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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Nov 25. 2020

주말이 슬펐던 그 시절

평범한 주말이 감사한 이유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금요일부터는 주말 모드에 들어가니 금요일 아침만 돼도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술 한잔을 해도,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티브이만 보더라도 금요일 밤만큼 편한 시간이 없다. 쉬는 날이 이틀이나 더 남았으니 편하지 않다면 되려 이상하겠지...


하지만 내게도... 세상 편한 금요일이 부담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신랑이 해외 근무를 하던 3년간... 큰 아이 7살, 작은 아이 4살이었을 때 갑자기 발령받게 된 해외 지사 근무... 신랑은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바로 해외 지사 근무를 한 적이 있어서, 사실 공채들이 입사 후 한 번씩 나갔다 와야 하는 의무기간은 다 채운 셈이었지만, 그때의 두 번째 발령은 승진 발령이었고 신랑이 꼭 필요했던 곳이라 거절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근무지는 중동, 가족 동반 불가... 그 바람에 한창 아이들이 귀여웠을 그 시절 우리 가족은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아이들 재롱이 극에 달하고, 주말마다 캠핑을 즐기며 추억을 쌓아가려던 찰나에 이 무슨 날벼락인지... 발령이 결정 나고 큰 아이를 안으며 울먹거렸던 신랑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발령을 받고 떠나는 날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최대한 아이들과 노는 시간을 많이 갖고자 주말마다 바쁘게 여기저기 다녔었는데, 지금도 그때 찍은 사진들, 특히 사진 속 아이들 얼굴을 보면 괜히 눈물이 나고 그때의 나와 신랑의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짠해진다.


신랑이 떠나고, 스카이프로 영상통화는 매일 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모니터를 바라보며 그렇게 울게 될 줄이야... 워낙 눈물이 많은 나이긴 하지만, 애들 둘이 내복 바람으로 책상 앞에 앉아 아빠를 보며 이야기하는 그 모습이 그렇게 딱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한창 신나게 놀 나이에 아빠는 없고, 적극적이지도 않은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큰 아이는 아들인데 아빠와 신나게 놀 나이에 괜히 위축이라도 되면 어쩌나,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내 성격으로 힘들어지면 어쩌나 같은... 쌓아놓은 캠핑 장비만 봐도 눈물 주르륵, 신랑이 입던 옷만 봐도 울컥울컥... 진짜 그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슬프다.


하지만 계속 슬퍼할 수는 없는 일... 어느 주말, 집 정리를 하고, 당분간 안 쓸 캠핑 장비도 안 보이게 정리했다. 그리고 그 뒤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고, 또 학교 안 가는 주말마다 전원주택 사시는 엄마네로 무조건 짐을 싸서 갔다. 친정 부모님이 멀지 않은 곳에, 그것도 전원주택에 살고 계신 건 당시 내겐 큰 행운이었다. 주말마다 할머니 집에서 맘껏 놀고, 가끔 엄마가 신랑을 대신해 여행도 데리고 가셨다. 활달한 여장부 스타일의 엄마가 함께 다녀주신 덕분에 당시 아이들 체험 학습은 원 없이 시켜봤던 것 같다.

해외 근무 중인 신랑은 6개월에 한 번씩 3주가 좀 넘는 휴가기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신랑이 들어올 때마다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나 국내로 여행을 갔었다. 첫 여행지는 사이판... 첫 해외여행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몇 달 만에 만난 아빠와 갔었던 여행이라 그랬는지 한동안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다닌 해외여행 중에 제일 좋았던 때가 언제냐 물으면 늘 대답은 사이판이었다. 그렇게 6개월마다 한 번씩 공항에서 눈물의 이별을 몇 번 경험한 후에야 드디어 끝난 3년간의 해외 근무 기간... 신랑이 돌아오던 해에 큰아이는 초등 3학년, 작은 아이는 7살이었다.


신랑이 있으니 균형이 맞는 것 같은 느낌에 일단 내 마음이 편해졌고, 예전처럼 우리도 편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게 됐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뒹굴거려도 그냥 편한 그런 마음... 이렇게 말하니 내가 신랑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 같긴 하지만 늘 옆에 누군가가 있었던 사람은 그 존재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그런 감정은 나와 애들 없이 외국에서 버텼던 신랑 역시 마찬가지였고... 다음번에 혹시라도  또다시 해외지사 발령이 나면 신랑은 무조건 가족동반을 조건으로 걸겠다고 할 정도로 우리 부부에게 그 3년은 힘든 시간이었다.


