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바람 몰아치던 목요일... 아침에 아들 녀석 모의고사 보는 날이라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8시 10분까지 가야 한다고 하는데 집에서 출발한 시간은 8시... 신호가 잘 맞아주면 금방 가지만 급한 마음에 좀 밟았다. 비 오는 날 위험천만한 일이었지... 시간 안에 학교 앞에 내려주고 작은애를 데리러 다시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차가 힘이 없더니 서서히 멈추려 했다.
세상에... 그제야 보이는 주유 경고등... 겨우겨우 도로 맨 끝 차선까지는 차를 몰고 갔고 비상등을 켠 후에 급히 보험사 긴급 주유 서비스를 신청했다. 마음은 급해 죽겠는데 묻는 건 왜 이렇게 많은지... 아 답답... 겨우 신청을 마치고 주유해 주러 오시는 분의 전화를 받았는데 내 차가 있는 곳까지 오려면 15분 정도는 걸린다고 했다. 주유 서비스가 도착할 때까지 비상등을 켜고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바쁜 아침 시간에 도로 위에 차가 서 있으니 그 민폐스러움이란... 비가 안 왔으면 트렁크라도 열었겠지만 퍼붓는 비에 그럴 수도 없었고 고가 위 4차선 도로라 내려서 수신호를 하기도 애매했다.
게다가 하필 그 날 나의 옷차림이... 집에서 입는 긴 여름 바지에 겉옷만 걸치고 나간 상태라 그 꼴로 도저히 도로 위에 나갈 수가 없었다. 빵빵대는 차들의 분노를 받아내며 몇 번 독촉 전화까지 하고 겨우 받게 된 긴급 주유 서비스... 3리터... 급한 불은 끈 상태이니 서둘러 작은 아이도 늦지 않게 데려다줬다. 차가 멈추고 나서 기다리고 있을 딸에게 전화를 하니 딸은 늦을 것 같다며 혼자 가겠다고 했다. 비라도 안 오면 모를까... 바람에 우산도 뒤집어질 날씨에 몸 상태도 안 좋은 아이를 혼자 가라 할 수 없었기에 주유 서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더 조바심이 났었다.
사실 노란색 경고등은 월요일 퇴근하고 난 후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 뒤로 아이들 픽업 이외에는 차를 쓰지 않았었고, 수요일, 목요일 다 약속이 있어서 나갈 일이 있으니 그때 주유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수요일 약속은 취소되어 안 나갔고 저녁 픽업도 신랑이 한 데다, 목요일은 무조건 나갈 거니 그때 하지 싶어 그냥 있었는데 비 오는 날 아침 그 난리가 난 거다.
운전경력 20년이 넘는, 나름 한다 하는 운전실력인데,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차가 서서히 멈추던 그 순간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 다 데려다주고 기름을 넣으러 가면서 신랑한테 신경질 냈던 아까의 일이 생각나 톡을 보냈다.
"지금 가까운 데로 기름 넣으러 가. 휘발유라고 얘기하는 건 당연히 알지, 내가 바보야? 아까 마음은 급한데 자기가 그래서... 화내서 미안..."
주유차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때 신랑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휘발유라고 말해야 된다."라고 하길래 신경질을 버럭 냈었다. 아니, 내가 바보도 아니고 설마 휘발유 차에 경유를 넣을까... 그런데 신랑 입장에서는 내가 하도 정신없어하니 노파심에 한마디 한 거였다. 처음 전화 걸어서 보험사가 어디냐고만 묻고 알겠다고 끊었으니, 회사에서 혼자 혹시 사고가 났나 별 생각을 다 했을 텐데... 서비스를 신청하고 다시 전화를 걸어 기름이 없어서 차가 섰다는 말에 어이없어하던 신랑..."뭐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재미없잖아?"내가 실수할 때마다 늘 신랑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너무 완벽하면 자기가 할 일이 없어 심심해서 안된다고... ^^
9시 좀 넘어 들어와 숨 좀 돌리려는데 조금 이따가 모임에서 만날 왕언니가 급한 일이 생겨 모임에 못 나온다고 연락이 왔다. 톡을 하다 답답해서 전화를 걸고 그 언니가 못 나오는 사정과 아침에 내가 겪은 황당한 일을 이야기했는데 언니 왈,
"어머, 그 차가 너였니? 나 너 차 봤어. 고가 위에 차가 서 있길래 운전자한테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어... 내가 니 차 번호까진 모르니... 근데 그게 너였구나, 하하하."
언니는 웃겨 죽겠다며 깔깔대다 다음번에 보자고 전화를 끊었다. 아침의 그 일은 정말이지 내 인생 황당 에피소드 중 하나로 등극했다.
왕언니가 빠진 셋만의 모임... 비 오는 날 아침부터 은근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칼칼한 짬뽕을 먹기로 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이어진 나의 아침 스토리!! 다들 황당해하면서도 재밌어하던 나의 이야기 덕분에 그들도 주유 경고등이 들어오면 그 날 나의 이야기를 떠올리지 싶다. 그래서 미리미리 주유하면 다행인 거고...
월요일 출근길에 계기판을 보니 기름이 4분의 1정도 남아 있었다. 주말 이틀 동안 친정에 김장하러 다녀왔더니 기름 소비가 많았던 듯~ 주행 가능 거리를 보니 회사 출퇴근은 가능하겠지만 경고등 뜨기 전에 미리 주유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