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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Dec 25. 2020

크리스마스이브에 태어난 너...

아들의 생일은 크리스마스이브다. 그래서 늘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의 시작을 아들의 생일 파티로 연다. 어릴 때는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산타 행사를 겸하니 유치원으로 산타 선물을 미리 보내고, 또 밤새 자고 나면 크리스마스 당일 머리맡에 놓인 선물을 기다릴 아이를 위해 작은 선물을 하나 더 놓았었다. 게다가 생일 선물은 별도... 그렇다 보니 크리스마스 즈음 아이들을 위한 선물 비용이 만만치 않았었다.


어찌나 요구 사항이 많은지 파티는 어떻게 해 달라, 음식은 꼭 스테이크여야 하고 케이크는 아이스크림 케이크, 헬륨 풍선도 듬뿍 천장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아기 때부터 초등 저학년 때까지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찬스를 많이 썼다. 게다가 신랑이 잠시 해외 근무를 하던 시절엔 헬륨 풍선 공수는 외할아버지가, 스테이크는 외할머니가 맡으셨다. 받고 싶은 선물은 나이별 아이 관심사에 따라 공룡, 레고 등 참 다양했고 큰 아이만 챙기면 서운하니 늘 딸 선물까지 준비해 주셨던 부모님... 어쨌거나 큰 아이 생일 덕분에 엄마 아빠도 크리스마스 기분을 제대로 즐기셨었고, 1월 중순에 있는 작은 아이 생일까지 똑같이 챙겨주시느라 늘 분주했지만 참 즐거웠던 그 시절...

사실 큰 아이 예정일은 1월 초였다. 하지만 12월 22일 산부인과 진료를 다녀온 다음날 비치는 이슬... 놀라서 병원에 전화했더니 아직 멀었으니 진통이 시작되면 간격을 잘 따져보고 시간이 단축될 때 병원에 오라고 했다. 출산 즈음엔 엄마네 있던 때라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선 회사일을 정리하러 출근을 했다가(물론 운전은 엄마가 해주셨다) 집에 와서 출산 가방을 들고 병원에 갔다. 점점 횟수가 잦아지는 진통... 정말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경험을 큰 아이를 낳으면서 해 봤다. 밤새 진통 후 크리스마스이브 새벽에 태어난 아이가 바로 우리 아들이다. 성당에 다니시는 시부모님은 축복받았다며 좋아하셨고 그렇게 나는 2004년의 크리스마스를 병실에서 보냈다.


그렇게 태어난 큰 아이는 벌써 열일곱 살... 아이들이 크고 산타의 존재를 알고 난 이후, 점점 파티 분위기는 사라지고 아기자기한 선물들은 현금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친구 조카에게 준 과학상자도 아이가 산타의 존재를 알기 직전 엄마의 사심을 가득 담아 선물했던 건데, 지난여름 큰 아이로부터 그때 자긴 닌텐도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왜 과학 상자를 사줬냐는 원망을 듣는 사태가... ㅎㅎ

초등학생 때는 반 아이들 중에 생일이 비슷한 친구들과 같이 파티도 했었지만 12월 24일이 방학인 경우가 많아 친구들한테 생일선물 받는 기회를 많이 놓치긴 했다. 점점 방학하는 날짜가 뒤로 밀리면서 24일에도 학교를 가니 자기들끼리 도서상품권을 주거나 아니면 맛있는 걸 사 먹으며 생일을 보내기도 했다. 올해는 생일날 마지막 기말고사를 보는 일도... 코로나만 아니면 친구들과 맛있는 거 먹으며 밖에도 돌아다닐 텐데 이래저래 아쉬운 크리스마스이브 생일을 보내게 됐다.


생일 아침은 그래도 미역국과 제육덮밥으로 간단히 차려주고 저녁에 가족들과 파티 겸 저녁식사... 며칠 전부터 뭘 먹고 싶냐 물으니 랍스터가 먹고 싶다는 녀석... 참 입이 고급이야... 신랑이 퇴근 무렵 주문하기로 했으니 일단 메인은 해결됐고 케이크와 과일, 곁들일 음식만 간단히 준비하면 되니 나의 일도 줄었다. 크리스마스트리도 없고 주변 분위기도 크리스마스 같진 않았지만, 그나마 라디오 클래식 fm에서 내내 들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크리스마스이브의 낮 분위기를 살렸다.

드디어 저녁 타임... 랍스터가 먹고 싶다는 아들을 위해 버터구이 랍스터와 대게 한 마리... 이렇게 차려진 생일상 겸 우리의 크리스마스이브 파티 타임~

산타 선물을 받을 나이는 아니지만 아이들은 늘 기대를 한다. 하지만 평소에도 차고 넘치게 받는 아이들이니 크리스마스 선물은 간단히... 큰 아이는 생일이니 용돈을 더 주고 아이들은 싫어하겠지만 내 맘대로 책 선물도 준비했다. 딸을 위한 예쁜 그림 에세이와 축구 좋아하는 아들에게 줄 손흥민 에세이... 며칠 전 아들이 선물에 대해 물으며 설마 책 같은 거 사주는 건 아니겠지라고 했지만, 미안 아들... 책이야. 대신 네가 좋아하는 쏘니~~


12월생... 참 아까운 나이다. 1월생 아이들과 비교하면 일 년이나 차이가 나니 사실 어릴 땐 많이 힘들었다. 지금도 남들보다 뒤늦은 사춘기를 겪느라 안 힘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 또래들과 비교해 힘들었던 부분들은 많이 사라졌다. 아이가 힘들어하고 그런 아이를 보며 내가 힘들 때마다 예정일 그대로 1월생으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했었다.


아이가 초등시절,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12월생이라는 그 일이 발목을 잡는듯했다. 또래 친구들에게도 동생 취급받고 같은 반 친구 엄마들은 "아이고 12월생이구나..." 라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지는 느낌...  참 싫었다. 태어나는  일이 억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뭔가 억울했고 2주만 좀 더 참지라며 나조차도 아이를 볼 때 안타까웠다. 진료를 본 후 유독 힘들고 난 다음 이슬이 비친 거라 한동안은 힘들 때마다 괜히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그래도 별 탈없이 잘 자라준 아들... 또래에 비해 발육이 늦지도 않고 어디 내놔도 멋있는 아들이다. 키는 내 키를 훌쩍 넘어 지금은 내가 올려다봐야 하긴 해도, 사춘기랍시고 있는 대로 다 큰 척, 어른인 척해도,  아직 마음은 아기 같은 아들... 지금 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빨리 털고 더 멋진 남자로 거듭나길 바라는 엄마 마음... 너는 알까? 지금은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가 다 지나기 전에 전하고 싶다. 아들... 사랑해!! 멋지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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