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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Dec 11. 2020

나는 나쁜 엄마일까?

크게든 작게든 아이가 아프면 아픈 아이도 아픈 아이를 돌보는 엄마도 다 힘들다. 감사하게도 아주 큰 병은 없었지만 나도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서, 응급실에서, 또는 입원실에서 수도 없이 많은 밤을 아이와 함께 지냈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병원 가는 횟수가 확실히 줄었고, 어느새 가벼운 목감기나 비염 증세로 가게 되는 병원 정도는 나 없이도 혼자서 갈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은 컸다. 큰 아이나 작은 아이나 알레르기 비염으로 환절기에는 늘 고생을 해서 어릴 때부터 한약도 먹여보고 비염에 좋다는 차도 꾸준히 마셔보게 했지만 큰 효과를 보진 못했다. 그렇다 보니 지금도 코 막히고 두통이 오는 증세로는 환절기 때마다 이비인후과나 소아과를 가곤 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코로나로 거의 등교를 못 해서 집에 있었으니 그래도 비염이 좀 수월하게 넘어가나 싶었다. 하지만 가을이 되어 본격적인 등교가 시작된 후 피곤해진 아이들... 사실 그게 정상 스케줄인데 온라인 수업 패턴에 몸이 익숙해지다 보니 체력이 안 되는 건지 등교 후부터는 늘 피곤해하고 여기저기 아프단 얘기가 자주 나왔다. 비염은 기본이고 편도염에 장염... 못 먹인 것도 아닌데 대체 왜들 그러는지... 더욱이 시국이 시국인지라 목이 칼칼하다거나 미열이 나면 일단 겁부터 난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 증상에 나도 신경이 곤두서게 되고 쌓여가는 약봉지들을 보면 은근 스트레스다.


그렇다고 말이나 잘 들으면 좀 낫지... 환절기 기온차도 비염에 민감하게 영향을 주니 옷차림을 신경 쓰라 해도 그저 폼생폼사. 약을 먹다가도 조금만 괜찮아지면 자기들이 의사인 양 알아서 끊어 버리질 않나, 먹어야 할 약도 한참 남았고 병원에서 분명 한 번 더 오라고 했는데 이제 괜찮다며 안 간다고 버틴다. 엄마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 애들은 떡 찾아 먹기는 틀린 듯... 내 말을 안 듣고 자기들 고집대로 하다 금방 증세가 도진다. 병원 가는 과정은 어디 쉽나? 대기도 많은 곳이라 갑자기 가려면 한 시간 이상 대기하는 경우도 있고 미리 병원을 갈 생각이었을 경우에도 내가 미리 가서 접수를 해 놓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야 버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내가 두 번을 가는 수고를 하더라도 그 방법이 학교와 학원 사이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 어쩔 수 없지만, 사실 주차공간도 여유롭지 않아 번거롭다.


얼마 전 작은 아이가 편도염으로 미열이 나고 아픈 적이 있었다. 작은 아이는 계속 약을 먹는 중이었고 큰 아이는 비염약을 먹다 말다... 말 안 듣는 사춘기 녀석이라 하고 싶은 대로 두긴 하는데 지난 월요일 저녁에 갑자기 자기도 목이 아프다는 거다. 혹시 모르니 다음날  병원을 가자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며 안 가겠단다. 학원도 병원과 가까우니 내일이라도 학원 가기 전에 들르라고 해도 요지부동... 하는 수 없이 우선 집에 있는 약을 주고 말았는데 그로부터 이틀 뒤, 7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방에서 나오는 큰 아이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는 거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며...


아니, 낮에도 멀쩡했는데 아무 말 없다가 갑자기? 아이 입에서 아프다는 얘길 듣는 순간 걱정보다는 화가 먼저 났다. 월요일부터 병원을 가자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듣지도 않았고 수요일 그날도 온라인 수업기간이라 하루 종일 집에 있었으면서 저녁 7시에 아프다니... 7시면 어지간한 병원은 다 문 닫을 시간이다. 게다가 그 날 큰 아이는 종일 집에서 뒹굴거렸다. 그 꼴을 보면서도 꾹 참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아프다니, 9시부터는 수학 과외 선생님도 오실 건데... 속이 부글부글 더 이상 참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속사포 잔소리...


"그러게 내가 뭐랬어. 진즉에 병원 가라 하지 않았니? 오늘도 낮시간 다 버리고 이게 뭐야... 너 어제 몇 시에 잤어? "

"세시..."

"새벽에 자고 늦게 일어나고... 잘한다. 몸에도 리듬이란 게 있는 거야. 새벽까지 숙제하다 잤다고 하면 내가 잘했다고 할 줄 알았니?"

"엄마한테 칭찬받으려고 새벽에 잔 거 아니야. 지금 머리 아픈데  어쩌라고..."


속엣말을 다 퍼부으면서도 머릿속에선 이러면 안 된다고 계속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터진 입은 제어 불가... 후회할 짓인 줄 알면서, 나의 이런 행동이 지혜로운 엄마와는 거리가 먼 일이란 걸 알면서도 잘 안됐다. 내가 날 브레이크 거는 그  일이... 의자에 기댄 아들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상황이야 어찌 됐건 지금은 머리가 아프니 어떻게 좀 해주세요 하고... 그냥 자기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이런저런 이유 따지지 않고 머리 아픈 그 사실만 봐줬음 하는 게 우리 아들이다. 듣기 싫은 소린 듣기 싫고 그냥 자기 말에 반응해달라는 그런 마음...


