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부터 2월까지 학교에서는 인사이동이라는 태풍이 한바탕 휘몰아친다. 학년 담임 결정과 업무분장이 해마다 되풀이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인사는 잘해도 본전’이라는 어느 관리자의 말처럼 선생님들 각자의 문제에서부터 학년과 교무실의 구성까지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교육청에서도 6학년 점수나 전담 점수로 각종 인사이동의 미끼를 만들어 두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4~5년에 한 번은 꼭 학교를 옮기는 인사제도도 평등한 것 같지만 모든 제도가 그렇듯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글에선 서정초의 사례를 통해 학교 내부 인사규정에 대해서 말해 보고자 한다.
인사철이 되면 기존 교사는 새로운 학년과 업무에 대한 부담으로, 전입교사는 새로운 학교에 대한 부담으로 고민한다. 기존 교사는 자신이 원하는 학년과 업무를 배정받기 위해 고민하며 동학년이 되었으면 하는 동료들을 찾는다. 전입교사는 의례 6학년에 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운이 좋다고 할 정도이다. 힘든 업무 또한 전입교사의 몫일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단순하다. 힘드니까! 매년 폭탄 돌리기를 하는 모양새다. 저 경력과 전입교사, 심지어 신규교사에게 힘든 학년과 업무들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교사 집단을 전문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적 공동체를 지향해야 할 교사 집단의 학교 내부 인사 절차는 이기적이고 비민주적이다. 집을 이사하고 낯선 동네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교사들의 인사이동 또한 그 못지않다. 새로운 동학년과 학년을 시작해야 하는 기존 교사, 새로운 시스템 및 동료들과 시작해야 하는 전입교사 모두 스트레스를 받는다.
서정초는 2010년 개교와 동시에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혁신 3기의 학교로 많은 도전을 하고 있지만 인사규정에 대한 고민은 늘 있어 왔다.
‘전입교사들의 부담을 줄이고 기존 학교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가는 방법이 없을까? 그 방법을 인사규정으로 만들어 꾸준히 이어가게 할 방법은 없을까?’ 서정초 교사들은 이 고민을 오랫동안 해 왔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규정들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업무(교과) 전담팀을 둔다는 규정이다.
가장 우선을 교육과정 운영에 두고 교육과정에 전념할 담임교사들에게 행정업무를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무(교과) 전담팀은 교육과정 연계 학년 업무를 제외하고 교육공무직 직원들과 함께 모든 업무를 전담한다. 학급 담임들은 타학교에 비해 더 많은 주당 수업시수를 감당한다.
이런 시스템은 매년 학년말 회의의 안건으로 나올 만큼 고민이 되지만 회의의 결론은 이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는 쪽이다. 교육과정 운영이 중요하다는 것에 모든 교사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전담을 하며 업무를 전담하는 일이 전담 교사에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5~6명이 할 일을 혼자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일이 과중해서 생기는 이점 또한 있다. 살아남기 위해 일을 줄인다는 것이다. 교육과정 운영과 학교 운영에 꼭 필요한 일 외에는 더 이상의 일이 생기거나 만들어지지 않는다. 업무 전담교사가 살아남기 위해 최소한의 중요 업무만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 업무의 인수인계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료들이 잘 누적되고 전달된다.
업무전담팀을 운영하는 일부 학교의 교무•연구부장은 한 주에 10시간 미만의 수업과 업무 전담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담임들의 수업부담이 너무 크다며 투덜대는 소리도 듣는다. 그러나 서정초의 업무전담팀은 15시간 이상의 수업들을 하고 있다. 세부적인 것도 함께 협의하는 서정의 회의문화 속에서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데 중점을 두고 결정한 사항이다.
두 번째, 한 학년을 2년 이상 한다는 중임 규정이다.
학년으로의 권한 위임과 교육과정 재구성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서정초에서 해마다 학년을 바꾼다는 것은 상당히 큰 어려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아무리 어려운 경우라도 최소 한 명의 교사는 그 학년을 유지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학년 중심 운영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우수한 점은 이어지고 개선할 점은 보완하고 있다.
세 번째, 신규발령이나 전입교사에 대한 규정이다.
전입교사는 2-3-4-5-1-6학년 순서로 배정되고 그렇게 선택할 수 있도록 비워 둔다. 다시 말해 1, 6학년은 최대한 기존 교사들로 채워둔다는 것이다. 전입교사들이 힘든 학년으로 인해 적응하는데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하자는 원칙이 작동하고 있다.
학년부장과 업무전담팀은 2년 이상의 본교 경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본인이 원하면 1년 이상의 경력자도 가능하나 첫 해에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과 동시에 최소 1년 이상은 적응기를 가지라는 배려이기도 하다. 이 규정을 2-2-1 규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적응기 2년, 핵심기 2년, 전달 준비기 1년을 염두에 둔 규정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부장이나 업무 전담을 최대 3년까지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업무와 부장의 순환보직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누군가에게 오랜 기간 많은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돌아가며 나누자는 의미이다. 업무 전담의 경우 오랫동안 담임을 하지 않아 생기는 소통의 문제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다. 업무가 순환되면 업무나 부장이라는 자리가 남의 일에서 나도 해야 하는 일로 인식된다. 업무의 부담을 줄이는 일도 가능하다. 내년에 자신이 담당해야 할 업무를 과중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런 규정이 시행되는 중에도 매년 어려움과 그에 따른 세부적인 조율도 있었다. 하지만 규정을 만들며 함께 고민한 내용들의 큰 흐름은 바꾸지 않았다. 규정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함께 고민하고 생각을 나누며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한다. 민주적 소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규정이 참 중요함을 깨닫는다. 현재도 서정초는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중이다. 그 과정이 치열할수록 더 단단한 뿌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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