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리아 Mulia Jan 11. 2021

유튜브로 책을 읽는다고?

아이들과 엄마의 독서 이몽

책 읽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시도해 봤을 독서교육... 늘 책을 가까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은 건 모든 부모들, 특히 엄마들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아이가 돌도 되기 전부터 물고 빠는 장난감을 책으로 사 줬고, 초등 저학년 때까지 잠들기 전에는 아이가 원하는 만큼 그림책을 읽어 줬었다. 유치원 때에는 자연관찰과 창작동화를, 초등 때에는 위인전과 사회탐구, 과학탐구, 한국사, 세계명작 까지...  연령별로 맞는 책을 전집이든 단행본이든 사주고, 아이가 사달라는 학습만화들도 꾸준히 사줬었다. 새 학기에는 학년별 필독서를 찾아 프린트를 해 가며, 교과서에 나온 책 위주로 사 두기도 했었으니 나도 아주 극성스러운 열혈맘까진 아니지만 독서에 있어서는 그 언저리에까지는 갔던 것 같다.


그런데 현재 큰 아이가 고1, 작은 아이가 중1인 이 시점에 우리 아이들의 독서력은 어떤가... 잠자기 전까지 스무 권 이상씩 그림책을 들고 오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느라 목이 아팠던 나머지 일부러 잠든 척했을 때도 많았었는데... 심지어 작은 아이는 기특하게도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을 반복해서 읽으며 한글도 익혀서 날 기쁘게 했었는데 지금은 책 좀 읽으라고 사정사정해야 하는 내 신세... 처량하다.


중간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밤마다 여러 가지 책들을 읽어주던 엄마의 열정은 사그라졌고, 책에 흥미를 느끼던 아이들 역시 어느새 핸드폰이 그들 세상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어릴 때처럼 내가 끼고 앉아 읽어주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책을 좀 더 잘 읽히고 싶은 마음에 보냈었던 독서수업이 문제였을까?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기주장이 생기니 자발적으로 찾아 읽지 않는 이상 독서를 권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내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도, 읽는 척이 아니라 정말 좋아서 읽어도 아이들은 요지부동... 책 읽는 내 옆에 앉아 핸드폰을 하는 그림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래도 좋아하는 분야의 책은 보겠지 싶어서 틈틈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골라주기도 했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아들에게는 스포츠 관련 책들을 사 주고, 딸에게는 친구들 간의 우정 혹은 관계가 주를 이루는 책들을 사주는 식으로... 사주는 책을 거부하진 않지만 그 책들을 읽는지 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방 청소를 하다가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아이들의 읽은 흔적을 찾아보고 싶은 욕심을 뒤로한 채, 넘겨본 자국 없이 그저 책장에 얌전히 꽂혀있는 책들을 한숨 쉬며 가끔 들춰봐 줄 뿐...

사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책을 읽고 간단한 감상문을 책 제목과 함께 올려 생기부에 기록하는 독서교육 종합시스템이라는 게 있으니 억지로라도 좀 읽겠지 싶었다. 딸은 좀 읽는 편이라 하더라도 참 일관성 있는 우리 아들... 읽은 책 0권... 끼고 앉아 읽힐 나이도 아니고, 싫다는 걸 억지로 시키면 더 역효과가 날까 봐 그냥 두었다. 어차피 국어 학원은 다니니 학원에서 읽는 책들로 대신하며 마음을 달랬었다. 중학교 시절엔 그렇게 제대로 된 독서 기록 없이 그렇게 무심히 넘겼지만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독서활동이 슬슬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고등학생인 아들은 생기부를 신경 써야 할 시기이니 싫든 좋든, 많든 적든 읽은 책의 기록을 반드시 남겨야 한다. 올해 코로나로 독서 이외에 다른 활동들은 거의 기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독서 기록이라도 열심히 하라며 여러 번 잔소리를 했다. 책의 권수가 중요하기보다는 깊이가 중요하니 많이도 필요 없고 좋은 책 몇 권만 좀 제대로 읽자고...


알겠다고 대답은 잘한다. 수행평가도 책을 읽고 독서평을 쓰는 게 있었으니 제대로 읽고 쓰면 점수도 잘 받고 독서기록도 되는 일석이조의 상황이니 알마나 좋은가... 게다가 온라인 수업하느라 집에 있는 시간도 많아 솔직히 맘만 먹으면 독서록 몇 권 쓰는 건 일도 아닐 텐데...  하지만 나의 잔소리와 바람은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날아가고 여름방학도 사춘기의  고뇌에 빠져있느라 시간을 다 보내버렸다. 그리고 1학년 생기부 마감이 얼마 안 남은 요즘... 그동안 제대로 기록 못한 독서록을 몰아 채우고 있느라 바쁘다. 여전히 속도는 안 나지만 그나마 몇 권이라도 채워주려고 시도하는 게 어딘가. 그래그래 잘한다 우리 아들!!


