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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Nov 23. 2020

주유는 미리미리...

아침부터 비바람 몰아치던 목요일... 아침에 아들 녀석 모의고사 보는 날이라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8시 10분까지 가야 한다고 하는데 집에서 출발한 시간은 8시... 신호가 잘 맞아주면 금방 가지만 급한 마음에 좀 밟았다. 비 오는 날 위험천만한 일이었지...  시간 안에  학교 앞에 내려주고 작은애를 데리러 다시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차가 힘이 없더니 서서히 멈추려 했다.


세상에... 그제야 보이는 주유 경고등... 겨우겨우 도로 맨 끝 차선까지는 차를 몰고 갔고 비상등을 켠 후에 급히 보험사 긴급 주유 서비스를 신청했다. 마음은 급해 죽겠는데 묻는 건 왜 이렇게 많은지... 아 답답... 겨우 신청을 마치고 주유해 주러 오시는 분의 전화를 받았는데 내 차가 있는 곳까지 오려면 15분 정도는 걸린다고 했다. 주유 서비스가 도착할 때까지 비상등을 켜고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바쁜 아침 시간에 도로 위에 차가 서 있으니 그 민폐스러움이란... 비가 안 왔으면 트렁크라도 열었겠지만 퍼붓는 비에 그럴 수도 없었고 고가 위 4차선 도로라 내려서 수신호를 하기도 애매했다.


게다가 하필 그 날 나의 옷차림이... 집에서 입는 긴 여름 바지에 겉옷만 걸치고 나간 상태라 그 꼴로  도저히 도로 위에 나갈 수가 없었다.  빵빵대는 차들의 분노를 받아내며 몇 번 독촉 전화까지 하고 겨우 받게 된 긴급 주유 서비스... 3리터... 급한 불은 끈 상태이니 서둘러 작은 아이도 늦지 않게 데려다줬다. 차가 멈추고 나서 기다리고 있을 딸에게 전화를 하니 딸은 늦을 것 같다며 혼자 가겠다고 했다. 비라도 안 오면 모를까... 바람에 우산도 뒤집어질 날씨에 몸 상태도 안 좋은 아이를 혼자 가라 할 수 없었기에 주유 서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더 조바심이 났었다.        

                              

사실 노란색 경고등은 월요일 퇴근하고 난 후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 뒤로 아이들 픽업 이외에는 차를 쓰지 않았었고, 수요일, 목요일 다 약속이 있어서 나갈 일이 있으니 그때 주유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수요일 약속은 취소되어 안 나갔고 저녁 픽업도 신랑이 한 데다, 목요일은 무조건 나갈 거니 그때 하지 싶어 그냥 있었는데 비 오는 날 아침 그 난리가 난 거다.


운전경력 20년이 넘는, 나름 한다 하는 운전실력인데,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차가 서서히 멈추던 그 순간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 다 데려다주고 기름을 넣으러 가면서 신랑한테 신경질 냈던 아까의 일이 생각나 톡을 보냈다.

 

"지금 가까운 데로 기름 넣으러 가. 휘발유라고 얘기하는 건 당연히 알지, 내가 바보야? 아까 마음은 급한데 자기가 그래서... 화내서 미안..."  


주유차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때 신랑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휘발유라고 말해야 된다."라고 하길래 신경질을 버럭 냈었다. 아니, 내가 바보도 아니고 설마 휘발유 차에 경유를 넣을까... 그런데 신랑  입장에서는 내가 하도 정신없어하니 노파심에 한마디 한 거였다. 처음 전화 걸어서 보험사가 어디냐고만 묻고 알겠다고 끊었으니, 회사에서 혼자 혹시 사고가 났나 별 생각을 다 했을 텐데... 서비스를 신청하고 다시 전화를 걸어 기름이 없어서 차가 섰다는 말에 어이없어하던 신랑... "뭐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재미없잖아?" 내가 실수할 때마다 늘 신랑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너무 완벽하면 자기가 할 일이 없어 심심해서 안된다고... ^^


9시 좀 넘어 들어와 숨 좀 돌리려는데 조금 이따가 모임에서 만날 왕언니가 급한 일이 생겨 모임에 못 나온다고 연락이 왔다. 톡을 하다 답답해서 전화를 걸고 그 언니가 못 나오는 사정과 아침에 내가 겪은 황당한 일을 이야기했는데 언니 왈,


"어머, 그 차가 너였니? 나 너 차 봤어. 고가 위에 차가 서 있길래 운전자한테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어... 내가 니 차 번호까진 모르니... 근데 그게 너였구나, 하하하."   


언니는 웃겨 죽겠다며 깔깔대다 다음번에 보자고 전화를 끊었다. 아침의 그 일은 정말이지 내 인생 황당 에피소드 중 하나로 등극했다.

왕언니가 빠진 셋만의 모임... 비 오는 날 아침부터 은근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칼칼한 짬뽕을 먹기로 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이어진 나의 아침 스토리!! 다들 황당해하면서도 재밌어하던 나의 이야기 덕분에 그들도 주유 경고등이 들어오면 그 날 나의 이야기를 떠올리지 싶다. 그래서 미리미리 주유하면 다행인 거고...

월요일 출근길에 계기판을 보니 기름이 4분의 1정도 남아 있었다. 주말 이틀 동안 친정에 김장하러 다녀왔더니 기름 소비가 많았던 듯~ 주행 가능 거리를 보니 회사 출퇴근은 가능하겠지만 경고등 뜨기 전에  미리 주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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