나도 안다... 아는데... 이런 상황이 짐작돼서 며칠 전부터 병원에 가보라고 했건만 말 안 듣고 있다가 다급한 상황을 만드는 아들에게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고, 그 밤에 진료 보는 병원을 알아보는 일이 일단 난감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하필 그날은 신랑도 늦고, 작은 아이도 곧 학원에 데려다줘야 했다.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하면서 핸드폰으로 검색하느라 손은 바빴다. 다행히 다니던 병원에 야간진료가 있어서 얼른 나갈 준비를 했다. 수학 선생님께는 문자를 드리고 작은 아이는 학원에 좀 일찍 데려다주고 난 뒤 큰아이와 병원에 갔다. 증상은 역시나 비염으로 인한 두통... 코가 많이 부어 비강이 막히니 숨쉬기가 제대로 안돼 머리까지 아팠던 상황이었다. 늘 비염이 있었으니 그날의 일이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머리도 아프고 기분도 안 좋으니 집중도 안될 테고... 당연히 그날 과외수업은 못할게 뻔했다.  


선생님께 수업을 미뤄야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약을 먹은 아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자버렸다. 이러쿵저러쿵 말도 없이... 잠이 부족한 원인도 있었지 싶다. 그렇게 들어가서 그다음 날까지 계속 잔 걸 보면... 그날 밤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니 그때부턴 내 두통이 시작됐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는데 왜 엎질렀냐고 탓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었을까, 애가 아프다는데 난 왜 얼마나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먼저 묻지 못하고 아프게 된 원인부터 따지려 들었을까, 내가 내 아이를 상대로 뭘 하는 건지, 말싸움 대회라도 열어서 이겨보겠단 건가... 조용한 밤 시간, 아이방의 닫힌 문을 바라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아이를 잘 안다고, 신경 쓴다고 하면서 난 또다시 아이에게 따지기만 하는 엄마가 된 거였다.


물론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내 말이 맞다. 아들이 말을 안 듣고 자기 고집대로 하다 일을 키운 셈이니...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라 솔직히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아들에겐 이런 내 논리나 입장이 받아들여질 리 없다. 자기 잘못 보다는, 아니 어쩜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알았더라도 엄마니까 그저 자기가 아프다는 말에, "머리 아파? 언제부터 아팠어?"라며 다정하게 이마에 손 짚어주는 천사 같은 엄마를 원했을 거다.


안다. 아는데... 왜 지금은 그게 잘 안될까? 나도 정 많고 사랑 많기로는 뒤지지 않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둘째를 임신하고 산달이 다 되어 배가 남산만 했을 때도 그 배 위에 늘 큰 아이를 올려 재웠다. 내 심장소리를 들으며 잠든 아이가 너무 예뻐 내 배 아프고 힘든 것도 몰랐었다. 그랬던 내가 요즘 아이한테 퍼붓는 말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가... 내가 정말 속좁고 나쁜 엄마가 된 걸까? 아이보다 내 마음 힘든 게 먼저이고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할 뒷감당이 짜증 나서 아픈 아이에게 화 먼저 내는 엄마라니... 아들의 황소고집을 모르는바도 아닌데 자꾸 반복되는 이런 상황이 싫다. 내 행동에도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난 어른이고 엄마인데 너무했지...  아... 나 정말 나쁜 엄마인가 보다.


지난여름 읽었던 책 중에 손병일 님이 쓰신 '십 대와 싸우지 않고 소통하는 기술 감정의 법칙' 이란 게 있었다. 책 속 내용 중 내 눈길을 끌었던 한 문장... "내가 아무리 못되게 굴더라도, 제발 내 편이 되어줘요." 이 말은 십 대가 부모에게 필사적으로 알리고 싶지만 어린아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절대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하는 말이라고 했다. 십 대와의 교감은 이런 모순된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사춘기 자녀와의 교감은 결코 명료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다 읽어 놓고, 끄덕끄덕 다 알 것처럼 이해해 놓고, 그 시기는 교감과 소통이 명료할 수 없는 시기라는데 명료하길 바란 바보 같은 꼴이라니...  대체 책은 왜 읽은 거며 실천하지도 못할 거면서 아이를 위해 노력하는 엄마 행세는 뭐하러 한 건지... 한심했다 나 자신이...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일은 끝없이 배우고 깨닫는 일의 반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나도 엄마가 처음인데, 처음이라 실수하는 거라고, 그렇다 보니 어떨 때는 좋은 엄마가 되고, 어떨 때는 나쁜 엄마가 되기도 하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해 보지만, 어른스럽지 못했던 것 같아 자꾸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아이가 몹쓸 병으로 아파서 고통받는 부모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작 비염으로 가야 하는 병원 하나 시원하게 못 데려갔던 나의 모자란 모습에 반성도 해 본다.  어쩌면 아픈 아이를 둔 그들에겐 나의 그 날 저녁의 으르렁거림이 누려보고 싶은 사치스러운 일상이었을 거라고, 그러니 감사히 생각하고 욕심부리지 말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더 많이 사랑하라고 말이다. 다시 노력해보자! 사랑하는 내 새끼들을 위해, 늘 투닥거려도 금세 '엄마, 엄마'를 부르고 침대 옆에 누워 비비적대는 아이들을 위해, 신경질 부리는 엄마 말고,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늘 깨어있는 다정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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