이유야 어쨌건 시간에 쫓겨서라도 몇 권의 독서기록을 남길 수 있으니 다행이구나 싶었는데 이런이런... 이상하다. 내가 원하는 책 읽는 모습은 여전히 볼 수가 없고 아들의 두 손엔 책 대신 핸드폰이 들려 있으니 답답할 노릇...  '책은 안 읽어도 되니?'라고 물었더니 지금 책 읽는 거란다. 세상에... 아들은... 책도 유튜브로 읽고 있었다. 아니, 듣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읽고자 하는 책을 검색하면 책 내용부터 리뷰까지 다 말해 준다고... 요즘은 전자책, 오디오 북도 많이 나오니 뭐 그리 크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생이니 정석대로 책을 읽을 줄 알았다. 정말이지 요즘 아이들에게 유튜브는 세상의 모든 것인가 보다. 마치 세상으로 통하는 모든 문이라도 되는 듯...


그래... 유튜브로 책 읽어주는 북 튜버들이 많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출판업계의 상황은 예전 같지 않고, 일상에 쫓기다 보면 책 읽을 시간 조차 내기 힘든 요즘 시대... 이런 시대에 다양한 방법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원하는 책을 적절히 재미있게 골라볼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하며 편하게 책을 읽게 해주는 방법들이 오히려 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정말이지 일상이 바쁜 어른들이 이용하면 좋을 서비스... 아직 아들은 학생이라는 게 촌스러운 엄마인 내게는 좀 마음에 걸린다.


엄마의 눈엔 시간이 없지도 않으면서 줄글로 된 책을 읽는 게 귀찮고 힘들어서 유튜브로 북 튜버가 읽어주는 책을 듣는 걸로 보인다는 게 문제... 손 안 대고 코 풀려고 하는 바로 그런 상황처럼... 아니, 그보다 이렇게 신박한 방법들이 있는데 왜 굳이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필요성을 잘 모르는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학교에는 교과서가 있고, 여전히 시험도 종이 시험지로 보지 않은가... 이제 '포노 사피엔스'로 분류될 아들의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도 됐건만, 책은 종이책이 제맛이라며 책 커버에 끌리고 책 속 문장을 눈으로 담아야 만족스러운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엄마에겐 아들의 그런 모습이 아직도 많이 낯설다.

퍼엉의 일러스트

난 서점에 가는 게 참 좋은데... 책을 보면 기분이 좋고, 책 냄새를 맡는 게 좋고, 책을 읽고 있는 그날의 분위기가 참 좋은데, 내가 낳은 아이들은  이런 기쁨을 왜 거부하려는 걸까? 아마 아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유튜브를 통해 책 읽는 게 얼마나 귀에 잘 들어오고 집중이 잘 되는데, 꼭 종이책으로 읽어야 독서는 아닌데라고 말이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타고난 성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면 그만큼 뒤처지고 도태되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눈이 부쩍 침침해져서 사실 핸드폰 화면을 보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힘들 때가 더러 있다. 어쩌면 이런 나의 상태에는 오디오북이나 북 튜버 들을 통한 책 읽기가 더 맞을지도 모른다. 오디오북을 이용해 보려고 검색해서 몇 가지 들어보긴 했어도 제대로 된 오디오 북은 아직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았다. 아직 눈 상태가 견딜만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책은 눈으로 읽어야 편한 그 이유 하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일상에 쫓겨 시간이 없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의외로 오디오북이 효과적이며, 시력이 안 좋아 책 읽기가 불변한 어르신들에게도 유튜브를 통해 귀로 듣는 책 읽기는 그야말로 신박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도 아닌 데다  무엇보다 배우나 성우의 목소리로 읽히는 오디오북이 어색해서 영 집중이 되질 않았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이용할 줄 몰라서 그런가? 아 구식이야 정말... 그렇다 보니 늘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마음에 드는 책을 주문하기에 바쁘다. 오디오 북이나 유튜브 채널의 싫고 좋음을 떠나 책이 도착해서 박스를 열었을 때 책을 만나는 그 느낌... 그게 너무 좋아서 그만둘 수가 없는 거다.

어쨌거나 나와는 많이 다른 아이들의 세상... 나중에 아이들이 더 커서 나처럼 종이책을 읽는 기쁨을 느끼게 될지 아니면 영영 종이책의 매력은 모른 채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유튜브로 책을 읽더라도 꾸준히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아이들의 방식이라면 기꺼이 존중해 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두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했던 나지만 이제 더 이상 방법적인 걸로 뭐라고 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닌 남이 대신 읽어주는 책을 귀로 듣는 것도 아예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아쉬운 건 사실이다. 아이들은 알까 엄마의 이런 마음을?


나도 지금껏 살아오며 매 순간 책을 가까이 한 건 아니었다. 결혼하고 한동안은 책 읽을 여유가 없었고 책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책만 파고 있진 않다. 하지만 책을 읽기 전에, 읽으면서,  읽고 난 후 느껴지는 마음의 변화를 충분히 느끼는 나로선 그냥 이런 기분을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숙제나 의무감에 책을 읽는 게 아닌, 마음이 힘들 때 찾아봤던 책 속에서 나와 같은 마음을  발견하고 위로를 받았던 순간,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고 놀라웠거나 감성 가득한 작가의 문장을 대하며 두근거리던,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그 모든 순간의 느낌을 부디 제발 꼭!! 살면서 느껴 봤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크리스마스이브에 태어난 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