존감마저 흔들흔들... 언어를 전공하고, 그 언어 때문에 회사 생활을 하고, 다시 그 언어를 공부하고자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던 나인데, 졸업을 앞두고 실력면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나의 상황이 참 답답했다. 제대로 보내지 못한 마지막 외국 연수는 두고두고 아쉬웠고 무엇보다 단호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화가 컸다. 자존감은 있는 대로 추락...그래도 취업을 해야 하니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만 할 수는 없어서 틈만 나면 구직 사이트를 뒤졌다. 흔한 언어가 아니라 올라오는 게시물 중에 내가 원하는 일을 찾기는 너무 힘들었지만, 어느 날 눈에 확 들어오는 강사 구인 공고!!


직원들에게 어학을 가르칠 강사를 구한다는 그 광고를 보고 기쁜 마음도 잠시... 자세히 공고 내용을 보니 서류제출 마감 기한이 하루가 지났다. 아... 어젠 내가 왜 못 봤을까, 답답한 생각이 들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회사 구인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강사 구하셨냐고... 그런데 그쪽에서 돌아온 대답은, 면접은 몇 분 보고 가셨는데 마땅치 않아 보류했으니 혹시 이력서 보낼 수 있으면 보내시고 바로 다음날 면접을 보러 오라는 거였다. 그때부터 두근두근... 준비해 둔 이력서는 이메일로 보내고 다음날 면접을 보러 갔다. 다행히 내 이력이나 경험들, 그리고 첫인상도 나쁘지 않았는지 그 회사로부터 강사로 일해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구인 담당자로부터 우연히 알게 된 그 대학원 친구 이야기... 나보다 먼저 면접을 보고 간 사람들 중에 그 친구가 있었다. 이럴 수가... 않은 생각이 스쳐갔다. 사실, 그 친구가 면접을 보던 날, 즉 내가 면접을 보기 며칠 전 그 날은 나와의 점심 약속이 있었던 날이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 약속을 취소한 친구... 그러려니 했는데 내 약속을 취소하고 그 회사로 면접을 보러 갔던 거였다. 차라리 나한테 이러이러한 회사에 지원을 했고 면접 볼 일이 있으니 미안하지만 다음에 보자라고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친구가 그 회사 이야기를 했으면 그때의 나는 채용공고를 봤더라도 의리상, 양심상 지원하지 않았을 거다.


합격여부를 알 수 없었으니 미리 말하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나를 경쟁자로 생각했기에 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 지난 채용공고를 붙들었던 거다. 하지만 합격된 건 나... 그 사실을 알고 그 친구는 불쾌해했다. 자기가 왜 떨어졌을까에 대해서는 생각 하지 않고 나 때문에 자기가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을 하지 않은 건 그 친구였고, 나의 행동엔 그 어떤 불손한 의도가 없었다. 되려 처음부터 솔직히 과정을 말했으면, 친구가 면접 봤던 회사니 의리상 가지 않았을 나인데, 오히려 거짓말로 둘러 댄 그 친구가 내게 더 미안해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적반하장'이라는 단어를 쓰나? 서른을 코 앞에 두고도 그런 일들이 생겼다. 유치한 애들만 그러는 줄 았았더니 서른이 다 되어가는 어른도 별 수 없구나 느꼈다. 그 뒤로도 몇 번 자기 욕심 차리는 친구를 보며 화가 났다. 결혼 후 임신 중인 내게도 몹쓸 소리를 했었던 친구... 나중엔 나도 참지 못하고 한 소리 퍼부어 주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마음이 좋아지진 않았다. 좋아했던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실망과 허탈함... 그로 인해 힘들었던 내 마음이 안쓰러웠다. 필요에 의해 맺었던 관계였나 싶고, 그 친구를 위해 쏟았던 내 시간이 아까웠다.


그 뒤로 친구는 외국으로 갔고, 가끔씩 선배들로부터 그 친구에 대해 안 좋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욕심이 지나쳐 거짓말도 많이 했는지 그 친구에 대해 좋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이젠 잊고 산지 오래라 그때의 감정이 아무렇지도 않지만 한동안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 친구에 대한 그때의 내 대처가 아쉽고, 말 한마디 똑 부러지게 못했던 바보 같았던 내 모습이 더 싫었던 이유가 제일 컸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건 내가 아닌 '너'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이 나아졌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들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내 모습과도 점차 자연스러운 이별을 할 수 있었다.

나만 진심이었던 것 같은 그런 관계... 어디 그 친구 하나뿐이었으랴... 내 주위에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나의 성격이나 성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를 중심에 둔다. 그렇다고 내 고집대로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불편을 느끼는 내 감정을 무시해 가면서까지 누군가와의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늘 한결같게, 진심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지만, 노력하다 안되고 아니다 싶으면 스스로 그런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도 있게 되었다.  움츠러들거나 피하려 하지 않게 되었다.


말하지 않으면,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가만히 있고 상대만 다가와주기 바라는 그런 관계는 이 세상에 없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상처 받았듯이, 아마 나에게서 상처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균형이 깨진 관계는 유지되기 힘들다. 너와 나... 우리 사이의 관계는 흔들흔들하다가도 얼른 수평을 맞출 수 있는 그런 관계여야 한다. 관계로 늘 힘들지만 그럼에도 난 바란다. 서로 정을 주고 진심이 담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를... 건강한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됐으면 하고 말이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듯이, 나를 싸고 있는 내 몸과 마음이 누군가에게 향기롭게 다가가도록 앞으로도 미련 떨지 않는 관계에 대한 마음을 잘 가꾸어가고 싶다. '너와 나... 우리의 사이'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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