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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Dec 31. 2020

붙잡고 싶은 오늘이 되도록...

2020년 마직막 날을 보내며...

말 많고 탈 많았던 2020년... 코로나 19라는 말을 하루라도 안 한 적 없던 2020년이 이제 몇 시간 뒤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 된다. 올해 초...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 사태는 올 한 해 유례없는 기록들을 남기고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아질 거야, 잘 견뎌보자라고 서로 주고받는 다짐 같은 인사도 점점 지쳐가기도 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사실 현실은 어제와 다르지 않다.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온라인 수업을 준비시켰고, 식사를 챙겨으니, 이제 내가 할 일들을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하며 하루를 보내게 될 거다. 단지 예년과 다른 게 있다면 해돋이를 보러 가지 못한다는 것...


아침이면 늘 떠오르는 해이지만 신랑은 유독 새해 첫날 떠오르는 첫 해에 많은 의미를 둔다. 특히 강원도에서 맞이하는 첫 해를... 시뻘겋게 떠오르는 그 해를 직접 봐야 일 년을 무탈하게 잘 보낼 것 같다고 말이다. 우리뿐 아니라 해맞이를 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간절함을 품고 그 첫 해를 보러 가는 거겠지... 지금까진 살면서 아이 낳았던 해를 빼고는 빠지지 않고 해돋이 여행을 다녔던 것 같다.


해의 마지막, 새해의 첫날을 보내는 방법은 아마 집집마다 다 다르겠지만 신랑과 내가 해넘이와 해돋이를 의식처럼 즐기는 덕에 우리 가족은 해돋이에 대한 추억이 많다. 아이들이 어릴 땐 시부모님과 형님네 식구들과 다 같이 가기도 했고, 어느 해는 우리 가족끼리만 조촐히, 어느 해는 친한 친구네 가족과 시끌벅적하게 보내기도 했다. 추운 날씨에 사람도 많고 잠이 덜 깬 아이들을 깨워 나가는 일이 쉽진 않지만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다 주변 하늘이 붉어지고 마침내 동그란 해의 머리가 보이는 순간의 짜릿함은 느껴본 사람만 거다.

2016년 밤 12시를 지나 2017년을 5분 정도 넘긴 그 때 삼척 쏠비치...
2019년 12월 31일 속초 바다
2020년 1월 1일 속초에서 떠오른 첫 해

멀리 여행을 가지 못하면 집에서 가까운 영종도에 가서라도 처음 떠오르는 해를 직접 보고 와야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잡히지 않는 코로나로 이번에는 해돋이를 못 가고 집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됐으니 어제부터 신랑의 마음은 우울하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밤에 떠났다가 아침에 올까도 생각했었지만 지금 상황에 의미 없다는 거 잘 안다. 그냥 이번에는... 새로운 한 해의 첫날 떠오르는 첫 해의 첫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그에 비례하는 간절함을 마음속에 가득가득 담아내는 수밖에...




작년 오늘에는 해돋이 여행을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책상에 앉아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고, 시간 뒤면 먹는다는 사실도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그냥 나인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크게 달라질 없는 똑같은 나인데도 숫자 하나 바뀌는 게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마음 들뜨게 하는 해돋이 여행은 못 가지만 그래도 오늘 저녁엔 우리만의 조촐한 파티를 열어보련다.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나갈 일은 없지만 머리도 예쁘게 하고 화장도 해야겠다. 그리고 저녁 시간을 기쁘게 해 줄 메뉴를 준비해 봐야겠다. 솜씨는 없지만 최대한 정성스럽게...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낸 시간들도 많았던 2020년... 코로나 블루, 코로나마스, 호모마스크쿠스 같은 신조어들이 우리의 일 년을 말해주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뜻깊은 시간들이 분명히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아무렇게 않게 즐겼던 일상들에 새삼스러운 감사를 느끼게 되고, 개인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나에 대한 생각을 하며 내 주변을 돌아보게도 되었다.


어찌 보면 우리를 움직이는 건 거창한 것들이 아닌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내뱉는 말 한마디, 마음속에 품은 생각...  당장은 의미 없는 것 같아도 우주의 기운을 끌어들이듯 긍정적인 자기 최면을 하다 보면 언젠가 그런 변화들이 서서히 내게 찾아오지 않을까?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며 울고 웃으며 폭풍 잔소리를 퍼부었던 나지만 지지고 볶는 그 과정들 속에도 늘 배움은, 변화는 있었다. 현재도 진행 중이고...


먼 훗날 오늘을 돌이켜 볼 때 이 오늘이 내게 붙잡고 싶은 오늘일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느꼈던 순간들... 살면서 많았다. 그런 순간이 오늘이 되도록... 후회가 좀 더 많은 일 년을 보내는 게 대부분이라고는 해도 앞으로의 시간들은 내내 붙자고 싶은 오늘이 될 수 있게 살고 싶다. 나를 아는 모든 분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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