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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Mar 16. 2024

안장통

마치 엉덩이의 살이 사라진 느낌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 적지 않은 두툼한 엉덩이와 그 위에 두꺼운 패드가 있는 빕(자전거 전용바지)을 입었는데도 안장에 바로 엉덩이뼈가 닿는 고통이 찾아왔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 길게 안 탄 것은 처음이다. 산티아고를 가기 위해 적응훈련을 한답시고 배낭을 메고 걸어서 출퇴근을 하다가 방학을 맞이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산티아고 순례길과 헝가리 친구집을 다녀왔다.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도 '날이 춥다,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럽다, 아내가 함께 타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차일피일 자전거를 멀리하다 마침내 개학날이 되었다.


첫날은 짐이 있어서 자동차로, 둘째 날, 셋째 날은 자전거에 손이 가지 않아 걸어서 갔다.

그리고 목요일이 되어서야 자전거를 타게 되었는데 서두에 적었던 고통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고통의 종류는 출퇴근이 달랐다. 퇴근길 고통은 시퍼렇게 멍든 곳을 누군가 세게 누르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엉덩이를 안장에 닿지 않게 공중부양해서 내내 탈 수만은 없다.


2024학년도엔 부장보직을 맡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그러자 다른 누구보다 교장선생님과 아주아주 서먹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전에 근무했던 곳에 십 년 만에 다시 돌아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금의 교장선생님과 같이 근무하고 싶어서였다. 그분은 10여 년 전에 같이 근무하면서 내가 정말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던 선배교사였다. 말없이 언제나 후배 교사들을 든든하게 챙겨주었고, 밤잠을 설쳐가며 본인의 일은 딱 부러지게 해내는 분이셨다. 반아이들과의 관계는 엄마와 자식처럼 정으로 단단하게 다져져 있어 졸업하고 찾아오는 아이들도 꽤 많았다. 그런 분을 교장선생님으로 모시고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렇게 2년 동안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혁신업무를 했고, 우리는 잘 맞는 편이었다. 하지만 브런치의 여러 글에도 적었던 것처럼 작년 후반기부터 더 이상 혁신 업무에 대한 열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부장 보직도 맡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업무분장희망원에 담임을 하겠다고 하고 산티아고로 떠났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에도 수없이 고민했지만 그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의 뜻도 강경하셨고, 담임을 하겠다는 내 뜻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직접 전화를 여러 번 주셨고, 다른 사람을 통해 설득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거절할 수밖에 없는 마음은 정말 쓰라렸다. 결국 나는 2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은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으셨다. 말을 걸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눈길도 주지 않으셨다. 그 애써 외면하며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얼굴에 드러나 보였다. 


'서운하실 거야. 내가 교장선생님이어도 그랬을 거야.'


그분의 서운함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이런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이 찾아올 걸 알면서도 부장을 맡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빠진 자리에 다른 샘이 들어왔다. 다른 학교에 비해 부장의 역할이 어머어마한 우리 학교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는 그분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분이 들어와 변화될 학교의 모습에 기대도 된다. 이렇게 누군가 떠나고 남은 빈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채워지며 그렇게 조직은 돌아간다. 절대 빠지면 되는 사람은 없다.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조직의 분위기도 문화도 좋게 바뀔 수 있다.


모처럼 맡은 담임으로서의 첫 주는 대만족이다.

부장에 비해 신경 쓸 일이 절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실체가 없는 문서(계획서들)에 온갖 신경을 쏟지 않고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하고 있는 26명의 우리 반 아이들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자전거를 때마다 안장통이 있으면 자전거는 대중화가 되지 않았을 거다. 안장통은 자전거를 사나흘 연속해서 타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고 만다. 사나흘을 이겨내야 꾸준히 있다. 누구에게나, 어느 조직에게나 새로운 시작은 안장통을 동반한다. 교장선생님과 편하게 만나서 얘기 나눌 수 있는 날이 빨리 찾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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