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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Dec 17. 2020

효자 남편과 사는 것...

우리 신랑은 장남이다. 위로 누나가 계시지만 어쨌거나 한 집안의 큰 아들... 우리 집도 나와 남동생 둘이니 남동생이 우리 집 장남인 것과 마찬가지... 두 살 차이인 남매들의 나이 터울까지 똑같다. 그래서 결혼하고 난 후 우리 신랑과 애들 고모 되시는 우리 형님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내 동생의 관계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우리 집에서 나 또한 장녀이니 시댁 형님의 입장이나 내 입장이나 매 한 가지이기도 하고...



형님과 우리 신랑은 남매인데도 사이가 참 좋다. 형님이 일찍 결혼하셔서 고모부가 당시 대학생이던 우리 신랑을 친동생처럼 많이 챙겼다고 한다. 군대에서 휴가 나와서도 어머니댁으로 가지 않고 누나 집에서 지냈다할 정도로 각별했던 듯하다. 신랑과 연애 때도 그렇고 우리 아이들 어릴 때까지 형님이 분당에 사셔서 결혼 후에도 형님네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 놀러 가서 자고 오기도 하고 우리를 캠핑의 세계로 이끄신 것도 우리 형님과 고모부다.  큰아이 임신했을 때 다섯 살이던 작은 조카가 군대 갔다 제대했으니 세월 참... 지금은 지방에 사셔서 얼굴 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가끔  톡으로 안부를 물으며 잘 지낸다.



반면 나와 내 동생은 거의 연락을 안 한다. 무슨 일 있거나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이... 크게 안 좋은 사이는 아닌데 너는 너 나는 나 각자의 삶을 산다.  올케도 다정다감 스타일은 아니라 그냥 무소식이 희소식... 어릴 때는 잘 지내는 편이었는데 솔직히 동생의 사춘기가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너무 내 생활에 올인했나... 지금 생각하니 좀 미안하긴 하다. 어쨌거나 누나 동생의 서열로 남매 관계는 같지만 나와 내 동생은 신랑과 형님과의 관계와는 서로 다른 느낌의 남매지간이다.



내가 서른에 결혼했을 때는 이미 내 동생도 직장인... 신랑은 자기가 학생 때 고모부와 잘 지냈던 것처럼 내 동생 하고도 자주 만나 술도 마시고 친형제처럼 지내고 싶어 했지만 이미 서로 너무 바쁜 인생들... 사는 곳도 서울과 인천, 어른들 생신 때나 명절에 잠깐 보는 정도로 지내다 보니 초반에 신랑은 내심 섭섭해했다. 처제도 없는데 처남하고 술 한잔 마음대로 못한다고... 그럼 나는 말한다. 처제 있어서 혹시라도 마음에 안 맞는 동서 스트레스 겪느니 무뚝뚝해도 매형 좋아하는 처남 하나 있는걸 다행으로 알라고... 하여간 장남의 운명을 타고난 건지 동생들 챙기고 싶어 하는 데는 뭐 있다. 그 바람에 난 지금껏 아주 여러 번 신랑의 사촌 시동생들까지 우리 집으로 불러 재우고 먹이고를 했다. 코로나만 아니었음 아마 올 해도 그랬을 듯...



부모님도 지방에 멀리 계시니 요즘 들어 신랑은 부쩍 부모님 생각을 많이 한다. 형님이 분당에 사시고 어머니가 아프시기 전에는 시부모님들이 분당으로 자주 오셨었고 늘 여름휴가도 같이 다닐 정도로 시댁은 가족애가 남달랐다. 한때는 그 지나친 가족애 때문에 내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는데 사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참 편했다.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친손주 외손주까지 잔뜩 대동하고 일 년에 두 번씩 놀러 다니시는 어머니 아버님은 동네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 엄마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 물론, 우리도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네와 여행도 몇 번 갔었지만 이상하게 시댁 식구들과의 여행 때 같은 분위기는 안 났다. 재미도 없고... 시댁과 친정에 똑같이 한다는 내 원칙이 있긴 했지만 여행에서만큼은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십 년 정도를 신나게 같이 여행 다니다 어머니가 아프신 후엔 여행은커녕 아들 집에 오시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니 효자인 우리 신랑 마음이 아플 수밖에...



몇 년 전부터 명절 이외에도, 신랑은 어버이날이나 두 분 생신날은 휴가를 내고 혼자라도 시댁에 다녀온다. 자주 보러 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시간 맞아서 같이 갈 때도 있지만 신랑 혼자 다녀온 후의 이야기를 들으면 확실히 어머니가 신랑 혼자 오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신랑 왈, 아버님이랑 소주 한잔하고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늦게까지 안 주무시고 기다리셔서 어릴 때 얘기부터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하니 좋았다고... 그 말을 하면서 신랑도 신이 났다. 신랑의 말을 들으며, 내가 같이 내려갈 때 어머니는 늘 일찍 주무시는데 거실에서 자는 내가 불편할까 봐 그러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 앞에서 아들 왔다고 유난 떠는 시어머니는 되고 싶지 않으신 우리 어머니... 아무리 며느리를 이뻐하셔도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으니 신랑에게 앞으로 자주 혼자 가라고 했다.  