신랑이 돌아온 후 나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은 자기가 없었던 3년의 시간만큼 앞으로 3년간 주말은 별도의 약속을 잡지 않고 무조건 가족과 함께 보내겠다고 한 거였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은 금요일 저녁이면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거나, 아니면 좀 먼 곳으로 캠핑장을 예약해 아이들과 캠핑을 떠났고, 그동안 넷이 하지 못했던 아이들과의 시간을 함께 채워갔다.



이제 큰 아이는 고1, 작은 아이는 중1... 밥을 챙겨 주거나 학원을 데려다주는 일 아니면 엄마 아빠가 주말마다 필요한 나이는 아니니 이젠 우리 가족의 주말 일상은 예전과는 좀 달라졌다. 아이들 중심에서 부부 중심으로... 그래도 여전히 금요일부터 주말 모드는 시작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더 바쁜 나이다 보니 주말 시간의 대부분은 신랑과 함께 보낸다. 부득이하게 빠질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금도 신랑은 금요일과 주말에 거의 약속을 잡지 않는다.


'음주가무'중 유일하게 '음주'에만 능한 나는 신랑하고 '술 한 잔'을 자주 하는 편이다. 특히 금요일과 토요일 우리의 시간엔 술 한 잔이 빠지지 않는다. 부부끼리 마시기도 하고, 친한 친구 부부와 넷이 마시기도 하고... 신랑과 같이 마시는 술자리는 늘 편하다. 집에 올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술 한잔 하고 운동 삼아 걸어오는 길도 좋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같이 해장국을 먹으러 가고 집에서 간식 먹으며 뒹굴거리거나 아님 카페, 서점, 쇼핑몰을 구경삼아 다니기도 한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니 신랑과 늘 아이들 이야기를 한다. 서로 생각이 안 맞으면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사춘기와 곧 다가올 나의 갱년기가 만나는 이 시기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시차 생각 안 하고 바로 전화할 수 있고, 급하면 얼른 달려올 수도 있는 곳에 신랑이 있다는 사실이다. 신랑이 만약 지금 이 시기에 해외근무를 하고 있었으면 나의 지금 시간들은 더 괴로웠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평범한 나의 일상이 참 감사했다.


아이들이 어렸던 그때는 그래도 나 혼자  감당이 됐었는데  이제  나보다 더 큰 아이들을, 그리고 생각도 너무 다른 아이들을 감당하는 건 내겐 너무 버겁다. 아이들의 뾰족한 말들에 상처 받고 나 역시 성숙하지 못한 엄마의 모습을 보인 것 같은 자책으로 힘들어질 때마다 신랑의 위로가 큰 힘이 된다. 데리고 나가 술을 사주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도 하며 기분 풀어주기에 바쁜 신랑... 참 고마워!!

신랑이 없는 동안 아이들과 나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다 이야기 하긴 힘들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많이 부족한 엄마였다. 좀 더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했는데 내가 힘든 게 먼저라 감정을 앞세울 때도 많았다. 그래도 늘 언제나 엄마인 나를 의지하고 따르고 세상 행복한 미소를 보여줬던 착한 내 새끼들... 지금도 그 시절의 아이들 사진을 보면 좋기도 하지만 가슴 한편이 아린 이유는 그 시절 나의 부족함이 자꾸 떠오르는  탓일지 모른다.


그렇게 아이들도 나도 힘들었던 그 시간들을 지나 현재 우리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다. 올 들어 사춘기가 제대로 찾아온 아들 때문에 가끔씩 온몸과 마음이 요동칠 때도 있지만 지금껏 건강한 관계를 이어온 덕분인지 모두 금세 제 자리를 찾는다. 아이들도 도... 서로가 더 성장해가는 과정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평범하게 지내는 요즘의 주말이 따로일 때도 같이일 때도 참 좋다. 올해 코로나로 상황이 많이 안 좋고 행동에도 제약이 있지만 있어야 할 곳에 서로가 있다는 그 느낌 하나로도 충분히 괜찮은 우리의 시간이 오늘도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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