12월 초에도 어머니 생신이어서 가보려고 했지만 코로나가 심각해져서 못 갔다. 그러다 며칠 전 내가 저녁 설거지를 하는 동안 신랑이 어머니와 통화를 꽤나 길게 했다. 평소에는 내가 이삼일에 한 번씩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리지만 아들과의 통화는 또 다른 느낌... 신랑은 시부모님과 전화할 때는 경상도 사투리가 바로 나온다. 처음 만났을 땐 사투리를 안 써서 서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유자재로 사투리와 표준어를 번갈아 쓰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 어머니와 살갑게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며 또 한 번 생각했다. 신랑 참 효자네... 내가 엄마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듯이 신랑도 그럴 텐데...  아프신 어머니가 얼마나 안쓰러울까 싶다. 어머니가 가끔 택배로 볶음 고추장과 깍두기, 그리고 물김치를 보내시는데, 그때마다 신랑은 좋아한다. 낼모레 50인 신랑이 "엄마 반찬 좀 줘봐." 하는 말을 들으면 참 기분이 묘해진다. 와이프 반찬 스타일에 익숙해져도 엄마의 반찬은 또 다른 느낌이니까...  

신랑이 어머니한테 하는 걸 보니 또 생각나는 사람... 바로 남동생!! 신랑이 시부모님께 하듯 동생은 잘하고 있는 건지... 동생과 올케 둘 다 바쁘고 엄마가 아들보다 사위를 더 편하게 생각하시다 보니 친정 부모님은 무슨 일 있으면 나나 신랑을 먼저 찾는다. 말씀은 장단 맞춰주는 사위가 맨날 피곤하다고 하는 아들보다 편해서 그런다고는 하시는데, 외손주들을 다 키우다시피 하셔서 아무래도 동생네 보다는 우리 쪽에 더 시간을 많이 쓰신 까닭도 있는 듯하다.



그건 그거고, 우리도 특별히 잘하는 건 없지만 내 욕심에 엄마 아빠도 아들 며느리에게 좀 더 다정한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어쨌거나 동생네가 좀 무심한 건 맞으니...  시누이 노릇을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 형님도 내게 한 번도 시누이 노릇을 하거나 대접받으려 하지 않으셨고, 올케가 어찌 생각할진 모르지만 나 역시 우리 올케에게 싫은 소리나 시누이 노릇은 안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친정 부모님께는 좀 더 살갑게 대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긴 하다.



신랑이 효자면 와이프가 힘들다던데...  물론 결혼 초기에는 좀 지나치다고 느꼈던 적이 있지만 살다 보니 나의 경우는 사실 좋은 점이 더 많다. 신랑이 자기 부모에게만 잘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억지로 시킨다고 할 나도 아니지만) 시댁이든 친정이든 똑같이 잘하려고 하니까... 얼마 전 친정 부엌을 리모델링했었는데 그것도 신랑이 해드리자고 해서 시작하게 된 일이다. 비용은 동생네와 반반씩 부담...  동생도 생각은 했었는데 우리가 먼저 제안하니 선뜻 따라줬다. 이건 올케한테도 참 고마운 일... 하는 김에 늘 거슬렸던 시댁 욕실도 형님네와 같이 고쳐 드리니 마음이 훨씬 편했다.



신랑이 이렇게 저렇게 부모님들을 챙기는 모습들을 보며 먼 훗날 우리 부부가 살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신랑이 가끔 말한다. 자기도 마흔이 넘어서야 겨우 부모님을 생각하고 그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했으니 우리 아이들도 우리 나이 즈음돼야 우리 마음을 이해할 거라고... 그러니 지금 사춘기 아이들이 마음대로 안된다고 속상해하거나 전전긍긍하지 말라고. 그저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잘 살면 된다고 말이다.



시대도 바뀌고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아는데도 큰 애가 명절에 할머니 댁에 안 가면 안 되냐는 말을 할 때면 참 난감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온 사랑을 주는데도 그 마음이 아직은 헤아려지진 않는가 보다. 일 년에 많이 가야 두 번인데 가는 내내 차에서 자기만 하면서 뭐가 힘들다고 그러는지...  장남인 아빠의 서열을 그대로 물려받아야 하는데 과연... ㅎㅎ 큰 아이가 어른이 됐을 땐 또 상황이 달라지겠지... 아들이 가끔 내게 말한다.


"엄마는 나 결혼하면 근처에 살아."

"왜?"

"그래야 맛있는 것도 해주고 그러지..."

"아니~~ 엄만 아빠랑 저기 멀리 가서 살 거야. 너는 너대로 맘대로 살아. 맛있는 건 장모님께 해달라고 하고... 알겠지? "

"그럼 난 엄마 반찬은 어떻게 먹어?"

"외할머니한테 음식 안 배울 거냐고 맨날 그러더니 엄마 음식 중에 먹고 싶은 게 있긴 하니?"

"그럼~ 외할머니는 외할머니고 엄만 엄마지..."



아직은 모든 게 먹는 걸로 연결되는 단순한 녀석... 몇 년 전엔 자긴 결혼 안 하고 혼자 산다더니 요즘엔 결혼은 이미 기정사실화 되었다. 누가 널 데리고 살지...  효자 아들은 바라지 않을 테니 제발 자기 앞가림만 잘할 수 있게 자라 다오... 지금은 동면중인 곰 같이 생활해도 내년엔 달라질 거지? 계획대로라면 이번 주는 등교 기간... 시험 보기 전 등교하니 생활패턴이 좀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15일부터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돼서 백수처럼 빈둥거리는 모습을 며칠째 보고 있는 중... 더 큰 효도는 접어 두더라도 아들아~~  당장 다음 주에 있을 기말고사 공부 좀 해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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